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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가톨릭 산책

[영성의 향기] 수도회 창설자를 찾아서 - 성 엘리사벳 앤 씨튼

by 파스칼바이런 2010. 8. 5.

 

 

[영성의 향기] 수도회 창설자를 찾아서 - 성 엘리사벳 앤 씨튼

사랑의 씨튼 수녀회 설립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그러하듯 하느님은 인간의 상식을 완전히 뛰어넘는 일을 하실 때가 많다.

그래서 하느님을 충실히 따랐던 성인 성녀 중에는 세인들로부터 '비상식적'이요 '뜻밖의 인물'로 평가받은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사랑의 씨튼 수녀회'를 설립한 성녀 엘리사벳 앤 씨튼(1774-1821)이 수녀회 창설자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도 통념적으로는 '비상식적'인 범주에 속할 수 있다.

성녀 씨튼은 성공회 신자였고 한 남자의 아내였고 다섯 아이를 둔 어머니였기 때문이다.

 

씨튼은 1774년 뉴욕에서 성공회 신자인 의사의 딸로 태어났다.

어릴 적 친어머니를 여읜 씨튼은 계모 슬하에 자라면서 그다지 행복하지만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이러한 시련을 통해 씨튼은 오히려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는 신앙의 기초를 다졌다.

 

20세가 됐을 때 윌리엄 매기 씨튼과 결혼, 다섯 자녀를 낳고 행복한 생활을 하는 중에도 씨튼은 인간적인 행복에 겨워 하느님을 잊어버릴까봐 늘 성서를 읽으며 기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녀는 가정에서 주부와 어머니로서 흠잡을 데 없이 성실하면서도 틈틈이 과부와 가난한 이들, 병자와 임종자들을 위해 열심히 봉사했기에 주위에서는 그녀에게 '프로테스탄트 사랑의 수녀'라는 별명을 지어주기도 했다.

 

1803년 폐결핵으로 남편을 잃은 뒤 씨튼은 1805년 천주교로 개종했다.

당시 뉴욕 사회는 성공회를 포함, 개신교 신자들이 상류층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천주교로 개종한다는 것은 사회적인 신분하락과 동시에 유산 상속을 포기한다는 의미도 갖고 있었다.

 

천주교로 개종한 씨튼은 수도자의 삶을 살기로 결심하고 1809년 오랜 꿈이었던 수녀회를 설립, 종교 차별과 빈곤으로 교육을 받지 못하는 어린이들을 위한 학교를 열었다.

그리고 어머니와 수도자라는 두 가지 역할 수행에서 오는 갈등과 혼란을 그녀는 하느님께 대한 깊은 신뢰와 내적인 평화로 승화시켜 나갔다.

 

씨튼이 세운 수녀회와 학교는 날로 번창했으나 그녀는 과로와 결핵으로 인해 1821년 47세라는 젊은 나이로 선종했다.

탁월한 지성과 사랑을 겸비했던 씨튼은 그 덕행을 인정받아 1963년 시복됐으며 교황 바오로 6세는 1975년 그녀를 성인품에 올렸다.

 

시튼의 영성은 내적으로는 강인하고 외적으로는 부드러운 면을 지니고 있다.

그녀는 사도 바오로의 말을 빌어 스스로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나는 아프지만 죽지는 않습니다. 모든 면에서 고통을 받지만 낙담하지는 않습니다. 혼란되지만 실망하지는 않습니다. 시련을 받지만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내쫓기지만 멸망하지는 않습니다. 이 세상의 시련은 잠시뿐이지만 앞으로 올 삶의 영광은 영원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시련을 당할 때 인내로웠으며 고통 안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찾을 줄 알았다.

이런 내적인 강인함으로 인해 남편과 자녀들이 그녀보다 먼저 죽었을 때도 그녀는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 영혼이 하느님과 일치할 때 가난 속에서도 풍요로울 수 있으며 깊은 고뇌 속에서도 즐거움이 있습니다"라고 말함으로써 그녀는 드러난 고통 속에 숨겨진 은총을 발견할 수 있었음을 고백했다.

 

 

반면 공동체 안에서는 어머니다운 온유함과 자애로움을 한껏 발휘했다.

그녀는 자주 "기도하고 사랑하고, 사랑하고 기도하는 것, 이것이 내 아이들을 위해 불쌍한 엄마가 할 수 있는 전부"라고 말하곤 했다.

현명한 어머니가 자신을 헌신함으로써 가정을 화목하게 하고 자녀를 훌륭하게 키우듯이, 씨튼은 수녀회를 화기애애한 공동체로 가꾸기 위해 기도와 사랑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가난하고 불쌍한 이들을 자신의 친자녀들과 갈라놓고 생각하지 않았다.

 

성모 신심과 성체 신심에 바탕을 둔 씨튼의 영성은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와도 깊이 결합돼 있다.

수녀회 설립 초기부터 학교 교육 외에도 가난한 이들을 방문하고 병자들을 간호하는 등 불쌍한 이들을 위한 활동을 벌였던 그녀는 성 빈첸시오의 규칙을 수녀회 회헌으로 채택했으며 이를 시대적 요청에 맞도록 바꾸어 1817년 공식적인 인가를 받았다.

 

어머니와 수도자라는 두 길을 모두 훌륭히 걸었던 성녀 씨튼. 그녀의 삶은 우리에게 '고정관념'과 '선입견'으로부터 풀려나기를 원하시는 하느님의 뜻을 전달해준다.

또한 하느님은 사회적인 신분이나 자격을 보고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을 따를 태세가 갖춰진 사람을 선택하신다는 것도 알게 해준다.

예수 그리스도를 무작정 사랑했던 막달레나에게 부활의 기쁜 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주셨듯이.

 


 

축일 1월 4일 성녀 엘리사벳 앤 시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