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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가톨릭 산책

빈민들의 성녀 마더 데레사

by 파스칼바이런 2010. 8. 29.

 

빈민들의 성녀 마더 데레사

 

“일하는 분은 내가 아니라 주님”

 

 

흰 무명의 인도의상(사리)을 걸치고 가슴엔 苦像(十字架)을 늘어뜨린채 젊은이처럼 뛰고 있는 七旬의 할머니 수녀 - 그가 바로 올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貧民들의 聖女」로 불리우는 인도의 「마더 데레사.」 그는 오직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불타는 사랑으로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 속에서 그들과 함께 가장 가난하고 버림받은 자 되어 그들의 구호만을 위해 일생을 바쳐왔다.

 

1910년 8월 27일 유고슬라비아「스코프예」에서 알바니아系 부모로부터 출생, 1950년 인도시민권을 획득한 데레사 수녀의 본명은 아네스 곤사 보자히우.

 

데레사 수녀는 12세 때 이미 수녀가 되기로 결심, 17세 때 로레또 수도원에 입회하였고 1929년 인도로 파견됐다. 그곳에서 「캘커타」 聖마리아고등학교의 지리교사로 첫 봉사활동에 나선 데레사 수녀는 비교적 부유한 집안출신의 자녀들이 다니는 이 학교에서 교장의 지위에까지 올랐었다. 그러나 「캘커타」의 현실은 교실안의 세계와는 판이하여 수많은 빈민들이 길바닥에 쓰러져 배고픔과 병고로 죽어가고 있는 형편이었다.

 

1946년, 피정차 「나르제엘링」으로 가던 중 타고 있던 열차 안에서 데레사 수녀는 모든 것을 버리고 가장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에 계신 주님을 섬기러 빈민촌으로 가라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일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주님이라」는 강한 확신으로 교사직을 포기하고 일생을 빈민들에게 바치기 위해 그들 속에 뛰어들었다.

 

그때부터 데레사 수녀는 수녀복 대신 「사리」로 갈아입고 빈민들과 함께 생활하기 시작, 쓰레기통에 버려진 아기들을 데려다 양육하고 구역질나는 악취를 풍기는 나환자 집에 그들의 상처를 치료해 주는 등 30년간을 빈민들 속에서 그들과 함께 가난을 살아왔다.

 

그간 데레사 수녀의 집에서 양육돼 양부모의 품에 안긴 어린이들은 수천 명에 달하며 수백만 명 이상의 인도인들이 이동병원의 진료를 받았고 5만여 명의 나환자가 특수진료 혜택을 입었다. 현재 진료해 주고 있는 나환자만도 수만 명이 되며 진료가 끝난 사람은 정부에서 세워준 「샹티ㆍ나가르」(평화의 마을)에 있는 재생의 센타에서 자립의 터전을 닦고 있다.

 

데레사 수녀가 택한 이러한 생활은 다만 불굴의 용기와 강한 신앙 그리고 그리스도에 대한 뜨거운 사랑의 표현이었으며 그것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봉사로 나타났을 뿐이었다.

 

데레사 수녀는 오늘날 사람들이 자신들과 같은 인격적 존재로 생각지 않고 있음을 통탄, 만일 가난한 이들의 존엄성을 인식한다면 그들에게 더 가까이 가게 되고 그들이 하느님의 자녀로서 사랑과 존경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알게 될 것이라고 안타까워 하고 있다.

 

『하느님을 위해 아름다운 행위를 실천하는 것』 이것이 바로 데레사 수녀의 삶의 신조이다. 데레사 수녀는 『하느님을 위한 목적 하에 이루어진 것이면 그것은 모두 아름다운 것』이라고 역설, 자신의 사업도 주님의 일이기 때문에 계속될 것이며 좋은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데레사 수녀는 『저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곧내게 해준 것이다』(마태 25, 45)라고 한 그리스도의 말씀을 쫓아 배고픈 그리스도、헐벗은 그리스도, 집 없는 그리스도를 위해 가난한 이들 가운데서도 가장 가난한 이들처럼 살며 모든 힘과 봉사에만 바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그리스도를 이해하는 열쇠는 형이상학적ㆍ윤리적인 설명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랑의 행위에서 일뿐이며 그것은 이론이 아닌 체험이고 이데올로기가 아닌 생활자체라고 그는 말하고 있다. 또한 그것은 논증보다는 직관을 통해 얻은 實在이며 이성의 영역이 아닌 영신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기에 인간의 언어와 사고를 초월한 또 다른 높은 차원에로 도달하는 것이란 사실을 그는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데레사 수녀는 가난과 질병 등으로 위협당하며 길가에 쓰러져있는 이웃에 대한 무관심과 외면 및 온갖 착취와 부정부패, 사랑과 애덕의 결핍이 현대사회를 어둡게 하는 요인임을 근심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고통스러워 하는 것은 물질의 빈곤이 아닌 사랑의 빈곤』임을 역설, 헐벗고 굶주린 형제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하고 있다.

 

데레사 수녀는 인간이 느끼는 가장 큰 비참이란 바로 자기가 버림받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으로 이 무서운 병은 마음속으로부터의 진정한 사랑과 봉사의 손길로써만 치유될 수 있음을 절감、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그들이 버려져있지 않다는 것과 진정으로 그들을 사랑하고 받아들여주는 사람들이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려고 애써왔다

 

데레사 수녀는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사업이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면 신앙위에 그 기초를 두어야함을 강조、『참된 신앙이란 사랑을 주는 것으로 사랑과 신앙은 서로 보충해주는 동반자』라고 지적하면서 『사랑이란 사계절 어느 때나 누구든지 가꾸기만 하면 열리는 열매이며 그 열매는 하느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과 기도하는 마음 그리고 희생과 헌신을 통하여 얻어진다』고 말했다.

 

또한 데레사 수녀는 사도직의 사명도 기도하는 마음자세 없이 완수할 수 없다고 생각, 언제나 성부와의 일치를 자각하였던 그리스도와 같이 우리도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인지해야 하며 그리스도의 능력과 원의(願意)와 사랑이 우리 안에서 작용한다는 것을 확신하고 실천함으로써만 우리의 모든 활동이 참다운 사도성의 의미를 지나게 될 것임을 강조해왔다.

 

오늘날 데레사 수녀가 창설한 「애덕의 전교수녀회」는 인도 내에서는 물론 전세계적으로 자선활동을 확대해가고 있는데 일천 명이 넘는 수사ㆍ수녀들이 세계 67개국에서 데레사 수녀와 같은 봉사를 하고 있다.

 

「애덕의 전교수녀회와 데레사 수녀 협력자들의 국제후원회」는 종교를 초월, 하느님과 이웃사랑을 증거하려는 모든 남녀노소로서 구성되어있다.

 

한편 수상 소식을 들은 데레사 수녀는 『나는 상 받을 자격이 없으며 다만 하느님의 뜻에 따라 행동해 왔을 뿐』이라고 겸손해 하면서 상금 19만 1천 달러는 『특히 나환자와 빈민을 위한 센타를 건설하는데 쓰겠다』고 밝혔다

 

1901년 「노벨」평화상 설립 이후 여성으로서는 여섯 번째로 평화상을 받게 된 데레사 수녀는 이에 앞서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요한 23세 평화상」을 수상했고 인도 정부로 부터도 「로투스」훈장을 수여받은 적이 있다.

 

어두운 현세에 열과 빛을 주는 등불, 비정한 이 시대에 복음과 그리스도 사랑의 肉化的 존재, 「神은 죽었다」고 외치는 암담한 이 현실 속에서 은총과 진리가 가득한 「말씀」이 우리 가운데 살고 계심을 보여주는 증거자 마더 데레사. 그는 받기보다는 주는 것, 파괴와 같은 성급한 처사보다는 묵묵히 기다리며 배려하고 정돈하는 마음, 건실한 삶을 위한 희생의 헌신, 바로 거기에 사랑과 구원이 있다는 것을 자신의 삶을 통해 우리들에게 조용히 말해주고 있다.

 

오늘도 그리스도와 이웃에 대한 사랑에 불타는 七旬의 데레사 수녀는 이렇게 외치고 있다. 『가난한 이들이 있는 곳이면 우리는 어디라도 달려가 그들에게 봉사하고 싶습니다. 모든 사람이 우리에겐 그리스도이며 그리스도는 한 분이시기 때문에 어떤 누구를 대하면 그때사람이 내게는 이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가 됩니다.』

 


 

축일 9월 5일 복녀 마더 데레사 (Mother Tere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