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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가톨릭 산책

[역사속의 그리스도인] 신학 · 철학자편 / 힐데가르트

by 파스칼바이런 2009. 4. 26.

 

[역사속의 그리스도인] 신학 · 철학자편 / 힐데가르트

 

 

『사랑이 모든 것에 넘쳐흐른다. 저 깊은 바닥에서 샘솟아 별들의 세계 위로 덮어 흐르며 사랑은 모두에게 기꺼이 함께 한다. 우리 왕, 가장 높으신 주에게 평화의 입맞춤을 하였기에』(빙엔의 힐데가르트).

 

중세 최초의 여성 철학자

 

중세 최초의 그리고 최고의 여성 철학자로 일컬어지는 힐데가르트(Hildegard 1098~1179). 그는 철학과 작곡, 명상과 자연요법, 식물학과 광물학, 문학 및 의술까지 아우르는 능력을 지녔던 독일 최초의 여성 신비가로 알려진다.

 

살아있던 시기에 이미 「라인 지역의 시빌」 「라인 지역의 데보라」로 알려졌던 힐데가르트는 여러 저술을 통해 인간과 세계 그리고 하느님을 살아있는 질서로 제시하며, 「하느님의 법칙 아래 있는 모든 것은 서로에 대해 응답한다」는 세계관을 펼친 바 있는데 이같은 의견은 특별히 자연 환경과 생명의 위기를 맞고 있는 현대에 이르러 유럽의 녹색주의자 등으로부터 「환경시대의 수호성인」으로 불리며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그만큼 그에 대한 연구는 종파를 넘어 교회 밖 여러 분야에서 이뤄지고 있으며 독일어 권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신비주의 의학 정신의학 심리요법 비교종교학 자연치료 생태학 페미니즘 음악 미술치료 명상 분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적용되고 있다.

 

교회에서 정식으로 선포한 성녀는 아니지만 이미 독일 권에서는 공식적이든 아니든 「국민적 성녀」로 여겨지고 있는 힐데가르트는 마치 미래 독자들을 위해 글을 쓴 것처럼 여겨진다.

약 900년이 지난 지금 오히려 더 많은 청중들을 얻고 있고 그의 사상과 학설들에 대한 책들이 넘쳐 나는 현상들을 볼 때 그렇다.

 

여덟 살 때 공동체에 맡겨져

 

1098년 독일 브레머스하임 성 힐데베르트 귀족 가문의 10번째이자 막내로 태어난 그는 힐데가르트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그의 가족적 배경에 대해 자세히 알려진 바는 없으나 형제들 중 네명이 성직 수도직에 있었던 사실을 미루어 볼 때 신앙적으로 매우 독실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여덟 살 되던 해 힐데가르트는 은수자 유타의 관상 공동체에 맡겨져 유거 생활을 하게 된다. 여기에는 당시 십일조 개념에서 10번째 자식은 하느님께 바친다는 신앙적 요소도 작용했고 또 그 시대에는 어린 소녀들이 이 같은 공동체에서 읽고 쓰는 것을 배울 수 있었던 배경도 있었다.

힐데가르트는 그곳에서 공동생활을 통한 삶을 배우게 됐고 읽고 기도하면서 라틴어와 성서 시편 그리고 성음악을 익혔던 것 같다.

 

유타의 공동체가 베네딕토 수도회 계열 수도회로 성장하면서 14~17살 사이 힐데가르트는 베네딕토 규칙에 따라 종신 허원을 하게 된다.

이때의 수도생활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는데 단지 힐데가르트가 병을 앓았고 비전을 보았다는 것만 전해진다.

 

1136년 수녀 원장에 선출된 그는 1150년 남자 수도자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처음으로 여성들만의 수녀원을 건립했으며 1165년에는 아이빙엔에 대수녀원을 축성했다.

 

그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건축가 시인 희극작가 신비가 작곡가 미술가 신학자 예언자 의사 설교가 정치가 치유가 자연주의자로서의 삶을 보였는데 전문가들은 이때부터 라인강변을 따라 수녀원 문호와 신비주의 역사가 시작됐다고 평한다.

그것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가 이같은 분위기에 힘입어 독일 신비주의를 본격화 했다는 시각에서다.

 

세살 때 현시 능력 가져

 

힐데가르트는 세상의 빛을 보기 이전부터 하느님께서 그녀에게 신비적 계시를 볼 수 있는 능력을 심어주셨다고 고백했는데 그 말처럼 그녀는 세 살 때부터 현시의 능력을 가졌다.

 

그러나 유타 수녀와 폴마르 수녀 등 몇몇에게만 그에 대해 이야기했을 뿐 다른 사람들에게는 침묵을 지켰다. 마침내 1141년 나이 마흔 세 살 되던 해 「네가 보고 들은 것을 쓰라」는 계시를 받고 10년에 걸쳐 그가 들은 모든 것을 말과 문자로 표현했다.

 

「쉬비아스- 길의 조명」이 바로 그것으로 이 책은 35개 그림을 통해 신의 창조와 인간 구원에 대한 역사를 보여 주고 있으며 천사의 창조와 타락, 인간의 창조와 타락 및 인간-우주-신 이라는 관계를 하나의 유기적인 연결고리로 이야기 하고 있다.

 

사실상 무학 출신이었던 힐데가르트는 쉬비아스를 쓰면서부터 생을 마치는 81세까지 3권의 신학저서와 77편의 시와 노래, 그리고 36점의 그림 및 500가지의 식물 동물 광물에 대한 자료와 보석 치료, 자연 치료에 관한 의학 관련 책을 펴냈다.

 

시복시성 작업 추진

 

또 수도원의 대명사인 성 베르나르도를 비롯 교황 에우제니우스 3세 등 성직자 정치인 평신도들에게 올바른 삶을 설명한 300통 이상의 편지를 남겼다.

 

무엇보다 힐데가르트는 세상을 창조하고 또 그 창조의 뜻을 완성하도록 이어가고 구원하는 원리와 근원을 「사랑」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사랑의 근본은 삼위일체의 신비로 규정됐다.

 

교황 그레고리 4세와 이노센트 4세가 시성을 제안했고 글레멘스 22세는 시성 작업을 추진한 바 있으나 아직 시성 승인은 나지 않았다.

그러나 독일 지역 교회 주교들 합의로 1971년 전 독일어권에서 매년 9월 17일을 힐데가르트 축일로 경축하고 있다.

 


 

축일 9월 17일 성녀 힐데가르트(Hildeg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