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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가톨릭 산책

[영성으로 읽는 성인성녀전]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by 파스칼바이런 2009. 10. 27.

 

[영성으로 읽는 성인성녀전]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정영식 신부 · 효명고등학교 교장, 최인자 · 엘리사벳 · 선교사

 

(1) 하느님 열렬히 사랑하고 갈망

 

일명 소화 데레사라고 불리는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Sta. Teresia a Iesu Infante, 축일 10.1)는 프랑스에서 태어났고 프랑스에서 사망했다.

하지만 그만큼 전 세계적인 공경을 받는 이도 드물다.

24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선종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성인품에 오른 것만 봐도 그의 남다른 영성의 깊이를 알 수 있다.

 

1873년에 태어나 1897년 9월 30일에 선종했다.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알랑송이라는 곳에서 출생했다.

9명의 아기를 낳은 부모는 매우 신심이 두터웠으며 경건했다.

막내 데레사는 특히 그러한 부모님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

데레사는 여느 막내와 달랐다. 겸손하고 양순했으며, 부모를 극진히 사랑했고, 특히 아버지를 잘 따랐다.

8살 때 리지외에 있는 베네딕토회 소속 학교에 들어가 기숙사에서 기거하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동료들 간에 모범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9살 때 병에 걸려 죽음의 위기도 겪었으나, 동정 성모 마리아의 전구하심으로 완쾌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데레사가 있었던 병실의 성모상은 늘 데레사를 보고 미소를 띠었다고 한다.

 

데레사는 이후 15살이 되자 리지외에 있는 가르멜회 수녀원에 들어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수도원측은 아직 데레사의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데레사는 로마 순례 여행을 나서는 아버지를 따라 로마로 가게 된다.

순례자들이 교황을 알현할 때였다.

소녀 데레사는 교황에게 “나이는 비록 어리지만 꼭 수녀원에 들어가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교황은 빙긋이 웃었다.

그리고 그런 일은 나에게 와서 말할 것이 아니라 소속 교구 주교님께 하라고 했다.

하지만 데레사는 물러서지 않고 계속 수녀원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애원했다.

그러자 교황은 “딸아, 안심하여라. 하느님의 뜻이라면 꼭 수녀원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하고 위로해 주었다.

프랑스로 돌아온 데레사는 주저 없이 소속 교구장 주교님께 수녀원 입회를 청원하는 편지를 보냈다.

돌아온 대답은 ‘허락한다’였다.

교황청까지 가서 수녀원 입회를 청할 정도인 데레사의 열정이 응답을 받은 것이다.

수녀원장의 3개월 시험 기간을 지낸 데레사는 곧 그토록 동경하던 가르멜 수녀원에 들어가게 된다. 1888년 4월 9일이었다.

 

데레사는 이후 하느님과의 합치를 위해 참으로 눈물겨운 노력을 하게 된다.

그의 고통과 희생에 대해서는 오직 하느님께서만 아실 것이다. 실제로 워낙 숨은 성덕, 드러나지 않는 완덕을 구현한 탓에 수녀원 식구들도 처음에는 데레사가 어떤 경지에 이르렀는지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그의 성덕이 뛰어남을 알게 된 것은 데레사의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였다.

몸이 약해 병에 걸릴 때가 많았고, 늘 몸에 힘이 없었지만 아무리 천한 일이라도 이를 즐겨했으며, 오직 자기를 완전히 극복하는 극기의 덕을 닦는데 전심했다.

 

데레사는 하느님을 특별히 열애했다.

진정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게 되면 하느님의 피조물, 특히 인간도 함께 사랑하게 되는 법이다. 데레사가 그랬다.

그는 모든 영혼을 구하려는 열의에 불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했다.

오랜 중병으로 병석에 누워 있었던 마지막 순간에는 견디기 힘든 고통을 한마디 불평 없이 참아 견디며 머나먼 지방에서 선교하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삶과 기도를 바쳤다.

그는 이러한 방식으로 선교 사명을 수행했다.

이것이 수녀원 안에서만 생활했던 데레사가 전 세계 신학교와 선교 사업의 수호성인이 된 이유다.

 

그런데 데레사는 지상 삶에서만 사랑을 실천한 것이 아니다.

그는 임종을 앞두고 이렇게 말했다.

 

“내가 천국에 가면 지상에 장미의 비를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장미의 비는 은총을 말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 장미의 비는 지금도 내리고 있다.

그는 1897년 선종한 지 불과 26년 만인 1923년에 시복됐고, 2년 뒤인 1925년에는 성인품에 올랐다.

 

이후 데레사를 공경하는 움직임이 전 세계에 전파되었다.

그 원인은 단순히 데레사의 전구로 인해 많은 기적이 있었다는 것에 있지 않다.

바로 그 자신의 완덕이다.

사실 데레사는 세계 역사상에 남길 만한 대사업을 이룩한 분이 아니다.

그가 실천한 것은 오직 하나였다.

하느님을 열렬히 사랑하고 갈망하는 것, 그리고 매일의 삶 속에서 하느님의 삶을 구현시켰을 뿐이다.

 


 

 

 

[영성으로 읽는 성인성녀전]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2) 초자연적 덕 겸비한 완덕의 구현자

 

 

요한 보스코 성인에 대해 설명하면서도 언급한 내용이지만,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3가지를 가지고 나온다. 신체와 정신, 영(靈?마음)이 그것이다.

 

인간은 이 3중 구조 안에서 자신을 성장시키고, 이웃과 관계를 맺고, 세계 안에서 갖가지 상황에 대처하며 역동적으로 살아간다.

이 세 가지가 잘 조화를 이룰 때 나의 내면 형성이 잘 되는 것이고, 더 나아가 이웃과의 상호 형성, 주어지는 상황에 대한 상황 형성, 세계 안에서의 세계 형성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신체, 정신, 영 중에서 어느 한 가지만 강조되거나 혹은 부족하게 되어선 안 된다.

신체적인 면만 강조하거나, 정신적인 면만 강조하거나, 영적인 면만 강조해선 형성의 신비를 이해할 수 없다.

지극히 단순하게 예를 들자면 이렇다. 수영을 잘 하기 위해선 신체 근육을 발달시키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 정신적인 차원에서 수영의 기법을 훌륭한 스승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더 나아가 신앙인이라면 수영하는 그 자체 속에서 영적인 승화를 이루고 영적인 의미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신체적이고 정신적인 차원에서만 이야기 하자면 윤리, 철학, 심리학, 의학을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면만 가지고선 진정한 행복, 진정한 인간 완성에 도달할 수 없다.

진정한 행복과 인간 완성은 영적인 차원의 결합이 이뤄질 때 가능하다.

반대로 감각적인 체험과 신체에 대한 사랑, 정신적인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진정한 인간 완성 또한 어렵다고 보아야 한다.

 

영적이지 않은 사람도 윤리적일 수 있다. 종교를 가지지 않아도 착하고 바르게 살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윤리적 인간은 영적인 차원의 보완 없이는 진정한 윤리의 완성을 이룰 수 없다. 초자연적인 덕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이러한 초자연적인 덕, 영적으로 승화된 덕을 구현할 수 있을까.

 

우선 하느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합치의 덕」을 닦아 나가야 한다. 하느님과 완전히 합치되기를 바라고 희망하고 삶 안에서 이를 실천해야 한다. 또 이웃과의 관계에 있어서 「연민의 덕」을 닦아 나가야 한다.

 

또한 우리에게 주어지는 다양한 상황들에 대해선 「융화의 덕」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세계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인간의 힘으로 무엇을 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인간의 권위를 과도하게 내세울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뜻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그런 참된 역량을 발휘하는 의지와 함께, 세계 안에서 주어진 상황들을 잘 가꾸어 나가기 위해 진리를 인정하고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인정의 성향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선 고집스럽게 나 자신의 주장을 지나치게 내세우지 않는 개방성의 성향과 과거의 나의 생각과 습관에 집착하지 않는 초탈의 성향이 필요하다.

이때 나 자신을 낮추고 늘 받아들여야 한다는 초자연적인 깨달음에 한 단계 가까이 도달할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나가보자.

크든 작든 많은 사건들 안에서는 늘 하느님의 뜻을 찾고 실천하는 순명의 성향이 요구된다.

 

또한 인간들이 그토록 집착하는 사물과의 관계에서는 단순함의 성향을 길러야 한다.

영성적 차원에서 말하는 ‘단순함’은 사물과 재산에 욕심이 없는 것이다.

욕심이 깃든 마음에는 평화가 자라지 않는다. 세상에는 ‘내 것’이 없다.

일시적으로 빌려서 사용할 뿐이다.

영원의 차원에서 보면 세상 모든 만물은 모두 창조주 하느님의 것이다.

이것을 아는 것이 바로 참된 ‘지혜’다.

여기에 인간에 대한 외경심 혹은 존경심의 성향을 덧붙인다면 금상첨화다.

 

지금까지 언급한 이러한 성향들에 대한 깨달음을 얻으면 얻을수록 우리는 확고함의 성향을 가지게 된다. 확고함은 완고함과는 다르다.

완고한 사람은 자기 생각에 너무 빠져 있어서 자신의 뜻을 버리지 않는다.

하지만 확고한 사람은 진리를 따르고자 하기에 개방되어 있다. 그래서 부드러움의 성향, 부드러움의 덕을 동시에 갖는다.

 

우리는 성인 성녀들의 삶 안에서 이 모든 초자연적인 덕들이 완벽하게 겸비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그 가운데서도 소화 데레사 성녀는 우리가 바라보고 따를 수 있는 모범적인 완덕의 구현자 중 한 분이시다.

 


 

 

 

[영성으로 읽는 성인성녀전]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3) 고통 속에서도 주님께 의지한 작은 꽃

 

 

1873∼1897년. 소화 데레사 성녀가 이 땅에 머문 기간은 24년에 불과하다.

청록파 시인 조지훈(趙芝薰, 1920∼1968)이 시(詩) 「승무」(僧舞)에서 노래한 것처럼 “정작으로 고와서 서럽다”. 하지만 성녀는 24년이라는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도달할 수 있는 그 정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삶은 어린시절부터 고통의 연속이었다.

이는 훗날 데레사가 완덕으로 나아가는 기회요 초석이 된다.

데레사는 9살이 되던 해에 큰 병을 앓았다.

정확히 어떤 병인지는 알 수 없지만 죽음 위기까지 갔던 것으로 보았을 때, 큰 병이 아니었나 싶다.

태어나면서부터 몸이 약했던 데레사는 9살을 넘기지 못할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그 큰 육체적 고통 속에서 이 작은 여자 아이가 기도를 한다.

그 때, 9살 소녀는 병실의 성모상이 미소를 짓는 체험을 하게 된다.

초등학교 2학년 나이, 어린 아이의 입장에서 볼 때 수시로 밀려드는 병마의 고통은 참기 힘들었을 것이다.

친구들이 있는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공부도 할 수 없는, 세상에 오직 홀로 떨어져 있는 듯한 외로움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어린나이의 데레사로선 이러한 고통의 의미를 해석할 길도 없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처럼 어린 시절의 고통을 통해 데레사가 “나는 한없이 약한 존재”라는 체험을 절절히 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는 점이다.

 

그런 데레사에게 2~3년 뒤 또 다른 신비체험이 다가온다.

첫영성체를 하는데 물방울이 흘러내려가면서 바닷물로 들어가는 것을 체험한 것이다.

물방울 하나도 채 되지 않는 자신이 한없이 넓은 하느님께 스며들어가는 것을 몸으로 느낀 것이다.

바다 앞에서 작은 물방울 하나는 무(無)와 마찬가지다.

존재해도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바다라는 거대한 존재 앞에서 물방울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이런 강렬한 체험은 더더욱 하느님께 완전히 의탁하게 했다.

그래서 데레사는 첫영성체 후 “나 자신의 자유를 없애 주십시오”라고 기도했다.

왜냐하면 자신은 한없이 약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한없이 강하신 하느님의 힘에 영원히 결합하고자 했던 것이다.

완벽한 비움이다. 그러자 예수님은 연약한 데레사에게 당신이 매우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체험하게 해 주셨고, 그 결과 물방울이 바닷물 속에 사라지는 것같이 신적 신비와 합치되는 체험을 허락하신 것이다.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다. 10세 전후의 어린 여자아이는 그저 빈그릇이었을 뿐이다.

하느님의 신비에 대해 기술한 영적 독서를 많이 했을 리 만무하다.

하느님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이 거의 없다.

어릴 때부터 병약한 탓에 친구가 많거나 대인관계가 많았던 것도 아니었다.

소녀가 주위로부터 받은 영향이라고는 부모님과 가정 공동체의 깊은 신심이 전부였다.

그런데도 그녀는 강한 신비 체험을 했고, 그 영향으로 수도회 입회를 결심하게 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한 영혼을 통해 세상을 정화하는 방법은 이토록 신비롭다.

하느님은 그렇게 데레사에게 수도성소에 대한 열망을 심어 주셨다.

 

하지만 세상은 그녀를 하느님의 눈이 아닌 세상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규정상 15세의 어린 소녀가 수도원에 입회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하느님은 이마저도 교황 알현 등을 섭리하셔서 가능하게 하신다.

이후 어렵게 수도원에 입회한 데레사는 10년 동안의 수도원 생활을 끝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의 수도원 삶은 강한 신비체험에도 불구하고 극도로 단순했다.

강한 신비체험은 드라마틱한 삶을 보장하지 않는다.

오늘날 신비체험을 했다는 일부 몇몇 사람들이 주위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화려하고 요란한 모습을 보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래서 데레사의 별명이 소화 데레사다. 큰 꽃이 아니라 작은 꽃이다.

그녀는 한없이 작았고, 그래서 작은 길을 걸었다.

4륜마차가 끄는 화려하고 장엄한 대로가 아니라, 소박하고 아름다운 산길을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걸었다.

 

2003년 바오로 딸에서 발행된 모니카 마리아 슈테커 저술의 「장미비, 스물 넷의 약속」이라는 책에는 데레사 성녀에 대해 이렇게 기술되어 있다.

 

“데레사는 평범한 소녀였다. 세상의 모든 좋고 아름다운 것에 대해 마음이 열려 있었으며 감격할 줄도 알았다. … 그녀는 강한 의지와 믿음으로 모든 장애물을 극복했는데, 그것은 비할 데 없이 커다란 사랑의 모험이었다.”

 


 

 

 

[영성으로 읽는 성인성녀전]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4) 고통 속에 무지(無知)의 섭리 깨닫다

 

 

소화 데레사가 수도원 생활을 통해 집중한 것은 기도와 극기였다.

그녀는 이를 통해 자신의 내면형성을 위해 노력한다. 물론 그 내면형성에 이르는 원의와 방법, 결실은 모두 하느님의 섭리에 의한 것이었지만 여기에는 데레사 성녀 자신의 하느님과의 합치에 대한 갈망이 큰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데레사 성녀는 자신만의 내면형성에 만족하고 주저앉지 않았다.

모든 인류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했다.

 

그녀가 한 것은 오직 기도였다. 충만한 내면형성의 기반 아래서 이뤄지는 절절한 기도였다.  그녀의 몸은 수도원이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 머물고 있었지만 그녀의 영혼은 세계를 누볐다.

데레사는 수도원 안에서 함께 살고 있는 동료 수도자들은 물론이고 세계 모든 인류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을 기도했다.

또 세계 각지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들을 위해서도 기도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데레사에게 중요한 사건이 발생한다.

17세 정도 되었을 때였다. 평생 동안 막내딸을 위해 끊임없는 애정을 쏟아주시던 아버지가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얼마 후에 선종하신 것이다.

 

데레사는 힘들었다. 이런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딸들을 수도원에 봉헌했고, 평생 동안 하느님의 뜻 안에서 성실하게 살아오신 분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고통 받다가 일찍 돌아가신 것이다.

 

데레사는 ‘하느님은 무슨 깨달음을 위해 이런 고통을 주시는 것일까’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 데레사의 큰 영적 도약이 이뤄진다. 진정한 무지(無知)의 섭리를 깨달은 것이다.

사실 유한한 인간으로선 무한한 하느님의 섭리를 이해할 수 없다.

역설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고백할 때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데레사는 깨달았다. 나는 ‘nothing’이다. 나는 ‘무’(無)요 ‘공’(空)이다. 아무것도 아니다. 알면 알수록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영어 구어에서 ‘nothing’은 ‘하찮은’ ‘쓸모없는’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그러나 하느님은 ‘everything’이시다. 하느님은 모든 것이다. 가장 소중하신 분이다.

 

인간적 시각에서 보면 하느님께서 데레사에게 준 것은 거의 없었다.

데레사는 거의 아무것도 받지 않았다. 하느님은 태어날 때부터 약한 몸을 주셨다.

그러다 보니 학교도 제대로 다닐 수 없었고, 공부에 매진하지도 못했다.

인간적으로 가진 것이 없었다.

 

하지만 하느님은 가장 크고, 가장 소중한 것을 데레사에게 주셨다.

“난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섭리하신 것이다.

그래서 데레사 성녀는 글을 통해 자신은 어둠 안에서 빛을 깨달았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데레사는 천하고 힘든 일도 기쁘게 했다. 사소한 일도 충실히 했다.

어떻게 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기도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기도에, 온 정성으로 매달렸다.

 

이런 고백은 얼핏 보면 누구나 할 수 있을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인간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영의 힘으로 가능한 일이다.

 

데레사 성녀는 작은 길을 선택했지만, 작은 길을 섭리 받았지만, 그 작은 길 안에서 형성하는 신적 신비의 신비적인 삶을 온전히 드러내신 분이다.

인생은 길게 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큰 업적을 남기는 것이 중요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명예와 부를 위해 매진하라고 주어진 인생이 아니다.

 

형성하는 신적 신비의 뜻을 깨닫고, 영적인 차원의 성향을 잘 길러 가면서 짧지만 아름다운 모습으로 사는것이 중요하다.

하느님께서 주신 섭리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소화 데레사 성녀는 하느님과 완전히 합치되신 분이다.

그리고 이웃에 대한 연민으로 가득했던 분이셨다.

주어진 상황 안에서 융화를 통해 참된 역량을 발휘했다.

또 진리에 고개 숙였으며 자신의 뜻을 교만하게 주장하지 않고 늘 개방되어 있었다.

모든 사건 앞에서 순명했고, 욕심이 없는 단순함을 유지하셨다.

깨달은 바를 확고하면서도 부드럽게 드러내셨다.

이웃을 존경하고 어느 누구의 잘못도 들추어내지 않는 사밀함(privacy)의 성향을 가지셨다. 작지만 진정으로 위대하신 분이셨다.

 


 

 축일 10월 1일 성녀 데레사(Tere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