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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남 시인 / 천붕(天崩)
홀연히 가신다지만 남은 사람들은 아름답게 맺은 인연에서 새겨진 애린 조각보로 눈물을 닦습니다
슬퍼 말라 하시지만 남은 사람들은 생전의 음성과 몸짓 도저히 잊을 수 없어 가슴이 자잘이 깨어집니다
회자정리라 하시지만 남은 사람들은 회한과 눈물로 당부한 선진통일 풀지 못해 그리움 사뭇 칩니다
홍성남 시인 / 창밖은 물속입니다
창밖을 봅니다. 나무 위로 바다가 펼쳐져 있어요. 나무가 흔들릴 때마다 수면이 출렁이고, 바다 위에서 끝을 보려고 발가락을 구부립니다. 산수화가 꽃을 떨구듯, 지나간 일은 사라진 파도 같아요. 사라진 파도는 어디선가 다시 나타나겠지요. 모든 건 이어져 있으니까요. 누군가는 이걸 지금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내일이라고 해요. 나는 여기 서 있는데 나무는 흘러가고, 바다도 흘러가죠. 깊이를 모르겠어요. 옆으로 물고기가 지나갑니다. 오늘은 코르시카섬 내일은 에스파냐에 들렀다가 대서양을 횡단하는 물고기는 잠을 자면서도 헤엄쳐야 하는 운명이라고 해요. 물고기의 물길을 따라 흘러 끝을 향해 가보고 싶어요. 끝에 닿으면 끝은 달아나겠지요. 닿을 수 없는 것, 그게 생활이겠지요. 햇살이 소리 없이 바다에 쏟아집니다. 과묵한 햇살을 좋아합니다. 햇살과 바다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아요.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아요. 물고기의 행방도 궁금하지 않아요. 나는 물 위에 떠 있습니다. 바다는 흘러가고 나무도 흘러가고 나도 흐릅니다. 어떤 폐허에 닿는다면 찬란해질 수 있을까요. 물 위에 떠 있는 나뭇잎처럼, 방향도 알 수 없고 끝이 어디인지 모르는 채. 창밖은 이제 물속입니다. 나는 조용히 잠겨 있는 중입니다. -웹진 『시인광장』 2025년 6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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