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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종 시인 / 숨은 꽃
낡은 벽시계가 잰걸음을 치고 있는 좁은 방 밤마다 부유하는 나방처럼 네온 빛을 받아먹고 거울 속에서 피어난 그녀 제 삶을 빗질하듯 열심히 화장을 한다 굴절된 진통을 매단 지친 어깨 담뱃불로 댄 자국은 문신같이 선명하다 바랜 얼굴의 잔금 속에 파종하지 않은 슬픔이 덧칠되어 진다 파운데이션으로 풍화도 감추고 흘러내린 봉분은 브래지어로 세운다 지난 해, 신발 밑창 같은 곳으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며 어느 멀쑥한 꽁지머리를 따라 나서더니 퇴행성 감각만 남은 몸뚱이 끌고 그믐달로 돌아온 것이다 그물에 가두어 둔 사내의 이름을 꺼내어 술안주로 잘근잘근 씹다가 쿡, 쿡, 아픔이 시퍼렇게 솟구치는 걸까 개자식이 생각난다며 가슴에 얼굴을 묻는다
-계간지 <시로여는세상> 2008년 여름호
고석종 시인 / 좀생이 별
1 비가 내리고 있었지 그리움이 울컥 차올라 구부정한 모습 끌고 거리를 나섰어 둑을 쌓아 가두어 둔 눈물이 마음속을 마구마구 흘러도 우리 어깨에 내려앉던 모래 꽃 사연 생각하며 울지 못하지
해오라기 외발로 너무 힘들어도 눈감으면 아슴한 품 !속 손끝에서 너의 숨결을 느끼며 죽지로 감싸주던 생각, 견딜 수 없지 콧마루가 아려와 눈을 감고 말았지 그건 있잖아 아직 그 언덕에 들불이 숨쉬고 있어서야 그래도 난 밤 바닷가 시그리 불인 듯 미소 짓고 말았어
2 나, 그 자리에 서있지 못했음은 바람 불어서도 찬 서리 내려서도 아니야 모퉁이 돌아서서 흐느끼기 싫어서였고 우리의 손이 차가움을 느꼈던 것은 끝의 가까움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거야 눈시울 적시며 지는 해를 서러워했음은 칼바위 능선 뒤로 서늘함이 보여서였고 너와 나의 뒷모습 닮았기 때문이었지 시작의 흔적이 상처로 남는다는 걸 알고 있었을 거야 나도 그 말을 들었어 고개 끄덕였지만 막연하게 지금이 더 쓸쓸함은 그리움이 내안 가득 쌓여 있어서였지
3 어슴새벽 좀생이별이 떨기나무에서 툭 떨어지더니 늪 언저리 깨새가 혀끝소리를 물고 연보랏빛 아침을 열고 있었어
넌, 괜찮은 거니? 미안해,
-월간 현대시(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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