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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겨리 시인 / 허공 로드킬
유리창은 하루하루 늘어 가는 실금으로 짠 공중의 게르 유목을 마친 새들이 곰비임비 창으로 귀소한다 데칼코마니처럼 창공이 펼쳐진 건물 숲, 신기루가 아닌 도래지를 향한 절박한 투신처럼 유리 빛 무늬는 새가 벗어놓은 그림자일까 밑도 끝도 없는 실뿌리가 유리창 밖으로 가지를 뻗을 듯 유리에도 뿌리가 있음은 획을 긋고 나서야 드러났다 창의 실금은 새의 육필, 딱 한자, 퍽! 소리가 유일한 비망록이었으므로 새의 최초 내재율이 어쩌면 안간힘일지도 모른다 투명한 바탕에 온몸으로 쓴 투명한 서체가 전율 먼저 읽히는 것은 새가 마음의 창(窓)을 열 때 벽은 투명한 창(槍)을 세우기 때문일까 앞면엔 희망이 비치지만 뒷면엔 절망이 비치기도 하는 유리창 새의 운율과 박자, 음계와 옥타브의 불협화음처럼 돌아간 고갯짓이 헤드뱅잉을 하다 옥타브를 한참 벗어난 음 이탈 같다 벼랑은 아득하고 절망은 아뜩한 빌딩의 저의(底意) 안에서는 밖이 보이는 투과율은 밖에서는 안이 안 보이는 투신율에 비례하므로 입창(入窓) 금지 푯말에도 온몸으로 종을 울리려 하는 건 자유라는 속도엔 청맹과니라서 1옥타브 도에서 3옥타브 파까지 치닫는 두성으로 금이 간 유리창은 새의 스키드마크,
-제4회 시산맥기후환경문학상 수상작
김겨리 시인 / 액자가 있는 풍경
저 무표정한 목격자, 방 안엔 침묵 반 고요 반 여백이 없다 벽지엔 발굴된 고분의 향기처럼 꽃들의 유골이 흩어져 있고 벽에 걸려 있는 가족사진에 멈춰 있는 흑백의 시간 빛바랜 표정으로도 과거가 쉽게 고증된다 어둠이 먼저 슬어 놓은 모서리마다 불임의 늙은 거미의 알이 탁란하듯 부화하고 젖니부터 나오는 거미는 어미의 부리를 찢고 나온다 창가의 화분은 천 년에 한 번 꽃이 피는 듯 발아를 까맣게 잊고 있다
정지된 화면처럼 방 안에 곱게 누워 있는 한 노인, 사각의 모서리가 눈인 창으로 새들이 창공을 날아다니다 귀가하는 저녁나절 창이 집의 묘혈이라는 걸 어찌 알았을까 새들이 물고 온 것은 사산된 알들 복기되지 않는 침묵에 밑줄을 긋는다 밑줄도 곡哭이 될 수 있겠지만 밑줄이 의미하는 게 고독인지 부고인지 비단 밑줄만이 곡으로 오독되는 건 아니겠지만
세 시 칠 분에 멈춰 있는 시곗바늘의 마지막 기억이 새벽인지 오후인지 액자의 과묵한 입만 바라본다고 짐작할 수 있을까 집이 통째로 부장품이 되어 가는 고요한 안간힘처럼 바둑판에서 사석을 골라내듯 툭, 툭 커튼이 하의를 벗을 무렵 창밖, 내장이 다 보이는 바람이 제 꼬리를 싹둑싹둑 잘라 검은 혈서로 부고를 쓴다
못에 목을 매듯 걸려 있는 낡은 방한복 한 벌 해진 곳에서 오리털 하나씩 삐져나오다 아예 오리들이 떼로 빠져나온다 오리의 곡(哭)으로 빼곡한 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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