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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 시인 / 목련
유순한 눈빛 날리며 떠나간 친구 하나 거기, 살았었네
벽화 속 문수보살 같이 긴 손가락 하늘하늘 움직이면 눈꽃보다 밝은 피아노 소리가 우리 집 흙 마당 가득 흘러 넘쳤네
낯선 골목에서 마주친 듯 지나간 친구 하나 거기, 앉아 있었네 그리움을 오래 씹어 눈이 아플 쯤 친구야, 수줍게 불러 주면 안개를 타고 돌아오렴
눈물보다 뜨거운 삼월인데 초록 악보 위에 흰 빛이 흥얼거리며 날카로운 음표를 던지는 아찔한 삼월인데
이신 시인 / 개기 일식
어쩌다가 어쩌다가 한번
먼길을 돌아온 자가 온 생을 다해 기다리던 이를 등 뒤에서 살며시 안아주는 일
그 눈부신 만남에 그만, 눈앞이 감감해지는 아찔한 찰나
2015년판 『지하철 시집』, 《스타북스》에서
이신 시인 / 공사
자목련 나뭇가지에 걸터앉은 바람이 조는 듯 쉬는 듯 살그랑 살캉, 살라앙 살랑
담 씨 일가 그 장단에 맞춰 별 한 술 녹여내고 물 한 모금 떠 마시고 마른 몸들 휘휘 저으며 벽을 타고 오른다
모래 뼈 같은 벽돌 담장에 시집간 윗집 큰딸 소식과 백일 맞는 아랫집 아기 삼단 울음소리도 잊지 않고 섞고 버무려 파릇하게 그려지는 골목길 이야기
옆집 개나리 가족은 오늘내일 불 밝힌다는데 급하다 급해 담 씨 일가 기린 목 된 이웃들의 물결 응원 받으며 정 쌓아 올린다 이야기보따리 풀려고 한다 겨울겨울, 겨울을 사뿐사뿐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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