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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축일 & 성인

[영성의 향기] 아빌라의 성 데레사 와 십자가의 성 요한

by 파스칼바이런 2010. 5. 29.

 

[영성의 향기] 수도회 창설자 - 아빌라의 성 데레사 와

십자가의 성 요한

맨발 가르멜회 개혁 · 창설자

 

 

가르멜 수도회의 첫 시작은 가르멜 산에서 까마귀들이 날라다 주는 떡과 고기를 먹으며 살았던 엘리야 예언자(열왕기 상 17-19장 참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중세기에 와서 새롭게 거듭난 '맨발 가르멜회' 남녀 회원들은 수도회 개혁의 주도자였던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1515-1582, 예수의 데레사)와 십자가의 성 요한(1542-1591)을 창설자로 모시고 있다.

 

심오한 기도 체험과 해박한 지식으로 교회에서 '영성의 어머니', '신비신학의 박사'로 불리우는 성녀 데레사는 1515년 스페인에서 출생했다.

매력과 재치가 넘치는 소녀로 성장한 데레사는 13세 때 어머니를 여읜 뒤 성모 마리아를 자신의 어머니로 삼기도 했다.

 

다른 평범한 여성들처럼 아름다워지기를 바랬던 데레사는 자라면서 외적인 몸치장에도 많은 시간을 보냈다.

데레사의 아버지는 이런 그녀를 세속적인 유혹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수녀회가 운영하는 학교에 들여보냈고, 데레사는 20세 때 완화된 가르멜 규칙을 따르는 강생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하게 된다.

그러나 당시 강생 가르멜 수녀원은 매우 세속화돼 있었다.

수녀들은 개인 재산을 소유했으며 가문 좋은 수녀는 특혜를 누렸다.

수녀원에서는 침묵이 지켜지지 않았고 외출이나 외부인의 방문도 자유로웠다.

 

데레사는 그곳에서 건강이 몹시 악화되고 오랫동안 기도 생활에도 어려움을 겪는 등 많은 시련을 당했다.

그러나 1554년 상처투성이의 그리스도를 만나는 체험을 통해 완전한 회심에 이른 데레사는 엄격한 초창기 정신을 찾아야겠다고 결심, 1562년 개혁된 첫 수녀원인 성 요셉 수녀원을 창설하고 1582년 선종할 때까지 모두 17곳의 수도원을 세웠다.

그리고 교회는 그녀의 개혁 정신을 따르는 맨발 가르멜회를 개혁 이전의 완화 가르멜회로부터 분리, 독립시켰다.

 

데레사는 자신의 영적인 신비 체험을 '완덕의 길', '영혼의 성', '천주 자비의 글' 등에 기록했다.

이 저서에서 그녀는 인간의 영혼을 '7 궁방(宮房)'으로 나눠 가장 내밀한 7궁방에 하느님이 내재하며 그 하느님과 합일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비워야 한다고 가르쳤다.

 

데레사는 또한 교회를 더없이 사랑했다.

자신을 반대하는 수녀들로부터 중상모략과 추방까지 당하면서도 교회를 위해 끝내 개혁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녀는 마지막 순간에 "주님, 저는 교회의 딸입니다"라고 기도하며 숨을 거뒀다.

교황 바오로 6세는 데레사의 성덕과 탁월한 지식을 인정, 1970년 그녀를 최초의 여성 ‘교회 박사’로 선포했다.

 

남자 수도원 개혁을 꿈꾸던 1567년 그녀는 자신의 영적 지도자요 고해 신부가 된 십자가의 성 요한을 만났다.

그녀는 52세였고 요한은 25세였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신비적인 기도 체험을 서로 이해하고 영혼의 친교를 나눌 수 있었기에 영적으로 깊이 일치했다.

'거룩한 가난'이 성 프란치스코와 글라라를 일치시킨 것처럼.

 

십자가의 성 요한은 1542년 혼띠베로스에서 출생, 가난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청년시절 예수회 대학에서 인문학을 공부하고 가르멜 수도회에 입회, 살라망까 대학에서 공부를 계속했다.

1567년 그는 고향에서 첫 미사를 드렸는데 이때 개혁 가르멜의 두 번째 수녀원을 세우려고 준비 중이던 데레사를 만나게 된다.

데레사의 수도회 개혁 의지에 동감한 요한은 두루엘로에 있는 작은 농가를 개조, 개혁 남자 수도원을 세우고 가르멜 수녀들의 영적 지도자가 됐다.

물론 요한도 49세로 선종할 때까지 감옥에 감금당하는 등 완화 가르멜회의 반대자들로부터 온갖 비난과 박해를 받았다.

 

저서 '갈멜의 산길', '어둔 밤' 등에 나타난 대로 요한의 영성 또한 그 깊이를 잴 수 없이 심오하다.

"모든 것을 얻기에 다다르려면 아무 것도 얻으려 하지 말라. 모든 것이 되기에 다다르려면 아무 것도 되려고 하지 말라. 모든 것을 알기에 다다르려면 아무것도 알려고 하지 말라."

요한은 불완전한 인간의 감각과 영을 정화함으로써 자신을 비워내고, 그곳을 하느님으로 채우는 '전(全, toda)과 무(無, nada)'의 영성을 제시했다.

 

산의 정상에 쉽게 도달하려면 지고 있는 배낭을 가볍게 비워야 하고 하느님을 얻기 위해 자신은 빈 그릇이 돼야 한다.

십자가의 요한은 이를 "자기 욕망에 이끌리지 않는 이는 마치 날개털 하나도 빠지지 않은 새처럼 가볍게 영을 따라 날아간다"고 표현했다.

 

데레사와 요한은 세속과 타협하지 않고, 흘러가는 세월에 물들지 않았다.

자신을 비운 그들의 영혼은 새처럼 가벼웠다.

그러나 세속화된 수도회에 초창기 정신을 불러일으키려는 책임감은 누구보다도 무거웠고, 수도적 관상과 사도적 활동을 조화시키려는 쇄신에의 열정은 그들을 온전히 불태웠다.

 


 

축일 12월 14일 십자가의 성 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