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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연순 시인 / 적멸(寂滅)
붉은 사과 한 알 누군가의 혀에서 달콤하게 사라진다 오래된 오동나무 한 그루 누군가의 체온에서 오동꽃 의자로 죽는다 붉은 황홀 사과의 맛 낡은 황홀 의자의 품 어제 벗의 어머니가 세상에서 무너졌다 다시 한번 하늘의 어머니가 심장에서 까맣게 무너졌다 주르륵 주르륵 기도문을 외우며 대웅전 처마가 눈물을 흘린다 우리를 세상에 내어 준 어머니가 푸른 잎사귀 빗방울로 뒤돌아보지 않고 떠내려가신다
한연순 시인 / 빈집 앞이 환하다
은행나무 한 그루 두고 그는 떠나갔다. 자물쇠에 쇳물이 흐른다. 갈라진 벽 사이로 함께 살던 벌레들 쪽문 앞 한 줌 햇살에 무성히 싹 트는 씨앗들 은행나무 한 그루 몇 년째 빈집을 환하게 밝히며 주인의 발소리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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