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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현택훈 시인 / 꽃무늬 휴지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6. 2. 4.
현택훈 시인 / 꽃무늬 휴지

현택훈 시인 / 꽃무늬 휴지

 

 

비 오는 날 잎사귀에 쓴 구름은 나무였고

나무는 얇고 하얀 꽃이 되었어요

음각으로 새긴 꽃무늬

심지어 휴지에서 꽃향기도 나요

두루마리로 감아져 있는 공원 벤치

얼음이 다시 얼 것 같은 테이크 아웃

눈물을 닦으면 그대 목소리에서

숨바꼭질이 보일까요

스며들기 좋은 건 여전한 밤

한 칸 한 칸 뜯어서 날리면

꽃잎처럼 흩날리겠죠

바람에 날리는 꽃무늬 휴지

고개를 돌려보면 지천에 꽃이네요

쓰러지면 그 자리가 꽃밭

우리 이제 어디선가 뚝 끊어져도

달력을 뜯듯 넘길 수 있잖아요

뜯어 먹기 좋은 빵처럼

뜯어내기 좋은 하루

 

-시집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 걷는사람, 2018

 

 


 

 

현택훈 시인 / 다시 수목원에서

 

 

한 시절 지나고

다시 찾은 수목원

키 큰 나무

잎사귀가 넓다

손가락만 한 송장벌레가

낮잠을 잔다

나무 뒤로 몇 걸음 걸어가니

달팽이가 아기 주먹만 하다

구름이 내려와 버섯이 된 그곳에

당신 발자국이 보여

내 발을 그 위에 대 보았다

 

 


 

현택훈 시인

1974년 제주 출생. 2007년 《시와 정신》으로 등단. 시집 『지구 레코드』 『남방큰돌고래』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 에세이집 <기억에서 들리는 소리는 녹슬지 않는다> <제주어 마음사전>. 2005 지용신인문학상. 2006 수주문학상. 2013 제주 4.3 평화문학상.〈라음〉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