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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수수 시인 / 가을을 줍다가 당신을 만났다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5. 10. 12.
김수수 시인 / 가을을 줍다가 당신을 만났다

김수수 시인 / 가을을 줍다가 당신을 만났다

 

삼켰을까 뱉었을까

 

단내 올라오는 목울대까지

초승달 차올랐다

 

타국의 심해를 박차고

이제는 떠오르고 싶은 밤 크레센트 비치*에서

꼭지를 돌리면, 달의 정수리

당신이 사는 나라의 바람을 지나왔을까

 

조각달 속에서

한 꺼풀씩 떨어지는 젖은 눈썹

 

나는 오래 당신을 앓았다

 

물결의 껍질이 끊어질 듯 이어질 때

이제 소원을 밝혀도 될까

 

당신의 괴로움을 솎아내지 못한 밤

 

바위 앞에서

내 약속은 반쪽뿐이라고 고백할 때도

 

달이 자라는 고요한 밤*

기도는 공중에서 붉게 자랐다

 

언젠가

날 선 바람이 툭, 치면

 

잘 익은 달이

쿵, 떨어지는 날도 있겠지

 

조각조각 꾸었던 꿈

가을을 줍다가 보았다

 

둥근 시 굴리고 있는 윤동주, 당신을

 

*크레센트 비치 : 캐나다 도시 써리에 위치.

*윤동주 시인의 시 「달같이」 일부분.

 

-제5회 동주해외신인상 수상작

 


 

김수수 시인 / 빙수에 흰뺨검둥오리 얹기

 

 

눈꽃의 맛이야 산뜻한 시작이군

 

기차의 온기가 사라진 역처럼 겨울이 왔는데 말야

제철은 아니지만 어디든 좋아

흥미로운 전개에는 의자를 바짝 당겨 앉을 만하지

 

파먹을까 섞어 먹을까

숟가락이 소문을 팠다

망고 아니면 딸기

옥탑 아니면 지하

창문은 포기할 수 없는 인절미 같아

전설적인 이주라서 소문으로만 떠돈다는군

 

숟가락으로 설산을 파고들어 가면

잠긴 마을이 있다는 거야

소문이 소문을 낳고 소문을 낳아

소문의 뒤를 졸졸 따른다고 해

 

방 한 칸이면 된다는 당당함을

생존기라고 주장했는데

 

궁상이라고 댓글 올라오고

꽥, 소리 지르면 산사태인 거지

 

사실 배경은 설산을 감도는 냉기야

 

그렇다면 병원이 고향이라고 말하지 않을래

묻힐 곳을 묻는다면 아나키스트라고 말할래

 

자유가 없다면 콩가루 때문에 기침이 나겠는 걸

기타가 무기라면 좋겠어

비밀이 자라는 수풀에 발을 박고

낭만주의자는 연유를 뒤집어썼다지

해독할 수 없는 가로등이 하나둘 꺼질 때

숲을 겨냥하는 줄이 끊어진다면 옥탑이 좋을 거야

 

경계를 넓힌 죄

발목에 묶인 죄목을 털어내려면 반지하가 편하지

 

서두르는 법이 없는 자세는 깃털이 키운 것

꼭 맞는 아지트를 위하여, 라고 조율할 때

 

간이역을 타전하면 철로가 딸려 올 거야

초콜릿을 폭파하면 이야기의 절정

 

아나키스트를 기타리스트라고 부를 때

종착지가 멀지 않았어

 

안개가 걷히면

고향은 먼 곳이 아니라 가장 깊은 곳

 

독립인 거야? 자립인 거야?

발랄한 결말을 꿈꾸면

세상이 모두 집 같을 거야

 

오늘은 고전을 맛보았으니

색다른 갈래는 어때?

 

흰뺨검둥오리의 머리 위로

햇볕이 녹아내릴 때

 

알려지지 않은 저수지가 각주처럼 달렸지

 

눈 깜짝할 사이 오리는 날아

팽팽한 공중에 더블 클릭!

 

-웹진 『시인광장』 2025년 2월호 발표

 

 


 

김수수 시인

2024년 《시산맥》으로 등단. (본명 김미영). 제19회, 24회 재외동포문학상 수상. 제5회 동주해외신인상 수상. 현재 캐나다 밴쿠버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