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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고은진주 시인 / 밥 먹는 나무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6. 2. 13.
고은진주 시인 / 밥 먹는 나무

고은진주 시인 / 밥 먹는 나무

 

 

 미선아, 밥 먹자

 어제를 기다리다보면 오늘이 희미해집니다. 나무들은 무얼 먹고 살까요? 얼마나 튼튼한숟가락을 가져야 겨울을 날 수 있을까요?

 액션스쿨 다니는 스턴트맨 지망생처럼 잔가지가 떨려옵니다. 떨리는 숟가락들 흥이 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잡식성 같아 보이지만, 햇빛식사 기다리는 중입니다.

 

 비바람이 폭식이라면 미선나무는 왜 쑥쑥 자라나지 않을까요?

 

 키가 작아도 미선이라는 이름, 적당하고 편해서 밥 먹자 하기도 밥달라 하기에도 스스럼없이 숟가락 내밀 수 있는데요. 정말이지 분홍미선 상아미선 푸른미선 둥근미선 천지에 흔한 미선, 저 많은 미선들 누구에게 안녕이라 말할까요? 숟가락 꽂는 걸 허락할까요?

한 자리에 버티면서 휘묻이하는 유구한 역사로, 떨어진 꽃 반찬으로 한상 차려놓고 밥 먹는 미선나무, 계절마다 특식은 생각해 본적도 없습니다.

 

 죽은 나무들 태양을 향해 성호를 긋고 있습니다. 나무들의 복지는 어떤 스펙일까요? 예상 강우량을 살짝 넘긴 이번 달 생활비 외면할 수 없는데요. 점점 높아만 가는 햇살을 얼마나 더 퍼먹을 수 있을지, 먹구름이 야금야금 몰려오고 있습니다.

 

 그래도 밥은 먹고 있으니까

 갓 지은 공평한 밥을 뜨고

 마디 하나 질끈 동여매겠습니다.

 

 


 

 

고은진주 시인 / 장밋빛 물 한 방울

 

 

수소 차에 관한

한 방울의 물, 그 결백한 응답을 응원한다

 

물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물뿐이어서

식은땀이 흐르지만한

방울 물방울이 뽀글뽀글 발아하고

편집되어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는

유순한 동물의 그 어떤 소리보다도 온순할 것 같았다

 

제 눈에 고인 눈물 핥아먹는 도마뱀처럼

단순해진 눈물의 몰약처럼

들숨과 날숨의 회전을 찾아

한 품종으로 개척을 꿈꾸는 물 한 방울

 

검색대에 몸져누운 원리로

수소가 되려는 의견으로

돌연, 돌직구 던진다

 

무참히 뒤집어지고 휘어지는 감정

깨지고 바꾸고 설혹 파고들면서

식물이 달리는 속도를 쑥쑥 앞질러간다

 

쾌속의 관성으로

매듭 없는 풀꽃의 뼈가 되고 장밋빛 살이 되는

한 방울 물방울의 힘

 

 


 

고은진주 시인

1967년 전남 무안 출생. (본명: 고은희).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 전문가과정 수료. 2018년 『농민신문』 신춘문예와, 『시인수첩』 신인상으로 등단. 〈5·18문학상〉 신인상과 〈여수해양문학상〉 대상을 수상. '6시 내 고향'이라는 평일 저녁 장수 프로그램의 방송 작가. 시집 「아슬하게 맹목적인 나날」, 경기문화재단 경기작가 출간 분야 기금(2021년) 수혜.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인협회, 신동엽학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