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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축일 & 성인

축일 5월26일 빠레데스의 성녀 마리아 안나 동정

by 파스칼바이런 2011. 10. 27.

축일 5월26일 빠레데스의 성녀 마리아 안나 동정

Santa Maria Anna di Gesù de Paredes

Quito, Equador, 1618 - ivi, 26 maggio 1645

OFS(Ordo Franciscanus Saecularis)

 

마리아 안나 (1618 - 1645)는 남미 에쿠아도르 키코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신앙을 위해 일본에 가서 순교자가 되기를 원했으나 자기 집에서 은둔 생활을 하며 살아 있는 순교를 하기로 결심하였다.

재속 3 회 착복을 하고 가난·정결·순명의 세 가지 수도 서원을 하였다.

 

그 후 은수자처럼 집에서 살며 전례에 참례하거나 이웃에 봉사하기 위해서만 집을 벗어났다.

그녀의 기도와 회개 생활에 대하여 하느님께서는 보상으로 많은 특별한 은총을 허락하셨다.

그녀의 전구로 환자들이 치유되기도 하였으며 그녀는 예언과 사람의 마음을 읽는 은사를 받기도 하였다. 1950 년 비오 12 세가 시성하였다. (작은형제회홈에서)

 


 

성녀 마리아 안나 아 예수 데 파레데스(Maria Anna a Jesu de Paredes)는 당시 에콰도르의 수도였던 페루비안 마을에서 태어났고, 마리아 안나 데 파레데스 이 플로레스(Maria Anna de Paredes y Flores) 즉 ‘키토의 꽃’이란 이름을 얻었다.

그녀는 에스파냐 귀족의 딸로 젊은 나이에 사망하였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신심이 뛰어나서 언니들과 더불어 로사리오와 십자가의 길의 기도 바치기를 매우 좋아하였다.

12세 때에는 몇 명의 친구들과 어울려 일본인들을 개종시키려다가, 키토 교외 산에서 은수자로 살려는 생각이 떠올라 포기하였다.

그러나 이 일 역시 정치적인 문제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자기 고해신부인 예수회원의 지도를 받으면서 성당에 가는 일을 제외하고는 독수자처럼 생활하였다.

 

 

 

또 그녀는 관을 하나 마련한 뒤 매 금요일마다 그 속에서 지내며 죽음을 묵상하기도 하였다. 팔과 다리를 쇠사슬로 묶고 고행자가 입는 말총 속옷을 입었으며, 가시관과 쇠못관을 만들어 고행하였다.

음식은 극히 소량만 먹었고, 물은 그리스도의 갈증을 느낄 정도가 되어서야 겨우 입을 축이는 정도였다. 이와 동시에 예언과 기적도 일어났다.

1645년 키토 지방에 지진과 더불어 전염병이 번졌다.

사순 제 4주일의 강론을 들은 그녀는 자신이 백성의 희생물이 되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나섰다.

지진은 멈추었으나 그녀는 26세의 나이로 운명하고 말았다.

그녀는 1950년에 시성되었다.

그녀는 마리아나 데 파레데스(Mariana de Paredes)로도 불린다. (가톨릭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