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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요 시인 / 우정
이 모서리가 아닌데 흐르는 우정이 아닌데 코를 찌르는 냄새가 아니데 이게 꿈이라면 지루해서 죽을 텐데 골목이여 귀가 많아서 아무 느낌이 없구나 감자처럼 조금씩 금이 가고 누가 긴장된 단추를 채울 것인가 골목의 살갗을 들출 것인가 우정의 세계는 삐걱거리는 현기증 같고 밥이 소복한 냄비 같고 우리는 가슴의 무게로 공회전하는가 우정이 팽팽히 감겨오는 소리 골목은 골목의 뒷덜미를 흔드는가 평형으로 이어지는가 목맨 사람의 혀처럼 그림자는 왜 검은 손때 묻히는가 누가 우리를 바라는가 안경 껌벅이며 있잖아, 라고 다시 시작하는 친구의 한 컷처럼 마치 지구본을 돌리듯 불편한 장면을 스티커로 붙여야지 반성해야지 속을 다 보인 깊이로 골목은 골목을 가두는가
-시집 《흐르는 나비 그리고 거짓말> 중에서
임상요 시인 / 스무 살
술 취한 바닥이 이마에 붙었다 머리카락이 거꾸로 섰다 쾌청하다는 말로 삿대질을 했다 빙빙 혈관이 겹쳐지고
종교의 방언처럼 내가 수월해지기를 기다렸다
나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다 바닥에 그려놓은 건반이 백과사전을 잔뜩 본 표정을 두들겼다
어떤 바퀴는 성가시게 지껄이고 캄캄한 수작 같고 침묵과 파국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다
신앙이 겹쳐질 것 같았다
소실점이 풀리고 왼쪽 다리가 짧았다 다시 길어지고 밟는 것이 취미가 되었다
있잖아 생일날 아득해져서 악다구니가 되더라
초록을 잡초라고 우겼다 초록 물결이 차가워서 호호 불어주었다 내가 나를 안아도 춥구나
조명에 간격이 생기고 내가 내 머리카락을 잘랐다 복병처럼 비명을 쥐어짜고 있었다
엎어져서 처분만 기다리는 줄 아무도 몰랐다 내가 생소해서 검은 밥처럼 굴러갔다
바닥은 바닥으로 넘쳐났다
-시집 『흐르는 나비 그리고 거짓말』에서
임상요 시인 / 손톱 밑에 눈이 내리고
눈물이 스르르 귓속에서 풀려요 할머니는 수의를 짓고 닭의 목청이 바늘귀 속으로 통과해요 새벽의 뒤척임을 모르곤 미래를 읽을 수가 없어요 내 눈알과 바꿔 앉은 새는 무엇을 기대할까요 엄마는 괜찮을까요 시름시름 앓는 별들이 한 땀 한 땀 목숨을 이어가요 할머니 대답 좀 해주세요 거뜬히 견뎌내겠지요 살이 없는 발목처럼 견뎌내겠죠 어기영차 초록이 오면 오리도 뒤뚱거릴 텐데 흰 글씨로 연기는 흩어질 텐데 할머니, 칼처럼 돌아선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요 새는 돌아올까요 뼈만 남은 빈 둥지는 시체 같고 하수구 냄새같아요 저승꽃 엄마를 닦으면 나랑 닮아서 무섭고 몇천 년 검은 전염병처럼 무섭고 할머니, 꽃이 피면 꽃 무덤을 만들어요 화관을 쓰고 칙칙폭폭 기차는 달리고 동생의 장난감이 붕붕대는 봄인데 노란 꽃 파란 꽃 까불거리면 축제의 기분일 텐데 열매가 맨발로 춤을 출 텐데 눈을 뜨면 수의 한쪽 팔이 자라고 하얀 눈곱처럼 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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