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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임길택 시인 / 거울 앞에 서서 외 7편

by 파스칼바이런 2025. 10. 12.
임길택 시인 / 거울 앞에 서서

임길택 시인 / 거울 앞에 서서

 

 

아버지 하시는 일을

외가 마을 아저씨가 물었을 때

나는 모른다고 했다

 

기차 안에서

앞 자리의 아저씨가

물어왔을 때도

나는 낯만 붉히었다

 

바보 같으니라구

바보 같으니라구

 

집에 돌아와

거울 앞에 서서야

나는 큰소리로 말을 했다

 

우리 아버지는 탄을 캐십니다

일한 만큼 돈을 타고

남 속이지 못하는

우리 아버지 광부이십니다

 

 


 

 

임길택 시인 / 거짓말

 

 

어머니가 나에게

감나무 집 아줌마한테 가서

저번에 빌려 간 돈 좀 달래

받아 오라는 심부름을 시켰다.

벌써 준다 해 놓고 내일 내일 미룬다며

 

나는 싫다고 했다.

무얼 갖다 주라는 심부름이라면

열 번이라도 가겠는데

나는 받아 오라는 심부름은

왠지 가기가 싫었다.

 

뭉그적대는 나에게

어서 안 갔다 오느냐고

어머니가 성을 냈다.

 

억지로 밖으로 나와

감나무 집으로 갔다.

 

아주머니가 부엌으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그래도 나는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아주머니가 볼까 봐

문 밖에서 돌아서서 서성이다가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아주머니가 안계시더라고

거짓말을 해댔다.

 

 


 

 

임길택 시인 / 아버지1

 

 

말 한마디 없이

불쑥 들어오시어

그냥 앉아만 계시는

아버지보다는

오늘처럼 술에 취에

흥겨워하시는 아버지가

더 좋습니다

 

어머니가 뭐라시며 눈 흘겨도

못 들은 척

흘러간 노래를 틀어놓고

흥얼흥얼 따라 하십니다

 

옆방 이불 속

잠든 동생 옆에 누워

나도 아버지의 노래를

따라 불러봅니다

 

무언가 슬픈 생각이 들고

아버지가 불쌍하게도

여겨집니다

그리고

이런 날은

잠도 잘 오지 않습니다

 

 


 

 

임길택 시인 / 완행버스

 

 

아버지가 손을 들어도

내가 손을 들어도

가던 길 스스로 멈추어 선다.

 

언덕 길 힘들게 오르다가도

손 드는 우리를 보고는

그냥 지나치질 않는다.

 

우리 마을 지붕들처럼.

흙먼지 뒤집어쓰고 다니지마는

이다음에 나도

그런 완행 버스 같은 사람이

되고만 싶다.

길 가기 힘든 이들 모두 태우고

언덕길 함께

오르고만 싶다.

 

 


 

 

임길택 시인 / 아버지 사진

 

 

아버지 사진만으로는

우리 집이

채워지질 않아요

 

병으로 누워계실 때만 해도

아버지가

우리 집을 꽉 채우고 있는 줄은

미처 몰랐어요

 

그러나 지금

아버지 사진만으로는

우리 집이

채워지질 않아요

 

다른 친구들은 모를

커다란 구멍이

우리 집에 있어요

식구들 가슴마다 있어요

 

 


 

 

임길택 시인 / 아버지 걸으시는 길을

 

 

빗물에 파인 자국 따라

까만 물 흐르는 길을

하느님도 걸어오실까요

 

골목길 돌고 돌아 산과 맞닿은 곳

앉은뱅이 두 칸 방 우리 집까지

하느님도 걸어오실까요

 

한밤중,

라면 두 개 싸들고

막장까지 가야 하는 아버지 길에

하느님은 정말로 함께 하실까요

 

 


 

 

임길택 시인 / 영미의 손

 

 

서리 온 아침

당번을 하던

영미

 

걸레를 빠느라

붉어진 손이

그토록 조그마한 줄을

나는 미처 몰랐다

 

 


 

 

임길택 시인 / 아이들은 언제 하늘을 보나

 

 

함께 쓰레기 춥자 하면

앞엣아이들 재수 없다며 투덜대고

뒷아이들 눈치 보며 도망을 가고

언제 아이들 이렇게 변해 버렸나.

이 아이들 언제 하늘 한 번 쳐다보나.

언제 먼 데 산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겠나.

먹고

버리고

서너 군데씩 학원에 가고

무엇엔가 늘 쫓기면서

이 아이들 언제 하늘 한 번 쳐다보나.

미루나무 끝에 부는 바람 언제 보고

우리 잠든 사이

하늘 높이 떠 세상을 지키고 있는 별들

가만가만 속삭이는 소리

언제 귀 기울여 들어 보겠나.

 

 


 

임길택 시인 (1952~1997)

1952년 전남 무안 출생. 목포교육대학 졸업. 1976년부터 강원도 탄광 마을 등과 경남 거창 등지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1997년 4월에 폐암선고를 받고 요양 중 12월에 마흔 여섯 살로 세상을 떠남. 시집 『할아버지 요강』 『산골 아이』 『탄광 마을 아이들』 『똥 누고 가는 새』 『나 혼자 자라겠어요』. 동화집 『산골 마을 아이들』 『수경이』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