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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신 앙 관 련

[내 마음의 책 한 권]《프란치스꼬 저는》

by 파스칼바이런 2009. 11. 6.

 

[내 마음의 책 한 권] 《프란치스꼬 저는》

까를로 까렛도 지음, 장익 옮김

정창주(프란치스코)|신부 주교좌 계산동성당 제1보좌

 

 

내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과 인연을 맺은 것은 태어나면서부터이다. 10월에 태어나 17일 만에 세례를 받으며 프란치스코는 나의 또 다른 이름이 되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겨 있는 범어성당은 당시 프란치스코 수도원과 함께 있었고, 프란치스칸 사제들이 본당을 맡아 사목을 했다. 그래서 내 축일 날이 곧 본당의 잔칫날이었고, 그날이면 꼭 프란치스코 성인의 전기 영화가 상영되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성인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 것도 모르면서 마냥 신이 나서 뛰어다니던 한 소년이 그곳에 있었다.

 

대부분 사람들이 자신의 세례명으로 맺어진 성인에게 별 다른 관심 없이 세월을 보내듯이, 나도 그렇게 20년을 살았다. 그러다가 신학교에 입학했고, 일종의 의무감 때문에 성인의 전기를 읽게 되었다. 그런데 그 전기는 너무나 딱딱하고 어렵고 또 학문적으로 쓰여 있었다. 그리하여 소중한 보물을 눈앞에 두고도 그 껍질만을 바라보는 격으로 또 다시 시간이 지났다.

 

그 후 프란치스코에 관한 일화를 모은 《잔꽃송이》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고, 시를 좋아했던 나는 한 편의 시 같은 그 책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성인은 정말 한 편의 시와 같은 인생을 살았던 분이다. 그의 일생은 표현하자면 통째로 하느님을 찬미하는 극적이고 신비로운 시였다. 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프란치스코 성인을 이해하려면 먼저 시인의 눈으로 그를 바라보아야 한다고. 그렇지 못하다면 그를 만나는 그 자리에 비웃음과 몰이해만이 덩그러니 남게 될 것이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나는 사제가 되었다. 주님의 대전에 엎드리며 서품 성구로 평소 마음이 끌렸고 또 졸업논문으로도 썼던 갈라티아서 6,14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를 택했다. 그리고 그 해에 맞게 된 내 축일에 깜짝 놀랄 만한 사실을 발견했다. 내가 택한 성경 구절이 바로 성 프란치스코를 소개하면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부분이었던 것이다! 사제의 길을 걷기 시작하며 형처럼 바라보고 닮아야 할 친근한 존재로 프란치스코 성인이 내게로 다가온 것이다.

 

지난 시간, 프란치스코에 대한 책을 여러 권 읽었지만, 어째 좀 성에 차지 않는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그를 멋들어지게 드러내주는 책, 시 같으면서도 시 같지 않은 책을 찾아서 나도 모를 어떤 목마름이 있었다. 그러던 중 사제로 맞는 첫 축일 직전 이 책을 만났다. 까를로 까렛도 수사가 쓴 《프란치스꼬 저는》이란 책이다. 참으로 복된 선물이었기에 많은 신자 분들께 이 책을 권했다.

 

까를로 까렛도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그리스도인의 참된 정신을 자신의 삶으로 직접 구현하고자 마음을 다하여 살았던 인물로 결국 샤를르 드 푸코의 ‘예수의 작은 형제회’에 입회했다. 그의 글을 한 번이라도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가 쓴 글은 신앙의 정곡을 찌르며 위선과 가식을 깨뜨리는 독특함으로 유명하다. 핵심을 파헤치는 날카로움과 그것을 전달하는 부드러움을 동시에 겸비한 글을 보고 탄복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는 성 프란치스코가 머물렀던 아시시 수바시오 산자락 암자에서 기도하며 이 책을 썼다. 자신이 직접 프란치스코 성인이 되어 마치 자서전을 쓰는 듯한 특별한 방식으로 집필했다. 그래서 책 제목이 《프란치스꼬 저는》으로 붙여진 것이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운명적으로 까를로 까렛도는 1988년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축일인 10월 4일에 하느님 품으로 돌아갔다.

 

이 책은 그리 길지 않다. 그러면서도 프란치스코에 대한 깊고 강한 묵상들이 담겨 있다. 시적이면서도, 그 안에 성인이 이 시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 빼곡히 품어져 있다. 그리고 이 책은 장익 주교님이 번역을 맡았는데, 아름답고 시적인 우리말 표현과 원문을 살리는 정확한 솜씨로 작품이 더욱 빛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다. 때때로 우리말로 적절치 못하게 옮겨져 소중한 작품에 다가가는데 오히려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아무튼 이 책은 성 프란치스코에 관한 가장 젊은 책, 즉 가장 최근에 나와 분명한 빛을 발하는 책임을 강조하고 싶다.

 

프란치스코는 복된 가난을 통해 복음에 접근했다. 오늘날 복음이 힘을 잃어가는 까닭은 그것을 대하는 우리들이 가난해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난해지라는’ 메시지를 들으면 가난해지는 척을 할 뿐이지, 참으로 가난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모든 것들이 ‘가난’과 연결되어 있다. 그분의 출생과 십자가 길, 무릎을 꿇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심, 성체로 당신을 내어주심, 섬김과 봉사, 희생과 사랑, 용서…. 이 모든 것들이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택하신 그 복된 가난과 맞닿아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난해지지 않으면, 결코 복음을 있는 그대로 진실 되게 받아들일 수 없다.

 

프란치스코가 살았던 중세의 교회는 힘을 앞세운 교회였다. 가난을 저버린 교회는 하느님의 권능을 잃어버렸다. 이러한 시대, 성인은 권력과 부 앞에 벌거벗은 채로, 맨발로 나타나 ‘가난의 복음’을 외쳤다. 사람들은 킬킬대며 웃었지만, 놀랍게도 힘을 포기하고 가난을 택한 프란치스코와 그의 형제들에 의해 교회는 개혁되었다. 프란치스코는 생애 마지막 시기에 자신의 분신과 같았던, 평생의 꿈이었던 수도회가 분열되는 아픔을 겪는다. 그는 산으로 피신해야 했다. 그곳에서 극심한 고뇌에 빠져있던 그는 마지막 가난의 복음을 송두리째 받아들인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십자가를 받아들이셨듯이 그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난해짐을 받아들인다. 그 순간 그리스도의 오상이 라 베르나 산에서 그에게 내렸다. 제2의 그리스도라는 칭호는 ‘가난’을 통해 하느님이 그에게 임하셨기에 붙여진 것이다.

 

이 책은 특유의 간결하고 세밀한 문체로, 중세 교회의 과오를 다시 반복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 시대에 필요한 ‘가난’과 ‘받아들임’의 영성을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현대적인 문제들을 복음적으로 재조명하여 밝혀준 부분들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가난해지기를 두려워 하는 우리들에게 까를로 까렛도는 이렇게 말한다. “마음만 있다면 해 보세요, 형제 여러분, 해 보시면 가능하다는 것을 보실 겁니다. 복음은 진실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시고 인간을 구원하십니다. 비폭력은 폭력보다 건설적입니다. 정결은 부끄럼을 모르는 환락보다 더 맛스럽습니다. 가난은 부유보다 더 흥미롭습니다.” 어린이같이 순박한 마음으로 성 프란치스코의 복음을 받아들이시기를!

 


 

  축일 10월 4일 성 프란치스코(Franc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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