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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새하 시인 / 망각 처방전
숲 너머 벼랑이 고고한 척 똬리를 틀었다 숲을 지나는 동안 똬리 풀린 벼랑은 사라지고 길 생기길 바란다고 과연 벼랑이 길을 향해 양보를 내놓을까.
우리는 기도한다 돌 틈 약수 바가지로 바닥 긁듯 애타는 한 방울에 그리움 담아 기도한다
시간이 바닥나도록 그리워하면 어쩌면 하늘이 돌려줄지도 몰라 끝에 서면 마주할지도 모르는 일
누군가 붙여놓은 크기 다른 이름을 가진 하루하루 시간이라는 하나가 여러 개의 톱니 물려 돈다
잊고 살아도 흐르는 시간이어서 참으로 다행이다, 모자라는 그리움 눈감아 주는 너그러운 시간 속 많은 것을 용서받고
낡은 톱니는 출렁다리를 놓고
김새하 시인 / 아, 메리카노
다섯 개의 현이 터진 피아노 침묵함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다 쉽게 일어나고 쉽게 부서지기 어려워 건반을 잡고 있던 손을 놓는다 다음을 기다릴 때, 주문은 리스트레토 투샷
에스프레소를 가르친 내 앞에 리스트레토를 마시는 남자가 되어 나타났다
등에 맨 가방 내려놓지 않는 모습이 보여주는 속내 눈치 채지 못한 것처럼 ‘금방 가야 하는 건 아니죠?’라는 말 “처녀가 딴 원두로 만들었어요”라고 했다
불어야 하는 비눗방울액을 빨아먹은 기분 그의 옷에 묻히던 시선을 털어낸다
커피 같은 밤이었고 나는 얕은 사람이다 입 가득 토마토를 밀어 넣었다 둘의 크기는 맞아떨어졌다 입술은 한 방울을 흘렸고 혀는 눈을 감았다
밤 하나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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