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사과 시인 / 양계장
엄마가 날 연변 근처 양계장에 맡겼을 때 양계장 아저씨는 삼천 위안에 고려인을 데려왔다며 좋아했어요 엄마는 두 시간 거리인 도시로 떠났구요 돈을 모으는 대로 국경을 넘기로 했지만 맨드라미꽃이 질 때까지 오지 않았죠 그해 마을엔 폭설이 잦았고 전기가 나갈 때마다 닭들이 무더기로 죽어갔어요 폭설에 장화 신은 아저씨들이 드나들면서 내 방엔 먹을 것들이 늘어났죠 눈 녹은 뒤뜰에 나는 지난해 받은 맨드라미 씨를 묻었어요 맨드라미 붉은 볏이 가슴을 찢고 개화할 무렵엔 부스럼이 심한 딸을 낳기도 누군지 얘기해도 되겠습니까? 하지만 마을의 누구도 닮지 않았으므로 병든 닭처럼 나만 구구거렸죠 그러거나 말거나 또다시 눈이 내렸고 닭벼슬의 피가 온 마을을 물들인지 몇 해가 지나서야 십 년은 늙은 엄마가 갈래머리 아이를 데리고 양계장을 찾아왔어요 누군가 한 명은 남아야 했기에 나는 갈래머리 아이에게 맨드라미 파종법을 알려 줬어요 그뿐이었죠 맨드라미꽃이 필 무렵 만나기로 하고, 우린 젖은 달빛에 발자국을 찍으며 걸었어요 -2024 평사리 문학대상 수상작
이사과 시인 / 방으로 돌아가야 할 때
새벽에 방에 관한 이상한 꿈을 꾸었다 합지 벽지가 누렇게 떠 있는 방
창문과 담벼락 사이 자리 잡은 간이식 부엌과 양은 냄비
그곳에서 나는 음식을 요리하고 있었다
방엔 손님이 있었는데 머리가 길다는 것 말고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어린 시절 나는 무수히 방을 옮겨 다니던 아이였다
커서도 매년 한두 번은 거처를 옮겨가며 생활했다 그중 한 곳 아직 돌아가지 않은 방이 있단 말인가?
가재도구 몇 개와 카멜색 코트가 걸려 있는 방
책상 위엔 무언가 쓰다 만 흔적들이 어지럽게 쌓여 있다 그곳에서 아직
나를 기다리고 있을 기척들과 이름 모를 한 사람
상자를 열어 기억을 돌리듯 열쇠들을 만지작거렸다
언젠간 소용이 있을지 모를 것들에 녹을 닦아 주고야, 조금 안심이 되었다
-《2025 시와사람 여름호》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김진대 시인 / 공의 각도 외 1편 (0) | 2026.02.13 |
|---|---|
| 노수옥 시인 / 가웃 외 1편 (0) | 2026.02.13 |
| 홍성남 시인 / 천붕(天崩) 외 1편 (0) | 2026.02.13 |
| 심수자 시인 / 맨발의 감정 외 1편 (0) | 2026.02.12 |
| 안미린 시인 / 라의 경우 외 1편 (0) | 2026.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