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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안미옥 시인 / 모자이크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25. 9. 13.
안미옥 시인 / 모자이크

안미옥 시인 / 모자이크

 

​동물원에 개는 없다

아무도 개를 동물원에 두지 않는다

개는 어디서나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개를 안고 동물들의 이름을 외웠다

악어 호랑이 사자 살쾡이 뱀 멧돼지 사마귀 아나콘다 말벌

이름은 무섭지 않다 마주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실체 없는 것을 눈앞에 두고

무서워하기 내 오랜 버릇

​아주 사소한 것으로 생각해보려 한다

잘 되진 않는다

​어떤 사람은 평생 같은 말을 반복한다

보던 것만 보고 생각하던 것만 생각한다

​펼쳐진 페이지 위 한 글자를

손가락으로 짚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믿는다

​짚고 있는 손가락 때문에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는 것도 모르고

​무섭다

​미래를 반복해서 말하니까 미래가 진짜 있는 것 같다

​"이건 제 삶의 전부입니다“

손가락으로 짚은 단어를 두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놀이공원에서 풍선을 놓치고 돌아와

풍선이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전부라고 함부로 믿어버리겠지만

매일 밤 손이 저려 잠에서 깨는 건

주먹을 꽉 쥐고 다녔기 때문

다시 잠들지 못하는 건

오랫동안 지속하던 것을 의심하지 않기 때문

​나는 전부라는 거짓말을 믿지 않는다

 

 


 

 

안미옥 시인 / 불가능한 구름

 

 

아직도 흰 나비떼가 있어

아홉 번째 여름이야

 

지퍼가 잠길 때

틈새는

녹으면서 없어졌다

 

열 수 있는 곳이 없는데

대체 어디로 들어오는 거지?

 

몸 안을

나뭇가지로 가득 채운 사람과

벽돌로 가득 채운 사람

수수께끼로 가득 채운 사람

 

세 명의 사람이

공원 벤치에 앉아

뒷목을 긁적이고 있다

 

무언가 자꾸 튀어나오려고 해

똑같이 중얼거리고

똑같이 중얼거리느라 듣지 못하고

 

공원을 수색하는 사람이

입구로 들어온다

 

구름이 쏟아져 내린다

 

 


 

 

안미옥 시인 / 한 사람이 있는 정오

 

 

어항 속 물고기에게도 숨을 곳이 필요하다

우리에겐 낡은 소파가 필요하다.

길고 긴 골목 끝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작고 빛나는 흰 돌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지나가려 했다

자신이 하는 말이 어떤 말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진짜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반복이 우리를 자라게 할 수 있을까

진심을 들킬까봐 겁을 내면서

겁을 내는 것이 진심일까 걱정하면서

구름은 구부러지고 나무는 흘러간다

구하지 않아서 받지 못하는 것이라고

나는 구할 수도 없고 원할 수도 없었다

맨손이면 부드러워질 수 있을까

나는 더 어두워졌다

어리석은 촛대와 어리석은 고독

너와 동일한 마음을 갖게 해달라고 오래 기도했지만

나는 영영 나의 마음일 수밖에 없겠지

찌르는 것

휘어감기는 것

자기 뼈를 깎는 사람의 얼굴이 밝아 보였다

나는 지나가지 못했다

무릎이 깨지더라도 다시 넘어지는 무릎

진짜 마음을 갖게 될 때까지

 

 


 

 

안미옥 시인 / 조율

 

 

 이 줄은 누구의 것일까

 

 유리문을 열면

 흰 눈이 쌓여 있었다

 

 눈의 처음이 늘 하얗다는 것이

 말할 수 없는 참혹처럼

 

 '무너지게 될 거야' 누군가 한 말을

 '무뎌지게 될 거야'라고 들었다

 

 뭉치가 죽었어

 화장 비용이 없어서 아직

 방에 같이 있어

 

 멈추려는 숨 때문에

 개의 코는 마지막까지 길어졌을 텐데

 그런 개를  

 따뜻한 방 한가운데 놓아두고

 

 저녁을 먹고 있는 사람의 전화

 목소리가 마른 웅덩이 같다

 

 겨울이라 땅을 파고 묻을 수도 없어

 방에 같이 있어

 

 한겨울의 가장 따뜻한 방

 

 이 줄은 무엇으로 엮은 것일까

 

 체에 걸러도 남는 마음 때문에

 구멍을 더 촘촘하게 짜는 사람이 있고  

 

 잿더미 속에서도

 눈을 뜨고 옆을 보려는 사람이 있다

 

 개는 가장 작은 자세로

 엎드려 있다

 

-시집 《저는 많이 보고 있어요》에서

 

 


 

 

안미옥 시인 / 나의 고아원

 

 

신발을 놓고 가는 곳. 맡겨진 날로부터 나는 계속 멀어진다.

쭈뼛거리는 게 병이라는 걸 알았다. 해가 바뀌어도 겨울은 지나가지 않고,

집마다 형제가 늘어났다. 손잡이를 돌릴 때 창문은 무섭게도 밖으로

연결되고 있었다. 벽을 밀면 골목이 좁아진다. 그렇게 모든 집을 합쳐서 길을 막으면.

푹푹, 빠지는 도랑을 가지고 싶었다. 빠지지 않는 발이 되고 싶었다.

마른 나무로 동굴을 만들고 손뼉으로 만든 붉은 얼굴들 여러 개의 발을 가진 개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이 이상했다. 집을 나간 개가 너무 많고

그 할머니 집 벽에서는 축축한 냄새가 나. 상자가 많아서

상자 속에서 자고 있으면, 더 많은 상자를 쌓아 올렸다. 쏟아져 내릴 듯이 거울 앞에서

새파란 싹이 나는 감자를 도려냈다. 어깨가 아팠다.

 

 


 

안미옥 시인

1984년 경기도 안성 출생.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同 대학원 석사과정. 2012년《동아일보》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시집 『온』. 현대문학상, 김준성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