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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가톨릭 산책

파리의 성녀 제노베파(Genevieve)

by 파스칼바이런 2010. 7. 8.

파리의 성녀 제노베파(Genevieve)

파리의 수호성녀

 축일  1월 3일

 

 

 

 

성녀 제노베파는 프랑스 파리의 수호 성녀이지만, 그녀의 이름은 파리뿐 아니라 온 천하에 알려져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성녀의 생애(生涯)를 회고해 볼 때 느끼는 것으로 하느님께서는 가끔 연약한 자를 선택하셔서 위대한 사업을 성취하신다는 것이다.

 

성녀 제노베파는 422년 프랑스의 낭테르라는 농촌에서 태어났다.

430년 성 젤마노 주교께서 순례(巡禮)도중 그 마을에 들르자,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이 주교의 강복을 받기위해 모여들었는데, 어린 제노베파도 그 중에 끼어있었다.

 

주교께서는 필연 그때 하느님의 묵시를 받으셨음인지 제노베파를 가까이 부르셔서 "그대는 몸과 마음을 예수께 봉헌하겠느냐?"고 물으셨다.

그러니까 이 소녀는 대뜸 즐거운 기색으로 대답했다.

"네, 그것은 훨씬 전부터 제가 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나와 같이 성당에 가자."

  

주교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시면서 소녀를 그 동네의 성당에 안내하시고 그 머리위에 두 손을 얹어 강복하신 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새겨진 패를 주시면서 "언제든지 이것을 목에 걸고 네 약속을 잊지 말라"고 간곡하면서도 부드럽게 말씀하시고 재차 여행에 오르셨다.

 

이런 일이 있은 뒤 제노베파는 여전히 부모의 슬하에 머물러 있었다.

이 소녀의 신심은 날이 갈수록 더욱 깊어갔다. 특히 많이 기도하고 고행을 했다.

그녀의 나이는 비록 어릴지라도 하느님 대전에는 이미 위대한 자였다.

하느님께서는 그녀를 보호하시고 그녀의 기도를 들으시어 기적까지도 행해 주셨다.

 

어떤 날 성녀께서 어머니에게 "성당에 조배하러 가겠으니 허락해 주십시오."하고 청했더니, 그때 어떠한 일로 매우 마음이 상하여 있었던 어머니는 허락은, 커녕 의외로 성녀에게 무수히 매질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즉시로 소경이 되었다.

이것은 하느님께 그의 죄를 보속시키신 것이었다.

 

어느 날 어머니는 그녀에게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오라고 하며, "네가 그 위에 십자가를 그어라"고 했다. 제노베파가 그대로 하니까 어머니는 딸의 기도를 의지해 그 물을 찍어서 눈에 바르니, 즉시 사방이 훤하게 이며 전과 다름없는 완전한 눈이 되었다.

그 후로 어머니는 물론이지만, 아버지도 딸이 하느님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대단히 기뻐했다고 한다.

 

그러나 제노베파 자신은 여전히 순진한 마음으로 가정에서는 어머니를 돕고, 밭에서는 아버지의 심부름을 하며 열심히 일했으므로 그녀를 아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녀를 탄복하고 존경했다. 그녀는 주교로부터 한 폭의 머리 수건을 받았다. 그들에게 훌륭한 모범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오래지 아니하여 시련을 당하게 되었으니, 그것은 머리 수건을 받고 얼마 되지 않아 양친이 연거푸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 후 성녀의 대모는 그를 파리에 데리고 갔다.

제노베파는 그곳에서도 엄격성은 주교께서 차마 볼 수가 없어 말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가령 그녀의 음식물은 언제든지 고작 보리 빵과 과일뿐이고 거기에 물을 좀 마시는 것뿐이었으며 포도주 같은 것은 마시는 일이 없었다.

또한 엄격한 단식재를 지키며 거의 끊임없이 기도했다.

 

또 파리에서도 시련이 없을 리가 만무했다. 그녀는 중병에 걸려 위독한 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그 중병이 겨우 나으려 할 때, 이번에는 여러 악한 자들이 터무니없는 허물을 다 들추어 말했으므로 또 고생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나 그녀를 음으로 양으로 항상 보호해 준이는 성 젤마노 주교였다.

  

그러는 동안에 제노베파에 대해 큰 시련도 되고 명예도 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은 451년 훈족의 두목 아틸라가 대군(大軍)을 인솔해 프랑스를 침입해 온 것이었다.

그들은 지나가는 곳마다 약탈하고 사람들을 마구 죽였다. 훈족이 쳐들어온다는 소문이 파리에 퍼지자, 시민들은 어쩔 줄을 몰라 갈팡질팡하며 한시라도 빨리 가족을 데리고 도망하려고 했다.

여기에 대해서 굳세게 반대한 것은 저 연약한 동정녀인 제노베파 뿐이었다.

 

"여러분, 시중(市中)에 머무르십시오. 적은 파리에는 결코 들어오지 않습니다.

도리어 여러분이 도망가는 곳이야말로 위험합니다."

그러한 그녀의 의견에 순종한 이는 부인들뿐이었다.

남자들은 ’거짓 예언자가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우리를 야만인에게 넘기려고 하는구나.

 

죽여 버리자!"하고 살기에 가득찬 얼굴로 그녀를 붙잡아 막상 일을 저지르려고 할 때, 다행히도 그곳에 세드리오라는 사제가 달려와서 "잠깐 기다리십시오. 당신들은 전에는 이 동정녀를 존경하고 그녀의 기도의 힘을 믿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지금은 어찌해서 마음이 변했습니까?"하며 지성껏 말렸으므로 흥분했던 남자들도 점차 진정되어 마침내 파리에 머물게 되었다.

 

그런데 제노베파의 예언은 훌륭히 적중되었다.

아틸라는 파리 방면에는 오지 않고 다른 방면으로 향해, 오래지 않아 전쟁에 패해 후퇴했다. 이런 일이 있은 후부터 사람들은 전보다 더욱 그녀를 존경하게 되었다.

제노베파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헌신 노력하고 특히 가난한 사람이나 불행한 사람들에게는 모든 원조를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 왕까지도 그녀에게 의견을 물어보며 따르게 되었다.

그녀에게 기도를 청하러 오는 이는 이루 헤아릴 수 없었고, 그녀는 기도의 효험은 가끔 유명한 기적까지도 일어나게 했다.

 

제노베파는 또 한 번 파리 시민을 커다란 환란에서 구제한 공로가 있다.

그것은 파리가 클로비스 왕의 군대에 포위되어, 양식이 떨어져 사람들이 굶어 죽은 지경에 이르렀을 때, 제노베파가 기이하게 양식을 구해왔고, 또한 그녀의 성스러운 생활로써 모든 사람들에게 용기를 준 것이었다.

그러므로 프랑스 국민이 그녀를 지금도 조국의 어머니(母)라고 부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그녀는 90세의 고령(高齡)에 이르러 512년에 하늘로 오르고 사후 즉시로 성녀 품에 오르셨다. 파리의 보호자라고 존경받는 것은 처음에 말한 바와 같다.

 

(대구대교구홈에서)

 


 

축일 1월 3일 성녀 제노베파(Genevie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