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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가톨릭 산책

나지안츠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by 파스칼바이런 2010. 8. 29.

나지안츠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St. GREGORY Nazianzen

San Gregorio Nazianzeno Vescovo e dottore della Chiesa

St. Gregory of Nazianzus, Bishop and Theologian

 

 

Saint Gregoire de Nazianze 15c (Icons De Tver에서)

  

나치안츠의 성그레고리오(G. Nazianzenus, 329?~389/90).

‘카파도치아 3교부’의 한 사람. ‘크리스천 데모스테네스’로 불린 웅변적 설교가.

 

동방교회 4대학자의 한사람(다른 세 사람은 아나스타시오, 크리소스토모, 치릴로). ‘신학자’로 호칭된 정통파 교부. 부친도 같은 이름으로 카파도치아 나치안츠의 주교였다.

그는 카파도치아의 카이자리아, 팔레스티나의 카이자리아 알렉산드리아, 아테네 등지에서 면학(356/357년), 아테네 시절의 학우로 대(大)바실리오,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355년)가 있었다.

귀향 후에 수도사가 되고 싶었으나 부친의 교회에 장로로 취임하게 되었다(362년).

이것이 싫어서 도망했다가 돌아와 ≪도피의 변명서≫를 썼다.

바실리오에 의해 사시마(Sasima)의 주교로 추대되었으나(372/73년), 사양하였고 부친이 죽은(374년) 뒤 나치안츠의 주교직을 계승했으나 이것도 곧 그만두고 은수(隱修)생활에 들어갔다.

 

아리우스파(派)인 발렌스 황제(재위 : 364~378)의 사후, 아리우스파의 아성인 콘스탄티노플로부터 압박당하고 있던 니체아 소수파의 강력한 요망에 따라 수도로 갔다(379년). 그의 웅변은 데오도시우스 1세의 공동신앙 신봉령(380년)과 아울러 마침내 정통파 신앙을 승리로 이끌었다.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년)에서 정식으로 주교에 취임했으나 반대에 부딪쳐 사임하고, 네크타리오스(Nektarios)가 그 자리를 계승하였다.

 

그레고리오는 귀향 후 은수생활을 하면서(384년) 니체아 신앙의 완성을 위해 진력하였다. 그는 일세를 풍미한 웅변가이긴 했으나 바실리오와는 달리, 교회정치가는 아니었다. 은수사적인 경건함과 시적인 휴머니즘에 넘치는 신학자로서 성서와 전승(傳承)에 철저히 입각하였다. 신관(神觀)에 있어서는 삼위일체론의 완성에 공헌하였다.

 

‘아버지는 태어나지 않은 것’, ‘자식은 태어난 것’, ‘성령은 발생된 것’이라는 3자의 규정은 오늘날에도 답습되고 있다. 특히 성령의 규정과 그 신성 증시(神性證示)에 공헌하였다. 그리스도론에 있어서는 아폴리나리오스(Apollinarios)가 그리스도의 안에서의 인간 이성 또는 영혼의 존재를 부정한 데 반대하여,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성(人性, 영혼체)을 주장하였으며, ‘하나의 인격에 있어서의 신성(神性)과 인성의 결합’을 강조하여 칼체돈 그리스도론의 선구(先驅)가 되었다.

저작에는 45편의 강연, 설교집(아리우스파 · 마케도니오스파 · 에우노미오스파를 반박한 것, 니체아 신앙을 옹호한 것), 244통의 서한, 약 400편의 시집이 남아 있다.

 

(가톨릭대사전에서)

 


 

축일 1월 2일 성 그레고리오(Greg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