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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성인] 성 존 뉴만(1811-1860) 윤 클레멘트 신부
2012년 1월 현재, 여섯 사람의 성인을 가진 미국 가톨릭교회에 한 사람의 주교 성인이 있는데, 그가 존 뉴만이다. 학식, 성덕, 영적 저술, 훌륭한 설교, 열정적인 사목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드높였던 그는 오늘날의 체코슬로바키아가 된 보헤미아의 프라카티즈(Prachatitz)에서 태어났다. 그는 신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체스케 부데조바이스(Ceske Budejovice)의 학교에 들어가는데, 2년 후 곧 프라하 대학으로 옮긴 후 정작 그의 관심은 천문학과 식물학이었지만 사제가 되려는 마음으로 신학을 공부한다.
하지만 많은 수의 사제가 있어서 한동안은 보헤미아에서의 사제서품이 없다는 것을 알고, 그는 사제가 되려는 희망을 안고 미국으로 간다. 그는 당시에 뉴욕 주와 뉴저지 주 전체를 관할하던 뉴욕교구로부터 받아들여져 1836년 6월에 서품을 받는다. 서품 후 그는 버팔로-로체스터 지역에서 독일인 이민자들을 위해 약 4년간을 쉬지 않고 일한다. 그는 시골 지역을 방문하고 병자들을 찾아갔으며, 교리를 가르치고 교리교사들을 훈련했다. 1840년까지 4년 동안 그는 뉴욕 윌리암스빌의 성 베드로와 바오로 성당을 설립했다.
그리고 그 무렵에 미국에 들어온 구속주회(Redemptorist)에 들어가 수련을 받고 2년 후에는 첫 서원을 한다. 뉴욕교구 사제에서 구속주회 사제가 된 그는 탁월한 언어실력(8개의 언어구사)을 바탕으로 여러 이민사회들에서 이상적인 설교가로 활동했는데, 특히 피츠버그와 볼티모어에서 더욱 그러했다.
사목과 삶에서의 그의 거룩함과 열정을 알게 된 유럽의 구속주회 장상은 그를 미국 내의 구속주회 총대리로 임명하였으며, 그는 아프리카-아메리칸 어린이들의 교육을 위해서도 헌신한다. 1852년은 그가 41세가 되던 해였는데, 2월 5일에는 놀랍게도 미국 필라델피아 교구의 4대 주교로 임명된다. 당시에 필라델피아 교구는 다국적 언어의 인구와 큰 빚더미의 교구였다. 그는 주교로서의 사목표어를, "Passio Christi, Conforta me! - 그리스도의 수난은 나에게 힘을 주소서"로 정한다.
그는 피곤을 모른 채 참으로 온갖 열성을 다하여 사도직에 몰두하였고, 학교와 본당들을 짓고 주교좌 성당을 완성했으며, 수많은 교육 수도단체(Christian Brothers)와 교육수녀원들을 초대하였다. 특히 그는 본당학교 제도를 교구차원으로 조직하였는데 빠른 기간 안에 학생 수가 20배로 증가한다. 그는 또한 자신의 소속 수도회인 구속주회 회원들을 본당 활동의 최전선에 파견하기도 하였다.
하느님 나라를 위해 자신의 교구에서 불철주야 사도직에 온 삶을 불태우던 그에게 반대세력과 시련도 적지 않았다. 어느 날 그는 교황에게 다른 교구로 보내줄 것을 청하지만, 교황은 그곳에서 계속해서 일해 줄 것을 말한다. 그가 49세가 되던 1월 5일 과로와 피곤에 지친 그는 한 도시의 어느 거리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그의 영혼은 하느님께로 떠난다.
1977년 6월 19일 그는 미국주교로서는 처음으로 시성되는데, 축일은 1월 5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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