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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가톨릭 산책

[역사속의 그리스도인] 리지외의 데레사

by 파스칼바이런 2009. 11. 4.

 

[역사속의 그리스도인] 리지외의 데레사

 

 

리지외의 성녀 데레사는 겸손하고 온유하며, 꿋꿋하고 위대한 영혼을 지녔던 인물이다.

 

“가장 이상적인 영적 삶 살아”

세상 떠난후 자서전이 출판되자

감춰졌던 ‘영성과 믿음’ 드러나

  

“거대한 태양을 끌어안고 단숨에 타버린 작은 별이여

완성을 향해 아픔의 씨앗 품고 우주를 색칠하던 꽃

백 년이 넘어도 빛 바래지 않은 겸허한 얼굴

순한 향기로 끝없이 피어나는 작은 꽃이여

 

숨고 싶어 숨고 싶어

하찮은 일도 환희로 꽃 피우며 기도로 열매 맺고

다함 없는 믿음과 ‘사랑의 학문’ 밖엔

가진 게 없던 우리가 닮고 싶은 고운 님이여”

 

(이해인 수녀의 ‘소화(小花) 데레사 성녀에게’)

  

불과 24년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겸손하고 온유하며, 꿋꿋하고 위대한 영혼을 지녔던 리지외의 성녀 데레사.

그는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사랑에 온전하게 자신을 봉헌했고, 평생을 그를 휘감고 있던 어둠 가운데에서도 오직 순명의 정신으로 주님께 충실한 삶을 살았다.

 

죽음을 맞기 18개월 전, 처음으로 결핵의 증세가 나타나 각혈을 하기 시작했을 때 그는 주님과 만날 때가 왔음을 깨닫고 이를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믿음과 희망의 절정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그는 1897년 9월 30일 숨을 거두며 말했다.

 

“오, 저의 하느님, 사랑합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저의 소명, 마침내 저는 그것을 찾았습니다. 제 소명은 바로 사랑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교회의 품 안에서 제자리를 찾았습니다. 저의 어머니이신 교회의 심장 안에서 저는 ‘사랑’이 될 것입니다.”

 

너무나 연약했던 데레사 성녀는 그러나 그 약함을 주님께 대한 온전한 의탁과 신뢰로 가다듬었다. “내가 약할 때 오히려 나는 강하기 때문입니다”(2고린 12, 10)라고 선언한 사도 바오로의 말씀을 그는 자신의 평생을 통해 증거했다.

 

약함을 통해 강함을 드러내는 하느님의 손길은 성녀의 영혼 깊숙이, 사랑만이 자신의 성소이고 오직 사랑을 위해서만 살 수 있음을 깨닫게 했다. 그는 자서전에서 14세 때 체험한 ‘사랑의 열’에 대해 토로한다.

 

“이 사랑의 열을 어떻게 설명해야 될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습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나를 집어다 통째로 불 속에 던지는 듯 했습니다. 아아! 무어라 할 수 없는 그 불, 또한 동시에 이는 얼마나 기뻤던지! 나는 사랑에 탔습니다.”

 

데레사 성녀의 이 애덕이 곧 그에게 성소의 열쇠를 주었으며, 바로 그 애덕 때문에 데레사 성녀는 결코 로마 순례 외에는 고향인 알랑쏭을 떠난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포교 사업의 수호자’로 선포되도록 했다.

 

애칭 ‘소화 데레사’

 

가르멜회의 수녀이자 포교사업의 수호자로 ‘소화 데레사’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마리 프랑스와즈 테레즈 마르탱은 1873년 1월 2일 프랑스 알랑쏭에서 아홉 자녀 중에서 막내로 태어났다.

 

집안은 비교적 큰 어려움이 없었고,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수도 생활을 열망했을 만큼 믿음에 충실한 삶을 살았을 뿐만 아니라 이웃에 대한 자선과 사랑의 실천에도 모범적이었다. 이러한 성가정의 분위기는 성녀의 다정한 성품과 깊은 신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성녀는 자서전에서 자신의 생애를 크게 세 시기로 나눈다. 즉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의 행복했던 어린 시절, 리지외로 이사한 후 외로움과 쓸쓸함 속에서 혹독한 세심증과 영적 고통을 겪던 8년간의 시절, 그리고 깊은 내적 회심의 경험을 한 이후의 시기이다.

 

지극히 평범했던 생활

 

데레사는 어렸을 때부터 고통스런 병으로 앓는 경험을 가졌다. 열 살 때인 1883년 알 수 없는 병으로 석달 동안 극심한 고통을 겪었는데, 경련과 환각, 때로는 의식을 잃으며 육체적으로 어려운 고비를 넘어야 했다. 이후에도 그는 계속 건강이 좋지 않았으나, 15살에 가르멜 수도회에 입회해서도 수녀원의 식당과 세탁실에서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수녀회에 입회해서 세상을 떠나기까지 지낸 9년 반의 데레사 성녀의 생활은 지극히 평범했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 활력이 없고, 아무런 특별한 소명이나 역할을 하는 것 같지 않았던 성녀의 내적 삶은 사실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이상적인 형태였던 것이다.

 

그의 영성을 나타내는 ‘작은 길’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었지만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따라가야 할 이상적인 길이었다. 그것은 특히 삶의 방법이나 형태가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 지니고 있는 가장 순수한 태도를 의미한다.

 

이렇듯, 가장 평범하면서도 가장 이상적인 영적 삶을 살았던 성녀이기에 그 생전에 그의 삶의 영성은 감추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자서전이 출판되자 수많은 이들이 데레사의 영성과 그 믿음의 길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자서전이 수없이 번역돼 출간됐고, 성녀의 전구로 나타난 은총의 표지들이 드러났다. 마침내, 시성은 사후 50년이 지나야 한다는 교회의 관례에도 불구하고 교황 비오 11세는 데레사를 ‘성덕의 으뜸이며 기적의 천재’라고 불러 사후 28년이 지난 1925년 5월 17일 성녀로 선포했다.

 

소화 데레사 성녀가 얻은 영광은 오직 하느님께 대한 사랑, 그로부터 매일 매일 자신의 본분, 가장 사소하고 가치 없어 보이는 일까지 충실하게 지켜나간 그 충실함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축일 10월 1일 성녀 데레사(Tere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