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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가톨릭 산책

[우리의 영원한 귀감, 영성의 대가들] 십자가의 성 요한

by 파스칼바이런 2010. 5. 29.

 

[우리의 영원한 귀감, 영성의 대가들] 십자가의 성 요한

박재만 신부(대전 대흥동본당 주임)

 

 

십자가의 성 요한(1542-1591)은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와 함께 가르멜 영성학파를 든든히 지탱시켜 주는 두 개의 기둥 역할을 하고 있다.

같은 시대의 유사한 상황에서 생활했던 그들은 생애, 활동 및 가르침에 있어서 매우 밀접한 관계 중에 있으며 상호 협력자였다.

십자가의 요한은 그의 공적만큼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고 그의 저서도 그리 많이 읽혀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가 완덕의 길에 진보되어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글을 썼으며, 초탈과 정화에 대한 그의 가르침이 일반 그리스도인들에게 너무 고차원적이기 때문이다.

그가 쓰는 언어들 또한 매우 미묘하고 형이상학적이어서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의 가르침과 저서들 그리고 영성을 고찰하기에 앞서 그의 생애를 살펴보기로 한다.

 

1. 생애

 

요한 데 예빼스(Juan de Yepes : 십자가의 요한의 속명)는 1542년 스페인의 아빌라 근처의 조그만 마을 폰티베로스에서 아버지 곤잘로 예뻬스와 어머니 카타리나 사이의 3형제중 막내로 태어났다.

요한이 일곱 살 되던 직조업을 하던 아버지가 병고에 시달리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로 인해 경제 형편이 어려워진 가정에서 어린 요한은 극도로 가난한 삶을 경험했다.

그의 아버지는 부유한 가문출신이엇지만 가난한 어머니와의 결혼을 반대하는 집안의 권고를 따르지 않았고, 안정되고 평안한 삶을 포기하여 충실과 희생의 영웅적인 사랑을 선택하였다.

어린 요한은 어머니와의 결혼을 위해 물질적 부유와 가문의 사회적 명성 등을 버렷던 아버지의 사랑의 결단에 대한 이야기를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들으면서 성장했다.

이로써 요한은 사랑의 우선적인 가치에 대해서 배우게 되었는데 그것이 훗날 하느님과의 합일을 위한 사랑의 영성의 바탕을 이루게 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요한이 아홉 살 되던 1551년에 온 가족은 고향을 떠나 무역도시인 메디나 델 캄포로 이사하였다.

그곳에서 극빈자들을 위한 기술학교에 들어가 목공, 재봉, 미장 등 기술과 함께 기초교육을 받았다.

또한 그는 성당의 여러 봉사 업무와 미사 중 복사할 책임을 맡아 수행하면서 좋은 신심을 키웠다.

그 후 요한은 이 도시의 한 자선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게 되는데 환자들을 돌보는 일 뿐 아니라 그들을 위한 구호금을 모으기 위해 구걸을 하기도 했다.

인격적, 신앙적 형성을 위해 중요한 청소년 시기에 요한은 육체적·심리적·영적으로 고통받고 있던 많은 환자들과 주변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지내면서 소중하고 유익한 체험들을 하였다.

그들과의 관계 안에서 그는 고통을 겪으시는 하느님, 기뻐하시는 하느님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분을 가까이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편 충실하게 일하며 진지하게 생활하던 요한에게 병원장 알바레즈가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어 그는 1559년 예수회 수도원에서 경영하는 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는 거기에서 4년간 문법, 수사학, 철학, 형이상학 등을 열심히 고부하며 미래교회의 학자로서의 기반을 닦게 되었다.

요한의 직업은 자신과 가족들의 경제적 안정을 위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요한을 눈여겨 보며 신임하던 병원장은 그가 사제가 되어 병원의 원목으로 활동해 주길 희망했다.

그러나 그에게 강하게 작용한 수도 성소는 그러한 인간적 안정 대신 가르멜 수도 생활을 선택하게 하였다.

그는 21세 되던 1563년 「성녀 안나 수도원」에 입회하였다.

그는 공동체의 규율을 철저히 준수하며 1년 수련 기간을 지낸 후 1564년 5월 21일에 마티아스의 요한이란 이름으로 수도서원을 하였다.

 

서원 후 스페인 학문의 중심지인 살라망카로 가게 된 요한은 그곳에서 철학, 신학 등 학문에 전념하였고, 당시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주요 역할을 담당했던 석학들까지 참여하던 신학적 학문의 토론장에서 많은 것을 배우며 하느님을 향한 생활에 열중하였다.

1567년 사제품을 받고 첫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성녀 안나 수도원」에 갔을 때 마침 개혁 수녀원을 창립하러 그곳 메디나에 온 아빌라의 예수의 데레사와 만나게 된다.

요한은 데레사가 초창기의 원 회규 정신으로 되돌아가는 생활로 여자 가르멜 수도회 뿐 아니라 남자 수도회도 개혁하고자 하는 구상을 듣게 되었다.

좀 더 엄격한 수도 규칙을 준수하던 카르투시오회로 옮길 마음을 품고 있던 요한은 데레사의 의도에 공감하며 때를 기다리기로 했고 그 해 11월에 신학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살라망카로 되돌아갔다.

1568년 여름, 예수의 데레사가 발랴도리드에 또 하나의 개혁 수녀원을 세우려 하자 그 여정에 요한 수사도 동참하여 데레사가 작성한 규칙을 따르는 새 생활 양식을 논의하며 몇 주간의 단기 수련을 받았다.

 

1568년 11월 28일 마침내 초기규칙을 지키기로 선언하는 남자 개혁 수도원이 아빌라의 두루엘로에서 창립되었다.

요한은 다른 두 동료와 함께 매우 가난하고 검소한 생활 안에서 더욱 깊은 잠심과 단순성을 지니고 살았다.

그들은 다시 서원을 했으며 그 때 요한은 그의 이름을 「십자가의 요한」이라 결정하였다.

그들의 주변의 마을에 제한적이나마 사목적 봉사도 하였다.

처음부터 십자가의 요한은 입회자, 수련자들의 양성 업무, 수녀들의 고해성사 및 영적지도 업무에 헌신적이었다.

 

1571년 10월 예수의 데레사가 아빌라의 「강생 수녀원」의 원장으로 임명되자 그녀는 수녀원 규율을 바로잡는 일부터 시작하였고, 십자가의 요한을 수녀원 고해신부로 초빙하였다.

그는 성녀가 원장으로 있던 2년 동안 온화함과 깊은 체험적 지식으로 완덕을 향한 자기부정이 가르침을 펼치며 수녀원의 쇄신과 양성을 도왔다.

성녀가 임기를 마치고 떠난 후에도 그는 몇 년간 더 그 수녀원 곁의 오두막집에 기거하면서 매일 수녀들을 위해 성사 집전 및 영적 지도 업무를 수행해 나갔다.

 

그러나 십자가의 요한을 개혁운동의 선구자로 예의 주시하던 완화파에서는 1577년 12월 2일 수도회의 질서 문란과 장상에 대한 불순종을 주도하며 문제를 야기시킨다는 이유로 요한을 납치, 톨레도의 수도원 골방에 감금하였다.

이 감옥과 같은 곳에서 극도의 모욕과 멸시를 받으며 생활하였다.

거기다가 하느님의 부재감을 체험하면서 그의 영혼은 극적으로 고통스런 번뇌로 신음해야 했다.

한편 그는 하느님께 대해 전혀 다른 형태의 체험을 하게 된다.

그것은 「어두운 정화의 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서 그의 영혼은 어둔 밤을 거치면서 하느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의 감금 생활은 부정적인 것만이 아니었고 오히려 결정적으로 유익한 체험을 하도록 한 계기였다.

그는 거기에서 강렬한 신비 체험을 하였고 영적으로 강화된 사람으로 변화되었으며 영적 및 문학적 작업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십자가의 요한은 1578년 여름 밤 감금된지 9개월만에 톨레도 수도원 탈출을 성공한다.

이 후 안달루치아의 「갈바리오」수도원 원장으로 임명되었고 「가르멜의 산길」과 「영혼의 노래」를 집필하게 된다.

1579년엔 그가 바에자의 신학원장으로 임명되어 그곳에서 2년간을 지냈는데 그는 맨발의 가르멜 회원들이 생활의 중심인 묵상기도를 성실히 해야 할 것과 전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588년 십자가의 요한은 총회에서 수석자문 및 세고비아 수도원장으로 임명되어 고향 카스틸리야 지방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1590년, 1591년 6월 등의 총회에서 그는 수도회 자문회에 수녀회가 예속되는 것과 총장이 수도 공동체에 대하여 지나친 법률적 조치를 취하는 점에 반대하였던 이유로 모든 직책에서 해임되어 평수사로 돌아가게 되었다.

1591년 9월초 그는 열병으로 눕게 되었고 자신을 반대하는 이들의 모욕과 멸시 속에서 고통을 당하였다.

일생 동안 자기의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주님을 충실히 따르던 십자가의 요한은 같은 해 12월 14일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1675년 1월 15일 교황 클레멘스 10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1726년 12월 27일 교황 베네딕도 13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그리고 1926년 8월 24일 교황 비오 11세는 십자가의 성 요한을 「교회박사」로 추앙하며 선포하였다.

 

2. 저서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자신이 겪은 하느님 사랑의 체험을 시적인 언어로 묘사하였다.

그리고 그 시들을 신학적 반성을 통해 해설하면서 기록하였다.

그것이 그가 남긴 유명한 저서들로서 교의적 및 영성적으로 풍요로운 가치를 지닌다.

「영혼의 성」, 「가르멜 산길」, 「어둔밤」, 「사랑의 불길」 등 작품 외에 서간들과 시, 「잠언과 권고」, 「영적 경계」 등 소품들이 있다.

대부분의 작품들은 하느님을 찾는 이들의 요구에 따라 영적 지도를 위하여 쓰여졌다.

 

성인은 사랑이신 하느님과의 완전한 일치인 성성(聖性) 또는 완덕에 나아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자신이 체험을 통해 깨달았으며 또한 걸어가고 있는 길을 글을 통해 설명하면서 안내하고자 한 것이다.

 

1) '가르멜의 산길' - 하느님과의 합일위해 걸어야할 십자가의 길 제시

 

「가르멜의 산길」과 「어둔 밤」은 같은 시(詩)를 기초로 해서 해설하고 있기 때문에 분리될 수 없을 만큼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가르멜의 산길」이 영혼이 하느님과의 일치를 해나가는 데 있어 능동적 측면에서 영적 진보를 고찰하는 데 비해서 「어둔 밤」은 수동적 측면에서 영적 진보를 다룬다.

 

「가르멜의 산길」은 영혼이 은총의 도움으로 하느님과의 합일에 이르기 위하여 걸어야 할 십자가의 좁은 길을 제시하며 그에 이르는 방법을 세 권으로 구성하여 설명하고 있다.

제1권에서는 인간의 노력에 따른 능동적 정화로서 감성의 정화와 영의 정화를 다룬다. 제1권의 12장까지는 「감각의 맛」에 대한 고행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즉 영혼이 하느님께 나아가는 데 인간적인 감수성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13장에 이르러서는 감성의 능동적 밤에 관해 말한다.

이것은 영성 생활의 초보자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감성적 고행에 관한 것이다.

여기에 고행의 근본적인 지침들이 종합되어 있다.

 

이 책의 제2권은 「이성(理性)의 밤」에 대하여 그리고 제3권은 「기억의 밤」과 「의지의 밤」에 대하여 다룬다.

 

2) ‘어둔 밤’ - 신앙인들의 영적변화 그 주도권은 하느님께 있어

 

이 책은 「가르멜의 산길」의 후속편으로서 같은 시를 기초로 하여 영성적 현실의 다른 측면을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의 주안점은 하느님께 나아가는 신앙인들에게 영적 변화가 일어나는데 그 주도권은 하느님이 가지고 계시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친히 영혼 안에 업적을 이루시는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주도권은 은총에 대한 인간의 응답 자세인 노력을 또한 요구하며 그것을 전제한다.

 

「어둔 밤」의 해설은 「가르멜의 산길」의 첫 부분에 있는 욕망에 대한 연구를 덧붙이면서 영성 생활의 초보자들이 범하기 쉬운 7가지 죄를 서술하면서 시작한다.

저자는 여기서 죄란 덕을 거스르는 행위라는 것을 시적으로 표현하며 논하고 있다.

「어둔 밤」의 서문 전체는 죄의 잘못을 깨닫는 영혼들이 밤을 정화시키는 시련을 원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 책의 제1권 8장은 「가르멜의 산길」 제1권 13장에서처럼 이중적인 정화 즉 감각의 정화와 영의 정화를 다룬다.

 

시에 묘사된 상징을 실현하는 진정한 밤은 바로 영의 밤이다.

감각의 밤의 영성적 가치는 다만 진정된 밤을 준비하는 과정일 뿐이다.

영의 밤이야말로 인간의 참다운 사랑의 변화를 위한 구성 요소이다.

영의 밤은 하느님을 관상하고 사랑하는 가운데 온전한 정화와 쇄신의 완성을 가져다준다.

 

3) '영혼의 노래' - 하느님과 일치 위한 그리스도 역할 고찰

 

이 작품은 톨레도 수도원에서 연금생활 중 하느님의 부재를 뼈 속 깊이 느끼며 매우 어두운 밤을 체험한 저자가 내부에서 북받치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성서 「아가」의 형태를 빌어 시적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이 작품은 성인의 저서 중 영적 가르침의 핵심을 이루는 것으로서 영혼의 능동적이며 수동적인 정화의 종착점을 보여준다.

이 책의 첫 부분은 깊은 밤, 고뇌와 고통의 밤, 그러나 동시에 영혼이 아침의 여명을 향해 진보해 나가는 밤을 묘사하고 있다.

그것은 「어둔 밤」에서 이야기한 고통의 일부를 상기시키면서 아울러 응답이 있어야 함을 강조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영혼 안에 하느님의 현존, 고통의 긍정적인 면, 하느님과의 일치를 위한 그리스도의 역할 등을 논하면서 영혼의 영적 진보의 과정을 밝히고 있다.

영적 진보는 하느님과의 일치 과정으로서 그것은 그분께 대한 사랑의 질과 비례한다.

완전한 일치는 영적 결혼이며 이 일치가 영성 생활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세례성사의 생활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언제나 보다 깊이 사랑하도록 요구한다.

 

4) '사랑의 산 불꽃' - 높은 단계의 묵상중에 지은 시를 註解

 

이 작품은 높은 단계의 묵상 중에 지은 시를 주해한 것으로서 「어둔 밤」이나 「영혼의 노래」와는 내용이나 문체에 있어 매우 다르게 다루고 있다.

십자가의 요한은 영적 딸인 페날로자의 안나를 위해 보름 동안 이 주해를 썼다.

이것은 영적 혼인으로 이루어진 하느님과의 일치의 깊이에 대해 쓴 것이다.

여기서 영혼은 신적 생명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사랑의 본질에 더욱 가까워져 깨끗이 정화되고 안정된 상태에 놓여 있음을 노래한다.

「불꽃」은 영혼의 깊은 곳에서 거행되는 성령의 축제를 뜻한다.

이 때에 영혼은 성령의 도유의 은총을 받게 되고 하느님의 사랑에 깊이 잠기어 영적 혼인에 이른다.

이 작품의 해설 전체 내용은 성령께 대한 찬미가라 할 수 있다.

 

제3장에서는 「눈 먼」 무지한 영성 지도자들의 잘못으로 인해 영혼들이 겪는 위험과 방황을 우려하며 경고한다.

그것은 당시 16세기 스페인의 영성적 난국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5) 서간들 - 현재 전해지는 것은 32편

 

십자가의 요한이 쓴 많은 서간들 중 현재 전해지는 것은 32편이다. 그중 25편은 영적 지도를 위해 쓴 것들이다.

서간들의 공통적 특징은 아주 현실적이고 체험적인 면을 잘 나타내고 있는데, 언제나 하느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그 신뢰 속에서 완전한 포기를 통한 마음의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가르침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열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면서도 그의 서간들은 문학적으로도 매우 수준 높은 작품들이다.

 

6) 시 - “스페인에서 가장 뒤어난 시인” 평

 

그가 쓴 시들은 20여 편인데 그 시들은 영성적인 면에서 뿐 아니라 문학적인 가치로도 수준 높은 것이다.

스페인 한림원에서 십자가의 성 요한을 스페인에서 가장 뛰어난 시인의 자리에 설 자격을 주기에 충분하다고 인정하며 칭찬하였던 것이다.

그의 시들은 하느님 체험을 문학적으로 독창성 있게 그리고 조화 있게 표현한다.

후대의 사람들은 그의 시들에서 하느님의 체험을 심리적 및 신학적 측면에서 분석하며 많이 연구해 왔으며 큰 유익을 얻어냈다.

 

7) 기타 소품들

 

십자가의 요한의 소품들 중 전해지는 것들은 영적 보배라고 할만 한 「잠언과 권고」가 있고 베아스 수녀에게 쓴 「영적 경계」, 프랑소와즈 수녀에게 써 보낸「권고」 그리고 한 수사에게 완덕에 도달하기 위해 준 「조언」등이 있다.

 

3. 영성사 안에서 위치

 

교황 요한바오로 2세는 십자가의 성 요한의 서거 400주년을 기념하면서 사목 교서 「신앙의 스승」(1990, 12, 14)을 발표하였다.

젊은 사제 때 로마에서 「십자가의 성 요한에 의한 신앙」이란 주제로 교의 신학 박사 논문을 썼던 교황은 그의 사목 교서에서 성인의 신학 사상과 영성을 깊이 분석하며 높이 기린다.

 

교황은 십자가의 성 요한이 서거한지 400 여년이 지났지만 오 늘도 여전히 교회의 정통 신학의 박사이며 신앙의 스승이고 출중한 영성 안내자임을 재확인하고 있다.

영성사 안에서 십자가의 성 요한의 위치와 교회 생활에 기여한 공헌을 살펴보자.

 

1) 십자가의 성 요한이 살고 활동하던 때(1542~1591)는 스페인과 유럽 그리고 신세계 아메리카에서 창조적이고 강한 종교 중심의 시대였으며 가톨릭 교회의 개혁과 복음적 확장의 시대였다.

그러면서 동시에 교회가 많은 도전을 받으며 내.외적 분쟁과 내부의 분열을 겪어야 하던 시대였다.

 

따라서 교회는 시대의 요청에 긴급히 응답하면서 막중한 임무를 수행해야만 했다.

무엇보다 교회의 내적 쇄신을 위해 트리엔트 공의회를 열어야 했고 신대륙 아메리카를 복음화해야 했으며 유럽은 재 복음화 되어야 했다.

십자가의 요한의 생애와 활동은 그러한 역사적 상황 안에서 전개된다.

 

2) 십자가의 성 요한은 교부들과 신학자들 그리고 여러 영성 저자들의 영향을 받았으나 그의 신학 사상과 영성은 독특성을 지닌다.

그는 살라망카 대학에서 도미니코회 교수들로부터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을 중심으로 교육을 받았으나 부정(否定) 신학파 니싸의 그레고리오와 위 디오니시오의 서적들과 아우구스티노, 그레고리오 1세 대 교황의 작품들도 읽었다.

그리고 그에게 영향을 준 다른 작가들은 성 베르나르도, 에카르트, 루이스브룩, 타울러, 오수나 그리고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등이다.

 

그의 신학과 영성은 그들의 작품이나 사상을 비판 없이 모방하거나 혼합적으로 모아 체계화한 것이 아니다.

그의 작품은 고유한 특성을 지니며 충만한 생명력이 넘쳐흐른다. 작크 마리뗑은 십자가의 요한의 독특성을 이렇게 표현한다.

『우리는 아퀴노의 성 토마스를 남에게 전할 수 있는 최고의 지식을 지닌 큰 학자로 여기는 것처럼 십자가의 성 요한을 남에게 전할 수 없는 최고의 지식을 지닌 큰 학자로 여긴다』

 

그의 작품은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자신의 체험을 해설하며 기록한 것으로서 무엇보다도 성서의 말씀에 입각하여 반추하며 교회의 가르침에 온전히 순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1926년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교회박사」로 선포되었다.

 

그의 신학의 근본 원리는 하느님은 모든 것이고 피조물은 무(無)라는 것이다.

성성은 하느님과의 완전한 일치에 있고 여기에 이르기 위해서는 영혼과 육체가 지닌 모든 기능과 능력이 강하게 철저한 정화를 거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가르멜의 산길」과 「어둔 밤」은 외적 감각의 능동적 정화에서 최고 기능의 수동적 정화에 이르는 전체적인 정화 과정을 추구한다.

그리고 「사랑의 산 불꽃」과「영혼의 노래」는 변형일치 상태에 있는 영적 생활의 완성을 묘사한다.

일치에 이르는 완전한 길은 영혼이 신앙에 의해 나아가므로 「밤」인 것이다.

 

3) 십자가의 성 요한은 훌륭한 시인이기도 했다.

매우 엄격한 평론가로 이름 난 메넨데스 이 펠라요는 1881년 스페인의 한림원에 초대되어 연설하면서 십자가의 성 요한의 시를 『스페인의 어느 시 보다도 뛰어나다』고 평가하였다.

 

그는 남의 것을 모방하여 썼거나 기교를 부리지 않았으며 초자연적 은총의 영감을 받아 자연스럽게 시의 형태에 아무런 구애됨이 없이 쓴 것이다.

성인의 저서의 핵심은 그의 시에서 찾을 수 있다.

 

서정 시적 기질과 초자연적 감수성이 풍부했던 그는 피조물이 표현하고 은은히 들려주는 절묘한 말의 뜻을 누구보다도 깊이 파악하고 있었다.

시란 사람의 마음에서 자연히 솟아 나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이어서, 흔히 말로 다 표현할 길 없는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시의 선율은 형언할 수 없는 체험과 상황을 표현하도록 하는 신비로운 힘이 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요한이 신비스런 체험을 한 후 그것을 시로 표현했던 것은 누를 수 없던 그의 천성적 기질의 충동에서였다.

그가 시를 쓴 것은 문학작품을 남기려는 의도를 가졌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느님과의 만남에서 느낀 그의 심정이 천부적 재능과 감수성을 자극하여 조화를 이루며 자연스럽게 표출된 것이다.

 

4) 십자가의 성 요한은 시대적으로 요청되던 카리스마를 받아 수도회 뿐 아니라, 온 교회의 쇄신에 봉사하였다.

그는 관상적 가르멜 수도 성소에 응답하여 생활하던 중 초기 회규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의지를 지닌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의 개혁 활동에 동참하였으며, 1568년 11월 28일에 남자 개혁 수도회를 아빌라의 두루엘로에서 창립하였다.

 

그의 모범적 삶과 출중한 영적 저서들은 당시와 그 후 역사 안에서 가르멜 수도회 뿐 아니라, 온 교회에 학문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크게 기여해 왔다.

그는 전례, 특히 미사 성제와 성체 조배,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의 신비 묵상, 하느님 말씀에 대한 경청, 하느님의 친교 등에 관해 가르쳤으며, 무엇보다도 시대를 초월한 관상기도의 스승이다.

실로 그는 하느님과의 합일을 위한 정화의 길의 권위 있는 안내자이다.

 

5) 십자가의 요한의 저서들이 오늘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로부터 읽히고 있으며 연구되고 있다.

그의 저서들은 역사 안에서 아빌라의 데레사의 것만큼 그리 널리 알려지거나 읽혀지지 않았다.

그의 책이 1618년 스페인의 알칼라에서 처음으로 출판된 후 이태리, 프랑스 등 일부지역에서 간행되었지만, 별로 알려지거나 보급되지 못했고, 19세기에 와서 점점 그 본래의 가치를 인정받으며, 다시 출판되었다.

 

20세기 후반에 들어 그의 가르침과 영성의 진가가 차츰 교회 안팎으로 널리 알려졌고, 다행히 오늘 매우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 - 신학자, 시인, 철학자, 심리학자, 타 종파의 사람들과 타종교인들 - 로부터 읽혀지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성인은 하느님의 진리와 인간의 초월적인 성소에 모든 이가 해당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것은 많은 이들로부터 그의 작품을 통해 공감을 얻고 있다.

어떤 이는 그의 시의 아름다움 때문에, 어떤 이는 그의 깊은 신비체험에 대한 매력 때문에, 또 어떤 이는 그의 문학 안에 나타나는 인문주의 사상에 대한 호감으로 그의 저서들을 읽으며,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그의 가르침에 동화된다.

이 같은 하느님의 진리의 위대한 증거자에 의해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분의 교회는 오늘 많은 타종파 및 타종교의 사람들로부터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4. 영적 가르침

 

신비 신학자 십자가의 요한은 하느님과의 일치를 위한 여정의 안내자로서 독특하고 차원 높은 영성을 정립하였다.

신앙의 궁극 목적은 하느님과의 일치이며 그것은 부활 후 저 세상에서만이 아니라 이미 이 세상에서 실현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방법 추구에 대한 신비 사상은 우리에게 현실적 삶의 지침이 된다.

 

그는 인간의 본성과 나약성을 깊이 파헤치면서 그러한 인간이 하느님께 나아가는 방법과 과정을 향주 삼덕 (신덕, 망덕, 애덕)에 기초하여 제시한다. 그는 인간이 철저하게 벗어 던지고 끊어야 하는 자기와의 싸움의 근거를 신앙 안에 두면서 완전한 무(無:nada)가 될 수 있을 때 영혼은 완전한 전부(全部:todo)를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을 때 그분과 함께 부활할 수 있다는 신비 안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그의 가르침은 자신의 체험 고백으로서 성서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교부들의 전통과 교회의 정신을 잘 수용 하고 있다.

십자가의 요한은 그의 저서를 통해 영적으로 진보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자신이 체험하며 걷고 있는 완덕의 길을 안내하고자 온 힘을 다 기울인다.

 

1) 완덕의 길 - 하느님과의 합일을 위한 여정

 

그 완덕의 길은 오직 하나 뿐인 하느님과의 일치로 향하는 길이다.

이 길에서 인간적 및 영적 기쁨이나 만족들은 배제되어 있다.

그는 이 영적 여정에 나가는 데 도움이 되도록 베아스의 가르멜 수녀들에게 「완덕의 산」을 그려 설명해 주었는데 그 그림은 그의 사상을 집약하여 잘 표현하고 있다.

 

완덕을 향한 여정의 출발은 비록 소박하고 단순하지만 내적인 자세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완덕의 산은 가르멜의 산길인 좁은 길(무의 길)을 걸어 가야한다.

그렇지 않고 지상적인 불완전한 길(지상의 것에 대한 만족) 이나 천상적인 불완전한 길(영적 만족)을 통해서는 정상에 도달할 수 없다.

좁은 길은 하느님의 사랑과 영광만이 주재하는 산의 정상을 향하는 유일한 길이다.

 

그의 영적 가르침은 본질적으로 복음적이며 성삼위의 신비에 입각한 것이다. 그는 완덕에 나아가는 길에 대하여 매우 낙관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다.

그가 저서들을 통해 가르치는 완덕에의 길은 관상생활에 불린 이들에게 적합한 것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을 관상하는 것에서 제외되지 않는다. 그에 의하면 완덕의 절정에 이른다는 것은 세례성사의 은총을 꽃피우고 열매 맺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능력의 한계와 죄를 짓는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성령을 통하여 변화될 수 있으며, 아버지의 뜻과 일치하시던 그리스도의 기도 자세를 본받을 수 있다.

 

그러나 하느님과의 일치를 위해서는 하느님의 은총을 수용할 수 있도록 인간 편의 준비와 협력 그리고 철저한 비움의 노력이 전제된다는 것을 그는 거듭 강조한다.

그는 밤의 상징과 불로 인하여 변화된 나무의 상징들로 그 모습을 표현한다.

 

십자가의 요한은 완덕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영성의 근본적인 전망을 제시할 뿐 아니라, 체험을 통해 그곳으로 이끌어 주는 모범적 스승 역할을 한다.

 

2) 하느님의 초월성과 내재성

 

십자가의 요한에게 하느님의 초월성은 구체적인 영적 판단의 원천이다.

하느님이 모든 것을 초월하신다는 것은 그분의 위대하심이 인간의 상상의 한계를 초월하기 때문이기 보다 그분의 선하심과 아름다움이 모든 선과 아름다움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또한 하느님의 사랑은 이 세상에서 찾을 수 있는 사랑이나 자애와는 도무지 비교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하게 하느님이 초월적인 분으로만 머물러 계신다면 인간들은 결코 그분께 도달할 수 없다.

하느님은 인간적이고 자연적인 모든 것을 초월하고 계시는 분이시지만 또한 언제나 당신을 드러내시고 내어주시어 인간들이 그분과 함께 머물면서 대화하고 함께 지낼 수 있게 되길 원하신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하느님의 사랑과 자애는 하느님의 초월적 특성이지만 더 나아가 하느님의 내재적 특성이기도 하다.

바로 이러한 하느님의 내재성 때문에 우리들이 그분을 인식할 수 있고 대화할 수 있으며 사랑할 수 있다.

 

예수님의 강생은 하느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의 조화를 잘 드러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초월적인 모습을 구체적으로 나타내 보이신 하느님께 대한 절대적인 믿음은 십자가의 요한의 영성적 가르침의 중심이다.

 

그는 믿음을 통해 얻게 되는 인식은 인간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모든 지식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일반적인 지식도 인간이 하느님께 나아 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어떤 지식도 믿음 외에는 하느님께 도달할 수 있도록 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지상에서 얻을 수 있고 인식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능가하는 초월적 하느님을 인식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분이 먼저 인간에게 믿음을 통하여 알려주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느님은 말로 표현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분이시지만, 그분께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사다리가 있는데 그것은 그분의 말씀을 믿는 것이다.

그에게 믿음은 하느님께 일치하는 가장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삶의 방법이지 어떤 이상적 관념이나 이론적 지식이 아니다.

 

3) 신앙을 표현하는 상징들

 

십자가의 요한은 자신의 신앙 체험을 표현하고자 여러 가지의 상징적 용어들을 사용하였다. 길, 산, 밤, 샘, 불꽃 등이 그것이다.

그는 「길」이란 상징적 용어를 통해 인간이 하느님과 합일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취할 신앙적 자세와 과정을 가리킨다.

 

「산」은 걸어올라 가야할 높은 목표로서 하느님의 성성에 참여하는 것, 하느님과의 합일에 이르는 것을 상징한다.

「샘」이란 새로 태어남, 성령의 살아있는 물 등을 뜻하며 새로운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신앙의 적극적인 면을 표현한다.

 

그리고 「불꽃」은 사랑, 빛, 따뜻함, 신앙 체험 등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밤」혹은 「어둔 밤」은 십자가의 요한의 상징들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그는 영혼이 하느님께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밤' 이라고 한다.

 

이 밤엔 세 단계가 있다. 우선 하느님께 나아가는 출발점에서 인간은 깜깜한 밤을 느낀다. 정화되지 못한 삶엔 모두가 밤이기 때문이다.

끊고 물리쳐야 할 온갖 욕(慾)에 사로잡혀 있기에 앞길이 캄캄한 것이다.

 

이 어둠은 요한 복음사가가 자주 언급하는 「빛과 어둠」의 싸움에서 알 수 있듯이 무절제한 경향에로 기울기 쉬운 인간의 죄를 뜻한다.

둘째 단계는 인간이 점차 믿음을 통하여 어둠의 상태에서 벗어나며 새로운 존재로 변화되어 가지만 여전히 믿음의 어둔 밤 길을 걸어가게 된다.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인 믿음은 이성(理性)에게는 언제나 밤과 같이 어둔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단계에 이르러 밤은 조금씩 안정되고 어둠에 친숙해지는 것을 느끼게 되지만 「믿음의 밤」상태는 여전하다.

 

이 마지막 도착지에 이르러서도 인간이 나아가고자 하는 목표인 위대하신 하느님의 영원한 빛은 너무 강해서 아직 이 세상의 인간의 눈으로는 도저히 바라볼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성 요한

 

십자가의 요한은 하느님께 나아가는 여정에서 그가 체험한 믿음의 단계들을 구분하여 서술한다.

그 단계들은 오리게네스, 닛사의 그레고리오, 위 디오니시오 등 교부들의 전통적 가르침과 유사하다.

 

전통적 구분은 정화의 단계(초심자), 조명의 단계(진보자) 그리고 일치의 단계(완성자)를 포함한다.

십자가의 요한은 자신의 체험에 비추어 「믿음의 밤」을 중심으로 초저녁 (감각의 밤 : 초심자), 밤(영의 밤 : 진보자), 새벽(영적 혼인 : 완성자), 낮(영원한 영광 : 하느님 대면)에 이르기까지 여러 단계로 나눈다.

 

하느님께 나아가는 여정엔 순탄한 지름길이 없다. 거기엔 하느님 편의 자비로운 부르심과 인내로운 가르치심이 있고, 인간 쪽의 응답적 협력으로 수덕과 성숙을 위한 정화의 시간이 요청된다.

 

우리는 여기서 마지막 과정인 낮(영원한 영광)의 단계에 이르게 하는 앞의 세 단계를 살펴본다.

 

1) 첫째 단계 : 초저녁 (감각의 밤 또는 정화)

 

십자가의 요한은 감각 세계 자체를 인간의 성화와 구원에 있어 나쁜 것이거나 장애물 되는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대응 및 사용 자세에 따라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영혼의 진보를 방해하고 해를 끼치는 것은 이 세상의 사물들이 아니라 그에 대해 인간이 집착하는 '욕망과 그 맛' 이라고 한다.

따라서 영혼이 성취해야 할 목표에 이르기 위해서는 감각적인 모든 맛과 모든 만족을 거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단계는 감각적 쾌락 안에서 누리던 모든 낙을 끊고 보다 높은 영적 차원으로 끌어올리기 위하여 자신의 의무 수행이나 애덕의 실천, 기도, 묵상, 독서, 고행의 실천 등에 전념해야 하는 단계이다.

그는 이런 감각의 정화를 「감각적인 것에서 떠남」이라고 표현하며 정화의 규범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음

 

그리스도인의 성화는 그리스도와 일치하고 그분의 신비에 참여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더욱 성화되기 위해서는 더욱 긴밀히 그분의 신비에 들어가 살아야 한다.

그는 그리스도를 단순한 스승이나 모범이 아닌 「사랑해야 할 스승」, 「본받아야 할 모범」으로 제시한다.

 

나) 감각들에 대한 정화

 

예수님을 사랑하고 본받는 행위는 무엇보다 먼저 인간의 의지를 모든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포기로 향하게 한다.

십자가의 요한은 자아포기의 이유와 원동력을 예수께 대한 사랑과 본받음에서 찾길 권한다. 예수께서는 지상 생애 동안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것 외엔 다른 어떤 즐거움을 원하거나 찾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다) 욕(慾)에 대한 정화

 

인간은 즐거운 것에 집착하도록 하는 감감적 욕망들을 정화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감각이 요구하는 것들을 끊는 것만으로 충분치 못하고 본성적인 욕망들에 반대되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원하고 실천함으로써 그 욕망들에 반격을 가해야 한다.

 

라) 자애심으로부터 정화

 

교활한 자기 만족, 자신에 대한 미묘한 친절 마저 끊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자애심은 하느님과의 일치를 불가능하게 한다.

십자가의 요한이 강조하는 「자아 포기」는 언뜻 보기에 절대 부정에 이르는 듯하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절대 긍정을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완전히 죽는 것만이 그분과 함께 완전히 부활한다는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2) 중간 단계 : 조명의 길

 

십자가의 요한은 「감각의 밤(정화)」을 설명한 후 「영의 밤(정화)」에 들어가기 전의 중간 시기에 대하여 말한다.

이 단계는 어떤 이에게는 길고 또 다른 이에게는 짧은데, 하느님께서 그 사람의 내적 상태에 따라 다르게 그분의 업적을 이룩하시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어떤 때는 조이시고 엄하게 다루시며 어떤 때는 관대하게 인도하신다.

즉 「어둔 밤」도 있고 「고요한 밤」도 있다는 것이다.

이 중간 시기에 영혼은 관상을 체험하면서 하느님과 더욱 친밀 해지는데 그것은 감각의 정화에 들어가기 전엔 체험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와 동시에 새로운 조임도 나타나는데 그것은 다가올 '영의 어둔 밤' 의 전조로서 영의 메마름과 시련의 어둔 밤이 오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3) 둘째 단계 : 밤 (영의 밤 또는 정화)

 

이 때의 유일한 안내자는 「믿음의 밤」뿐이며 정화는 지성 뿐 아니라 기억, 의지 등 인간 전체에 해당된다.

영의 정화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포함한다.

 

가) 육체의 외적 감각에 의한 지식

 

나) 육체의 내적 작용에 의한 지식(묵상, 시현, 계시, 영의 말씀, 예언 등 내적 감각에 의한 것들)

 

다) 순수한 영의 지식(지적 시현, 계시, 내적 말씀, 의지적 감정 등 지성에 의한 것들)

 

십자가의 요한은 다른 신비가들과 달리 시현(示顯)이라든가 감각적인 것 또는 이상한 현상들에 대해서 부정적이다.

그는 그와 같은 시현 등 초자연적인 것들에서 위로를 찾지 않을 뿐 아니라 그런 것을 위험하고 잘못된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하여 오로지 믿음이라는 빛에만 의존 하기를 권하다.

어둔 밤을 친히 체험한 그는 하느님과의 관계에 있어 순수한 믿음의 길을 설명한다.

 

요한의 영성적 특징 중의 하나인 「부정적」(apophatic)인 면은 사건이나 사실, 사물에 대해 부정을 위한 부정, 단순한 거부로서의 부정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무한하신 하느님은 지성, 기억, 의지 등 영혼의 기능으로는 온전히 다 파악할 수 없는 분이시기에 향주 삼덕(신덕, 망덕. 애덕) 으로 변모될 때 하느님께 이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향주 삼덕을 영혼의 세 능력에 짝을 지우고(지성-신덕, 기억-망덕, 의지-애덕), 하느님과의 여정에서 영혼이 정화되어야 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4) 셋째 단계 : 새벽 (영적 혼인)

 

이 단계는 「영적 혼인」이란 상징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와 같은 상징은 오리게네스, 베르나르도, 아빌라의 데레사 등 여러 신비가들의 저서에서도 볼 수 있는 것으로 성서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

「아가」「호세아서」에서 하느님과 그분의 백성의 관계를 상징하면서 사랑의 만남, 기쁨, 충실성 및 책임감 등으로 묘사한다.

 

그리고 사도 바오로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정배』(에페 5, 22~33) 라 부른다. 영혼이 하느님과의 합일을 이루기 위해선 정화의 기나긴 여정을 거쳐 순수성에 도달해야 한다.

정화 혹은 무(nada)는 하느님과의 합일에 합당한 자세를 갖추도록 영혼을 준비시킨다.

 


 

축일 12월 14일 십자가의 성 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