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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송시월 시인 / 호랑나비 외 6편

by 파스칼바이런 2025. 9. 29.
송시월 시인 / 호랑나비

송시월 시인 / 호랑나비

 

 

 4월의 아차산 생태공원 입구, 골목에서 벚꽃이 뻥튀기처럼 뻥 핀다. 벚꽃사이 햇살 속에서 튀어나온 호랑나비, 묻힐 듯 말 듯 꽃속을 난다. 내 동공 안으로 푸른 하늘의 배경을 확 당기자, 꽃술을 밀며 들어가는 나비! 내 눈썹에 와 간질간질 닿는다. 나비가 떤다. 내가 떤다. 떨리는 두 팔이 가벼워지고 나도 나폴거려 본다. 이때, 일방통행 길에 포크레인이 지나가고 생태공원 호랑나비의 환영, 드르르르 뭉개진다.

 

 


 

 

송시월 시인 / 모기

 

 

낯선 행성의 배를 탄 별난 밤

파랑 치는 이명을 긁는다

충혈 된 눈에 떠오르는 별, 꼬리를 잇는 별별 생각들

 

고, 군, 산, 열도를 탄다

 

구름처럼 떠다니며 색색을 탄주하는 칸칸의 섬들

랑거한스섬*을 잃어버린 낭구갈매기가 끼룩낭구 끼룩낭구 따라오다가

M선생님이 하이퍼하는 '새우깡'이란 언어를 받아먹고

하이퍼 하이퍼 활강을 한다

 

바다에 떨어진 새우깡 몇 개

기웃뚱이는 꼬임의 경계가 두렵고 불안한 나

하늘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낮달을 향해

손바닥 마주쳐 공포탄을 쏜다

 

폭발하는 팔레스타인 하늘

내 눈에 총총총 박혀오는 검은 포도알 눈들

비실거리는 내게서 무얼 먹겠다고 글썽이며 파고드는지

 

이흥도 역을 지나 아직 장자도역인데 가자지구도역엔 언제쯤 닿을까

 

바람에 날리는 초조한 내 사유의 불랙박스, 바람이 해체한다

 

공룡알을 품은 나금재 통통마디 공작초

함초밭이 질펀하게 노을을 싸고 있다

 

*1869년 췌장에서 특수한 세포집단을 발견한 랑거 한스가 자신의 이름을 따 랑거한스섬이라고 명명하다 인슐린이 만들어짐을 아직 발견하지 못한 때였지만 후에 영국의 샤피-사퍼(1850년-1935)는 당분대사에 필요한 물질이 랑거한스섬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하여 섬을 뜻하는 라틴어insula를 따서 인슐린이란 이름을 붙였다.

 

 


 

 

송시월 시인 / 화분에서 자라는 새

 

 

오월 창가 화분에 해가 뜬다

내리쬐는 섭씨 삼십 이도의 초록 햇살 쪼아 먹고

찰랑이는 머릿결 초록바람 쪼아 먹고

간지럽게 파고드는 겨드랑이의 초록그늘 쪼아 먹고

느티나무잎새들의 지저귐 왼종일 쪼아 먹고

화분에 달이 뜬다

동맥 정맥 청계천 꿈틀꿈틀 흐르는 사이로

달의 실핏줄 몇 바퀴 휘감아 도는 사이로

버들치 한 마리, 흐르는 물살에 뒷걸음질 치다가

거슬러 오르다가 허기진 저물 녘

굴러오는 어둠 몇 알 깨트려먹고

별꽃을 먹고 달꽃을 먹고

물밑 모래앞에 비스듬히 엎드려 잠이 든다

 

화분에 발이 빠진 채 깃털 하나 둘

빠져 날리는 새 한 마리

 

 


 

 

송시월 시인 / 백지

 

 

 맞은편 숲이 나를 받아쓰고 있다 4층 베란다 하늘색 유리탁자 앞에 앉아 데리다 192페이지 "기원에 대한 꿈 : 문자의 교훈"을 펼쳐 놓고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끄떡거리다 하는 내 얼굴을 정면의 아카시나무가 잎을 팔락거리며 받아쓰고 있다 허공에다 상형의 소문자로 쓰고 있다 띄어쓰기나 행갈이도 없이 빽빽하게 쓰고 몇 번을 덮어씌우고 하다가 계란형의 중앙에다 눈, 코, 입, 귀 구멍을 내고 구멍만큼의 하늘을 넣는다 그 하늘이 뭐야뭐야 새울음을 운다 내가 기지개를 켜자 우우우 일어서며 옆의 물푸레나무가 대문자로 내 팔을 받아쓰고 키를 받아쓴다 내가 물푸레나무만큼 키가 커지고 몸통이 커지며 바람에 두 팔이 흔들리자 문자들이 뒤집히며 일그러져 날아간 백지

 

 내가 나를 읽을 수 없다

 

 


 

 

송시월 시인 / 바람의 특수문자

 

 

청룡산 등산로 돌계단 행간행간에다

바람이 갈기를 나부끼어 특수문자를 흘려 쓰고 있다

가지 채 꺾인 아가씨시잎부호들(♂ ♀) 아무렇게나 얽혀

끌거나 끌려 다니고 검푸르게 멍든 갈참나무잎하트(♡)들

몰려다니는 사이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지렁이슬래시(~)가

기어가고 있다

가느다란 나뭇가지화살표(→)따라

날벌레의 까만,,, 쉼표들 잠시 앉았다가 날아가고

공중에 매달려 비비쫑비비쫑 우는 벚나무잎들

행간 행간에 떨어져 초록 느낌표를 찍는다

새로 신은 등산화바닥을 붙잡고

바스락거리는 노오란 싸리잎 마침표들

 

산토끼 한 마리 등산로의 특수문자들 걷어차며

45°의 급경사를 오른다

 

 


 

 

송시월 시인 / 해안선

 

 

유리컵에 입을 대면 노을빛 해안선 두 줄이 생긴다

 

하늘을 수장시키고 하늘을 건져 올리는

한 여름의 짜디짠 해안선, 제부도 조력발전소

 

타는 내 입술 적시며 밀려왔다 밀려가는 달의 주기

바다의 육감들은 더욱 깊어만 가는데

내 감각의 원천은 왜 바닥을 보이는지

 

사소한 일렁임이 사소하지 않게 출렁이는

파키스탄의 15살 소녀 말랄라

"한 자루의 펜이 세계를 바꾼다"는 속 깊은 속삭임이

전 지구에 잔잔한 파도를 일으키고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부딪혀 유속을 빠르게도 하고

느리게도 하면서

새로운 예술 사조를 모색 중이라고 마를린 먼로의 입술로

붉은 해안선 연속무늬로 그리고 있는 피카소

 

바다의 속 깊은 속도전은 이론이 아닌 사건이라고 써놓은 해안선에다

나를 새롭게 편집하는 석양의 물너울

 

나는 해안선 밖에 있는가 해안선 안에 있는가

 

 


 

 

송시월 시인 / 스칼렛에서 체리차를 마신다

 

 

유리컵을 손 위에 놓고 체리차

한 모금 마시고 나면

유리컵에 천정이 1cm쯤 내러간다

또 한 모금 나시고 나면

또 1cm쯤 내리는 천정이 출렁거린다

건너편 탁자의 소녀가 든 포크에 케익 한 조각

떨어질 듯 떨어질 듯 매달려 있다

그녀 위 콩알 만한 산사초의 빨간 눈들이 나를 노려본다

세발네발 줄기가 바구니 밖으로 뻗어 나와

내 머리카락을 거머쥐려한다

그 집게발을 살짝 비키면 비키는 쪽으로

그 위 꽃등의 불빛이 오르르 떤다

내 떨리는 손을 받쳐 든 차

또 한 모금 바짝 마른 입술을 적시는데

그때, 내 정수리에서 불쑥 뛰어나온 뿔 하나

스칼렛의 천정에 구멍을 뚫는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차디찬 별빛

나는 긴- 날숨들숨 체리차를 마신다

 

 


 

송시월 시인

전남 고흥 출생. 1997년 월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12 시간의 성장』 『B자 낙인』. 제 1회 푸른 시학상 수상. 현재 계간 『시향』 편집위원. 시류동인과 하이퍼시 클럽 회원으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