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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가톨릭 산책

성 이냐시오의 생애와 영신 수련

by 파스칼바이런 2009. 3. 29.

성 이냐시오의 생애와 영신 수련

 

 

 

예수회는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 탄생 500주년과 1540년 교황 바오로 3세의 회칙(Regimini Militantis Ecclesiae)에 의해 인준된 예수회 창설 450주년을 계기로 하여 작년 9월 27일(창립일)부터 올해 7월 31일(성 이냐시오 축일)까지를 ‘이냐시오 주년’(Ignatian Year)으로 결정하였다. 이 기간 동안 예수회에서는 대외적 행사를 지양하고 수도 생활의 내적 쇄신을 기하기로 하였다.

 

 

이냐시오 주년의 의의

 

각 수도회는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생활화함으로써 그리스도의 현존과 하느님 나라의 구현을 보여 준다. 성인이나 수도회를 통해 보여지는 하느님 나라의 단편적인 모습들은 장차 우리가 살 영원한 나라의 일부분이며 이로써 교회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신앙의 신비로 초대하며 사랑의 일치로 품는다. 이 일치와 사랑의 한 모습을 일목요연하게 보여 주는 ‘이냐시오 주년’의 의의는 성인과 수도회의 업적을 회고하고 그 영성 생활을 열거함으로써 평범한 신앙인들에게 신앙의 신비를 뜨겁게 체험하게 하는데 있다.

 

이에 예수회에서는 이 주년을 마감하면서 현대 사회와 교회에 봉사하는 자신들의 사도적 열성에 대해 성찰하고 이 시대의 요청에 적절히 응답하고 있는지를 검토하며, 오늘날 우리 교회에 있어서 예수회의 창설 정신과 의의 그리고 활동 전망을 고찰하여 성인의 정신과 수도회의 영성을 다음과 같이 정리, 총합하였다.

 

 

성 이냐시오의 생애

 

성 이냐시오는 신대륙의 발견과 인문 사회주의의 융성, 마르틴 루터에 의해 시작된 종교 분열(프로테스탄트) 운동 등 대사건들이 한꺼번에 소용돌이치던 16세기 대격변기의 사람이다. 그는 1491년 스페인 기푸즈코아 지방에 있는 바스크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회심 이전의 생활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나 그의 자서전에 의하면 “26세까지는 세속적인 허영에 몰두했고, 또 거대하고도 허무한 열망을 가지고 세속적인 명예를 얻으려 무술 연마로 자신을 단련시키며 지냈다.”고 한다. 스페인 국왕을 섬기는 기사가 된 그는 프랑스와의 전투에서 성을 사수하다가 포격을 받아 증상을 입었다. 그의 용기에 감동된 프랑스군은 비록 적군이지만 이냐시오를 로욜라에 있는 가족에게 후송해 주었다.

 

로욜라의 성에서 힘겹게 회복기를 보내던 그는 어느 날 책을 읽고 싶었다. 그때 그가 구할 수 있는 책이라곤 “그리스도의 생애”와 “성인 열전”뿐이었는데 그는 그 책에서 처음으로 고귀한 인물들을 접하였고 그들을 닮고 싶어졌다. 거룩한 경쟁심에 불탄 그는 “성 도미니코가 이것을 행했으니 나도 해야 한다. 성 프란치스꼬는 이런저런 일을 했다. 그러므로 나도 하겠다.”는 뜨거운 열망을 계속 느꼈다. 이와 함께 세속적인 업적에 대한 공상도 계속되었는데, 그런데 거기에는 서로 다른 점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세상사를 공상할 때는 당장에는 매우 재미가 있었지만 곧 싫증을 느껴 생각을 떨치고 나면 만족보다는 황폐해진 기분을 느꼈다. 그러나 성지 예루살렘에 가는 일, “성인 열전”에서 본 고행들을 모조리 실행한다고 상상해보면 위안을 느낄 뿐 아니라 생각을 끝낸 다음에도 흡족하고 행복한 여운을 맛보는 것이었다. 생각에 몰두하면서 따져 보는 이런 과정에서 그는 영의 세계에 눈을 댔고 영들의 차이를 분별하는 법을 차츰 알게 되었다.

 

건강이 회복되자 그는 예루살렘에 가서 주님과 똑같이 살려는 소망을 실현하고자 집을 떠났다. 이것은 속죄와 새로운 삶을 위한 결정의 표시였다. 그는 몽세라트에 가서 총고백을 하고, 자기 옷을 가난한 사람에게 벗어준 다음 허름한 순례자의 옷으로 갈아 입었다. 이어서 예루살렘으로 떠나기 전에 자신의 체험을 종합하고 싶어서 만레사의 동굴을 찾아갔다. 그는 그곳에서 은둔자로 지내는 동안 수많은 유혹과 영혼의 변화들을 겪으면서 하느님의 신비에 접할 수 있었다. 이 시기에 그는 성삼위께 대한 신심과 창조의 손길에 대한 믿음, 성체성사 안의 하느님의 현존,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확실한 깨달음을 얻는 체험을 하였다. 그러나 10개월이 지난 어느 날, 성인은 그때까지 실천해 온 금욕과 지나치게 세심한 방법들이 영성 생활의 목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부터는 오직 사도적 투쟁을 통해 하느님 나라를 임하게 하는 복음의 진정한 목적에 따른 평범한 방법을 택하기로 결심하였다. 이는 실로 놀라운 발견이 아닐 수 없었다.

 

이렇게 내적 준비가 갖추어지자 그는 예루살렘으로 떠났다. 많은 간난신고 끝에 성지에 도착한 그는 그곳에서 이교도들을 개종시키면서 살고자 했다. 그러나 성지 관리자들이 이를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자 그는 이것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바르셀로나로 돌아왔다.

 

그는 비록 이교도 국가에서 선교하려는 계획은 실패하였지만 “영혼들을 돌보려는” 열렬한 사도직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느낀 그는 서른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린 사람들과 자리를 같이하여 라틴어를 배우는 등 학구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공부를 하는 동안에 지나친 열의와 봉사로 종교 개혁자의 혐의를 받아 갇히거나, 동료들이 자기 곁을 떠나는 시련을 당했지만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잘 견디었다.

 

또한 그는 당시 인문학의 중심을 이루었던 파리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동지들을 규합하였다. 그들은 자주 모임을 갖고 영적 나눔을 계속하는 동안 차츰 우정이 두터워졌다. 마침내 그들은 자신들을 한데 모으고 일치시켜 주신 분이 하느님이심을 깨닫고 ‘영혼들의 더 큰 유익을 도모하기 위하여’ 이미 이루어진 일치와 동료애를 더 강화시키고 견고케 하는 공동체를 창설하였다. 이 “주님 안의 벗들”이 예수회의 창설 회원들이다.

 

 

예수회의 역사적 의의

 

예수회는 창설되자마자 급속히 발전하여 초대 총장인 이냐시오 생전에 이미 회원수가 1만 명을 넘었고 열두 개의 관구를 이루었다. 예수회는 유럽에서 특히 프로테스탄트의 확산을 막고 트리엔트 공의회의 결정을 생활화하는 일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그리고 아시아 및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설교와 교육, 사회 사업의 실행, 기타 온갖 형태의 사도직을 통하여 눈부신 선교 활동을 전개하였다.

 

포교 사업의 수호자인 성 프란치스꼬 사베리오와 “천주 실의”의 저자인 마태오 리치, 인도에서의 적응주의 선교로 알려진 데 노빌리 등은 모두 이 시대의 예수회원들이다.

 

그러나 예수회는 급격한 발전과 수도회의 특성인 교황께 대한 탁월한 충실성으로 말미암아 교회의 적들로부터 많은 시기와 모함을 받게 되었고 급기야 1773년에는 해산되고 말았다.

 

이 해산 사건에 직접 관련되는 대표적 사건들은 파라과이 축소지 문제와 얀센파와의 논쟁 및 중국의 전례 문제이다. 이러한 사건들은 중세에서 근세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교회가 교회 본래의 정체성과 적응성을 정리 종합하는 과정에서 맞는 대표적 사건들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의 적들에 의해 일시적으로 수도회 해산이라는 불운을 당하기는 했으나, 역사와 교회는 결국 예수회가 사심 없이 진리를 위해 일해 온 병사들이었음을 확인해 주었다. 1814년 예수회는 재건되었고, 설교와 교육을 통한 사도직 활동이 재개되고 과학적인 탐구와 사회 활동, 가난한 사람들과 병든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선교가 다시 전개되었다.

 

예수회는 16세기 가톨릭 세계의 쇄신과 부흥에 커다란 공헌을 남겼다. 중세의 봉건 질서 속에서 안주하던 낡은 신심과 성속(聖俗) 이원론의 수도원 제도를 타파하고, 적극적으로 사회에 개입하는 역동적인 수도회를 등장시킨 것이다. 따라서 예수회의 영성은 활동 수도회의 전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예수회는 활발한 선교 활동으로 프로테스탄트의 공격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하였을 뿐 아니라 가톨릭 교회가 유럽을 중심으로 한 지역성에서 벗어나 공번된 교회의 모습을 갖추는 데 일익을 담당하였다.

 

다음으로 예수회는 교육과 학문을 통하여 교회와 근대 사회에 봉사한 바가 적지 않으며 16세기 이후 유럽의 고등 교육의 융성에 크게 기여하였다.

 

다음, 예수회는 근대 이후 전환기에 처한 교회에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였고 시대에 적응하는 교회가 되도록 조력하였다. 또한 구원에 관한 진리에 있어서조차 교회는 예수회의 방식을 이해하고 지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교회는 복음 선교와 사회 개발 및 정의의 문제가 상호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천명하였고 선교 방식에 있어서도 지역 문화를 최대한 존중하는 토착화 선교 방식을 권장하기에 이르렀다.

 

 

성 이냐시오와 라 스토르타의 그리스도

 

“하느님께 더 큰 영광을.” 성 이냐시오와 예수회의 정신을 알기 위해서는 ‘라 스토르타의 현시’를 빼놓을 수 없다. “그때 성부께서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 이냐시오를 가리키며 ‘이 사람을 종으로 삼아라.’ 하셨고 성자 예수께서는 ‘내게 봉사하시오.’ 하셨다.” 이냐시오는 이 현시를 보고 영혼의 변화를 느꼈다. 그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자신을 당신의 아드님과 함께 두시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 그는 자신이 성자와 똑같은 처지에 놓여 졌음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고 기뻐하였으며, 이 현시 이후 자신의 작은 단체에 예수회라는 이름을 붙였다. 죄인이면서도 예수님의 벗으로 불림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스스로 자부하는 이 현시의 메시지와 회원들, 그들이 따르는 그리스도는 영광의 그리스도가 아닌 십자가를 지고 우리를 위하여 고통당하서는 ‘라 스토르타’의 그리스도이시다.

 

이 그리스도의 벗으로 부름을 받게 된 ‘라 스토르타’의 정신은 수도회 회헌에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닮으려는 열망 때문에 그분처럼 모욕과 무고와 치욕적인 언동뿐 아니라 심지어 자기 탓이 아니라면 바보로 취급되는 것도 기꺼이 원할 것이다.”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따르되 모욕과 고통을 당하시는 그리스도를 닮고자 하는 것이 예수회 정신의 기본을 이루고 있다.

 

그리스도의 벗으로 그분께 충성을 다하는 이 체험은 교회와 교황께 대한 충성으로 구체화되었고, 이냐시오와 예수회를 특징짓는 정신이 되었다. 그리스도와 운명을 함께하는 자는 그리스도께 귀의하듯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에 귀의하고,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인 교황께 순명을 다하게 된다. 그러므로 교회에 대한 사랑이 예수회 영성의 특징이듯 회원들 역시 그리스도와 한 교회를 이룩하기 위해 자신의 전인격을 투신한다. 따라서 예수회원이 서약하는 ‘교황이 영혼의 선익과 신앙의 전파에 관하여 내리는 명령은 어떤 것이든 실행하며 어디에 파견되든지 아무런 핑계나 변명, 이의 없이 즉시 가야 하는 고유하고 특별한 서원’은 또한 회원들에게 내리는 특별한 은총을 의미한다. 교회와 교황께 대한 이 순명 서원의 정신은 그리스도교 신비를 이해하는 첫걸음이 되기도 한다.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반역의 정신이 그리스도께 이르러 비로소 순종이라는 아름다운 교회의 용어가 되고, 그리고 한 성인의 삶과 그 정신으로 이어지는 은총의 이 언어는 오늘날 우리가 다시 한번 되새겨 보아야 하는 교회의 정신이다.

 

고도의 문명, 최고의 지성을 자랑하는 현대 사회의 어두운 일면은 바로 이 순종을 바보 혹은 유치함으로 해석하는 왜곡에 있다. 교회의 신비는 하느님 아버지께 순종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에서 비롯되었다.

 

 

예수회의 정신과 영신 수련

 

성 이냐시오는 회원들에게 예수회 영성의 특징을 이루는 이 순명에 있어서 탁월하기를 요구했다. 그가 요구한 순명이 얼마나 절대적이었는가는 회헌에 명시된 다음과 같은 말에서 잘 드러난다. “시체처럼 순명하라.”  “노인의 손에 들려진 지팡이처럼 순명하라.”

 

그가 요구하는 이 절대적 순명은 단순히 장상에게 순명하는 것보다 더 심오한 차원의 뜻을 가진다. 이는 무엇보다 순명의 원의가 하느님의 뜻을 따름에 기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 이냐시오는 라 스토르타의 체험 이후 창조주 하느님의 무한하신 위엄 앞에 존경과 경배심으로 가득 차 있었기에, 그에게 있어서 절대 순명 즉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것 외에는 감히 다른 무엇을 생각할 수가 없었다. 하느님의 손에 의해 창조된 유한하고 비천한 인간 조건을 깊이 의식하며, 자신의 원의가 하느님의 원의와 대립될 수 있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을 뿐 아니라, 더구나 하느님의 원의 한 구석에 피어날 수 있는 인간의 미소한 원의의 가능성까지도 고려해 보지 않았다. 그는 예수께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오신 것처럼 철저히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자기 삶의 유일한 목적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것이 예수회의 순명의 원형이다.

 

예수회의 또 하나의 특징은 “활동 안에서의 관상”이다. 활동이 우리의 기도를 방해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관상 기도의 연속이라는 낙관주의는 활동 수도자는 물론이려니와 평신도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 수 있는가? 우리가 오직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자 하는 순수한 지향만을 가지고 활동한다면 모든 일이 기도가 된다. 기도하기 위해서 매번 일손을 멈추거나 성당을 찾아가야 하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의 뜻에 맞는 일, 곧 우리가 순수한 지향과 애덕 정신을 가지고 하는 모든 일은 기도뿐 아니라 직업 활동, 가사 노동, 학생들의 공부 등 우리의 모든 활동이 기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즉 ‘관상, 그러나 활동과 조금도 분리되지 않는 관상’을 의미 한다. 이러한 활동과 기도의 결합은 기도의 최종 단계인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이와 같은 역동적인 영성에 힘입어 예수회원들은 수도원 안에 머물러 있지 않고 말보다는 행동으로 “만사에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섬기기 위하여” 세상으로 나가 힘껏 일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사도직을 우선으로 하기에 창설 초기부터 성무일도의 공동 기도와 수도복을 포기한 것은 수도회의 또 다른 특성이다. 따라서 예수회를 일컬어 ‘흩어지는 공동체’(communitas ad dispersionem)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기동성을 수도회의 특성으로 삼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회원들에게 각별한 분별력을 요구하는 것 역시 수도회의 성격을 결정짓는 요인이다.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곳과 계시지 않는 곳, 사태의 본질과 비본질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수회원은 종선 서원을 하면 그를 인도하는 외적 규범은 완전히 없어지고 그 대신 “분별 있는 사랑”이라는 단 하나의 내적 규율이 주어진다.

 

 

영신 수련

 

예수회의 영성을 이루는 이러한 특성들은 ‘영신 수련’을 통해서인데 이는 ‘영신 수련’이 예수회원의 생활과 사명의 원천이 되는 원체험이기 때문이다. 이 ‘영신 수련’은 보통 한 달간 완전한 침묵과 고독 속에서 피정 형식으로 진행된다. 거기에서 피정자는 경험 있는 지도자의 지도를 따라 조직적인 방법으로 기도와 묵상을 하면서 무질서한 감정을 극복하고 구원을 위하여 자기의 삶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고 발견하는 것이다.

 

“영신 수련”은 머리말과 본론 및 여러 가지 부칙 등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머리말은 영신 수련의 지도자와 그 수행자들이 영혼의 더 큰 수확을 거둘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인데, 해설과 권고 및 암시 등 20개의 조목을 포함하고 있다. 그 다음은 본론에 들어가는데, 이것은 대략 4주간으로 나누어서 행하기로 되어 있다.

 

첫째 주간 서두에는 모든 사람의 기본적이고 공통적인 인생관에 대한 고찰과 묵상으로서, 인간의 창조 목적에 대한 통찰로 시작되어 죄에 대한 묵상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사람의 본질에 대한 구성적 원리이고, 우주의 질서이며, 하느님의 뜻이요 사랑이며 인생 철리(哲理)에 어긋나는 자기 죄를 악마의 죄와 아담의 죄에 비교하면서 묵상하고, 죄의 크기와 나쁨, 징그러움을 인식하고 아파하게 하는 것이다. 다음, 죄의 결과를 말하고 있는데 이는 마땅히 되어야 할 착한 사람 대신에 죄 중에서 현세 생활을 끝마친 악인들의 종착점인 지옥을 묵상케 한다. 이와 같이 죄를 묵상하는 가운데 양심 성찰의 방법과 총고백의 유익성을 제시하여 영신 수련을 수행하는 영혼이 죄에서 정화되어 하느님께로 나아갈 수 있도록 터전을 닦아 준다.

 

제2주간부터는 영신 수련의 몇 가지 기본적인 묵상 자료와 함께 그리스도와 교회를 묵상하게 하는데 그리스도의 강생과 생애 그리고 수난과 부활의 묵상을 통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듣고, 묵상하고, 믿고, 바라고, 사랑하고, 본받음으로써 인간성을 통해 표현되는 초자연적인 그리스도의 정신을 차례로 묵상하게 된다. 이 묵상은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거룩한 교회를 보다 쉽게 이해하고, 나아가서 교회의 정신에 의하여 교회와 더불어 그리스도의 성화 사업에 참여할 것을 바라본다. 이때에 복음적 완덕에로의 생활 양식을 묵상하고 선택할 기회로 두 개의 깃발, 세 가지 타입의 사람들 및 겸손의 세 가지 단계 등에 대한 묵상이 제시된다. 두 개의 깃발에 대한 묵상은 대립된 진영의 두목인 사탄과 그리스도의 상반된 의도와 수단을 인식케 함으로써 사탄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고 그리스도를 충실히 따르게 한다. 세 가지 타입의 사람들에 대한 묵상은 하느님을 뵈옵고 구령하기를 원하는 사람들 중에 있을 수 있는 세 가지 타입의 사람들을 고찰하고 보다 완전한 타입을 본받도록 한다(이에 의하면, 첫째 그룹은 원하기는 하나 죽을 때까지 아무런 수단도 쓰지 않는 사람들, 둘째 그룹은 수단을 쓰고 노력은 하나 온전한 마음으로 하지 않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셋째 그룹은 하느님을 섬기는 일 외에는 아무것에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물질에 대한 애착심에서 완전히 마음을 비운 사람들이다. 즉 온전한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려는 관대해진 영혼들을 가리킨다).

 

겸손의 세 가지 단계에 대한 묵상은 그리스도를 본받는 데 핵심이 되는 것을 말해 주고, 또 둘째 주간에 제시된 선택에 대한 여러 가지 규칙과 더불어 예수님을 내 마음의 거울로 삼아 그분을 더욱 가까이 따르는 길을 발견케 하고, 순수한 사랑에서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케 한다. 이 겸손의 셋째 단계는 성 이냐시오의 수덕론에서 볼 때 능동적 의미로 최고봉이다.

 

셋째 주간과 넷째 주간에는 주로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을 묵상하는데, 이는 수난과 십자가를 거쳐서 부활하고 영복에 이른 그리스도의 생활의 신비를 인식케 하는 동시에, 그리스도와 함께 수고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에 들어가는 진실한 그리스도교 인생관을 내면적으로 받아들여 마침내 하느님께 대한 사랑으로 관대해진 영혼은 성 이냐시오의 봉헌기도를 자기의 기도로 바칠 수 있게 된다.

 

주여, 나를 받으소서.

나의 모든 자유와 나의 기억력과 지력과 모든 의지와

내게 있는 것과

내가 소유한 모든 것을

받아들이소서.

당선이 내게 이 모든 것을 주셨나이다.

주여,

그 모든 것을 당선께 도로 드리나이다.

모든 것이 다 당신의 것이오니,

온전히 당선 뜻대로 그것들을 처리하소서.

내게는 주의 사랑과 은총만을 주소서

이것이 내게 족하오니

그 이상 바랄 것이 없나이다.

 

영신 수련이 교회에 끼친 혜택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우선 파리 대학 재학 중의 프란치스꼬 사베리오를 비롯한 수 명의 동지들이 성 이냐시오의 지도를 받으면서 영신 수련을 받은 후,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봉사의 열정으로 가득 차서 후일 성 이냐시오와 함께 예수회를 창립했다. 그 후 모든 예수회원은 물론이고 성 프란치스꼬 살레시오,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예수 아기의 성 데레사 등 많은 성인 성녀와 목자들이 이 수련을 거쳤다.

 

교황 비오 11세는 1929년의 회칙에서“‘영신 수련’은 구령과 완덕의 길에 있어서 영혼 지도상 가장 현명하고 보편적 법전인 동시에 가장 깊고도 견고한 경건심의 마르지 않는 원천으로서 생활 개선의 길을 가르쳐 주며 영신 생활의 높은 수준에 이르는 지름길을 밝혀 주는 엄중한 각성의 소리로서 대단히 정확한 지도서가 되었다.”고 찬탄하셨다. 아울러 회칙은 “영신 수련”의 탁월성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즉 그릇된 신비주의의 위험이나 오류의 염려가 전혀 없는 교리적 우수성, 어떠한 계층이나 신분의 사람에게도 각각 자기 생활에 맞출 수 있는 적응성, 각 부분의 상호 연관성 그리고 차례차례로 연결되어 있는 진리 묵상의 명쾌한 순서로 짜여 있다. 따라서 영신 수련은 죄의 굴레를 벗어 버리고 정화된 다음에 자기를 이기고 사욕 편정을 극복한 후 안전한 길에 오르게 하여 기도와 하느님 사랑의 최고봉으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수많은 영신적 교훈을 준다는 점 등을 지적하였다.

 

 

예수회의 전망

 

예수회는 인류를 짓누르고 있는 무신론에 대해 ‘힘을 다하여’ 강력하게 저항하라는 특별 임무를 교황으로부터 부여받았다. 그러므로 각 예수회원은 기도와 활동을 통해 무신론 퇴치에 참여해야 한다. 또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인 교회 일치 운동, 비그리스도교 종교들과의 관계 심화, 교회와 제문화들과의 대화 등에 있어서도 효과적인 공헌을 당부받았다.

 

예수회원들은 본당이나 대학의 강의뿐 아니라 난민촌과 인권이 유린되는 곳 그리고 무신론 세계까지도, 어디서나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하고 그리스도의 나라를 확장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들은 현대 세계에 복음을 전파함에 있어서 복음의 정신에 입각하여 신앙의 봉사와 정의 구현을 일치시키려 하기에 체제와 사회 문제에 관여하기를 회피하지 않고 가난한 이들과의 유대를 강화해 가고 있다.

 

영신 수련의 핵심은 “인격적인 만남”인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현대 신학이 강조하는 것도 마음 즉 인격이다. 또한 영신 수련의 기본 자세는 복음 정신과 같이 자기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인데, 현대 심리학에서도 인격의 성장은 획득과 동화의 원리가 아니라 자기 증여, 사랑과 봉사로 자기를 다른 사람에게 바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현대는 변화와 혼란과 불확실성에서 성 이냐시오의 시대와 공통된다. 현대의 도전에 맞서고 있는 우리를 성 이냐시오는 영신 수련을 통하여 그리스도교 생활의 원리와 기초에로 초대한다. 이것이 다름아닌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진정 마음에 둔 교회의 쇄신이기도 하다. 여기에 성 이냐시오 영성의 현대적 의의가 있다.

 

<예수회 자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