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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신 시인 / 목련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5. 8. 19.

이신 시인 / 목련

 

 

유순한 눈빛

날리며 떠나간

친구 하나 거기,

살았었네

 

벽화 속 문수보살 같이

긴 손가락

하늘하늘 움직이면

눈꽃보다 밝은

피아노 소리가

우리 집 흙 마당 가득

흘러 넘쳤네

 

낯선 골목에서 마주친 듯

지나간 친구 하나 거기,

앉아 있었네

그리움을 오래 씹어

눈이 아플 쯤

친구야,

수줍게 불러 주면

안개를 타고 돌아오렴

 

눈물보다 뜨거운 삼월인데

초록 악보 위에

흰 빛이 흥얼거리며

날카로운 음표를

던지는 아찔한 삼월인데

 

 


 

 

이신 시인 / 개기 일식

 

 

어쩌다가

어쩌다가

한번

 

먼길을 돌아온 자가

온 생을 다해 기다리던 이를

등 뒤에서

살며시 안아주는 일

 

그 눈부신 만남에

그만, 눈앞이 감감해지는

아찔한 찰나

 

2015년판 『지하철 시집』, 《스타북스》에서

 

 


 

 

이신 시인 / 공사

 

 

자목련 나뭇가지에

걸터앉은 바람이

조는 듯 쉬는 듯

살그랑 살캉, 살라앙 살랑

 

담 씨 일가

그 장단에 맞춰

별 한 술 녹여내고

물 한 모금 떠 마시고

마른 몸들 휘휘 저으며

벽을 타고 오른다

 

모래 뼈 같은 벽돌 담장에

시집간 윗집 큰딸 소식과

백일 맞는 아랫집 아기

삼단 울음소리도 잊지 않고

섞고 버무려

파릇하게 그려지는 골목길 이야기

 

옆집 개나리 가족은

오늘내일 불 밝힌다는데

급하다 급해

담 씨 일가

기린 목 된 이웃들의 물결 응원 받으며

정 쌓아 올린다

이야기보따리 풀려고 한다

겨울겨울, 겨울을

사뿐사뿐 넘어서

 

 


 

이신 시인

전남 영광 출생. 1996년 호국문예 가작 입선. 2005년 포엠토피아 신인상에 『우산과 유산』 외 4편이 당선되어 등단. 현재 시산맥과 시월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