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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수자 시인 / 맨발의 감정
떼어내는 불두화 꽃잎에서 걸어온 길을 감정해 본다
발 부르트도록 걷다가 달리다가 생긴 가슴 통증, 얼마를 더 견뎌야 꽃 바글바글 피워 걸어갈 길에 등불로 밝힐 수 있을까
배가 고파 발등밖에 볼 수 없는 나는 지평선 따라 쉼 없이 걸어가지만 땅의 끝은, 잡히지 않는 신기루
빠르게 사라지는 양지 뒤에서 밤을 지키는 어둠 속 까마귀 젖은 목소리 들려 올 때마다 칠흑의 하늘에 생겨나는 별자리들은
독수리자리, 물병자리, 전갈자리
마른 풀잎처럼 헝클어진 감정 가지런히 추슬러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을 수평 맞추느라 두 눈은 자꾸만 붉어진다
빛과 어둠 함께 밟으며 어제를 견디고 또 오늘을 견디는 저 맨발의 까마귀를 닮고 싶은 나
불두화로 감정鑑定한 감정感情의 무게 손저울에 가만히 얹어본다
심수자 시인 / 문장 속으로 들어
공감이란 단어를 공감하지 못해 가을 하늘에 민낯이 아리다
허공의 문장, 바람의 문장, 바다의 문장 쉼 없이 꾸역꾸역 받아먹었으나 겨울을 앞두고 느껴지는 허기
채우려 해도 채워지지 않던 비우려 해도 비워지지 않던 웃음과 울음은 머지않아 길 위의 살얼음처럼 바스락거릴 테지
초록의 시간 잡으려다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기를 여러 번 힐끗 뒤돌아본 거기 또한 하얗게 낯선 곳 맨발의 내가, 눈 내린 길 위를 서성이고 있다
사방은 벽, 어디를 두드려도 보이지 않는 문 눈빛으로 읽는 단어들은 처마 끝에 매달려 제 무게 겨운 고드름이 되었다
어둠 속에서 보이는 실낱같은 빛 한 줄기 쓴맛 뒤에 맛볼 단맛을 찾아 겨우내 꼭꼭 씹어 보아야겠다
-문예지 한국작가 2023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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