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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의 인물] 헌신적인 제자 티모테오 허영엽 신부 (평화신문 641호에서)
에페소에 있는 디모테오에게 한 통의 편지가 전달되었다. 스승 바오로에게서 온 편지였다. 티모테오는 반가운 마음으로 편지를 뜯고 읽어 내려갔다. 얼마 전 사람들을 통해 이곳 사정을 스승에게 기별을 보냈었다. 그런데 편지의 내용은 티모테오가 바랬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티모테오는 내심 스승이 이곳 에페소를 떠나 자신에게로 오라고 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바오로는 그냥 에페소에 머물러 있기를 원하고 있었다. "나의 아들, 티모테오! 내가 마케도니아로 갈 때 말했던 것처럼 에페소에 머물러 있기를 바란다. "이 말은 사실 티모테오에게는 충격적이었다.
스승의 이 말은 "끝까지 싸워라! 회피하지 말라! 믿음의 싸움을 계속하라!"라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인간적으로 보면 티모테오에겐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사실 하루하루 버티어 온 것도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티모테오는 당장이라도 스승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에페소에서 홀로 외로운 싸움을 하기에는 너무 지치고 힘든 상황이었다. 당시의 에페소는 황금에 대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어 물질과 돈에 굶주린 도시였다. 그래서 에페소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부에 대한 열정으로 사로잡혀 있었다. 에페소는 이런 분위기는 교회에도 영향을 주어 많은 이단자들이 설치고 있었다.
젊은 티모테오만이 이단자들과 싸워야 했다. 그런데 그 싸움은 사실 젊은 티모테오에게는 힘겨운 것이었었다. 그런데도 바오로는 티모테오에게 혼자 싸우기를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티모테오야, 너는 에페소의 혼잡한 상황에서 빠져 나오고 싶어 할 것이다. 그러나 후퇴해서는 안 된다. 지금 당장은 너에게 갈 수 없으니 네가 혼자 잘 싸워야한다. 내가 늘 너와 함께 영적으로 함께 있는 것을 잊지 마라." 티모테오의 눈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그러나 그는 참고 견딜 것을 다짐했다.
티모테오는 그의 정신적 아버지가 도와주어 승리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티모테오는 이처럼 경건하고 헌신적인 인물이었다. 티모테오는 눈을 감고 스승을 만났던 그 날을 회고했다.
열심한 청년 티모테오는 어느 날 바오로를 만나게 되었다. 그와의 만남은 티모테오의 일생의 전환점을 이루는 가장 큰 사건이 되었다. 당시에 스승은 제 2차 전도 여행을 떠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바오로는 바르나바와 마르코 문제 때문에 결별을 하고 실라를 데리고 안티오키아를 떠나왔었다.
티모테오는 리스트라에서 사람들에게 평판이 좋은 사람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그리스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유대인이었다.
바오로는 티모테오가 젊은 사람이었지만 몹시 듬직해 보이고 믿음이 갔다. "티모테오, 나와 함께 하느님의 일을 하지 않겠소." 라는 바오로의 말에 티모테오는 가슴 쿵쿵거릴 정도로 흥분했다. 영웅은 영웅을 알아본다고 했던가. 바오로는 한눈에 티모테오의 됨됨이를 알아보았던 것이다.
티모테오는 리스트라에서 돌에 맞아 죽은 줄만 알았던 바울로가 구사일생으로 다시 살아나서 전도를 하기 위해 다시 떠나는 모습을 보았을 때, 뜨거운 감동을 체험했다. 그리고 자신도 바오로의 뒤를 따라 전도에 헌신하기로 작정했다. 바오로는 믿음 안에서 티모테오를 아들로 삼았을 정도로 그에 대한 신뢰는 대단했다.
바오로는 자주 티모테오를 "믿음 안에서 나의 참된 아들", "나의 아들", "나의 동업자이며 형제"라 는 애칭을 즐겨 사용했다. 결국 티모테오는 예수 그리스도와 바오로의 열정적인 제자로 성장했다.
바오로의 눈부신 전교활동 현장에서 티모테오의 신실하고도 은총 넘치는 활동이 큰 도움이 되었다. 티모테오는 사목자로 준비된 인물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경건한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신앙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랐을 것이다. 티모테오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선교활동을 했다.
그래서 바오로가 그가 나이가 어려 남에게 멸시를 당할까봐 걱정을 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바오로는 티모데오를 믿고 전폭적으로 후원했다. 이처럼 제자를 확신을 갖고 믿는 스승을 만났기 때문에 티모테오는 큰 재목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티모테오도 자신을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스승의 기대에 부응하여 충실하게 스승의 말을 따랐다. 티모테오는 이처럼 바탕이 좋은 일꾼이었다. 티모테오는 자신의 처지에서 자족하며 최선을 다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자족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지금의 순간에 만족하는 마음이 아닐까.
사도 바오로는 그 옛날 티모테오에게 그랬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그대로 머물러라, 후퇴하지 마라, 싸워라, 라고 하는 것 같다.
렘브란트(Rembrandt) / 티모테오(Timotheus)와 그의 할머니
[성서의 인물] 티모테오의 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 허영엽 신부(평화신문673 호에서)
“티모테오! 나는 밤낮으로 기도하면서 그대를 기억하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오. 나는 그대가 눈물을 흘리던 일을 기억하고 있기에 그대를 만나기를 기대하고 있소. 그대를 만나게 되면 내 기쁨은 한없이 클 것이오. 그대의 거짓 없는 믿음과 투철한 신앙심은 그대의 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로 부터 전해 받은 것이오.”
믿음의 특성은 다른 이로부터 전해 받는 것이다. 특히 부모의 신앙은 대개 자녀들에게 전승되기 마련이다. 어린 시절의 가르침과 교훈은 일생을 가름하는 중요한 잣대가 되곤 한다. 티모테오 역시 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 에게서 믿음을 배웠다. 로이스와 유니게는 성서에 단 한 번밖에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두 사람은 위대한 사도 바오로에게 강한 인상과 감동을 주었다.
사도 바오로는 아들과 같이 사랑했던 티모테오의 됨됨이와 신앙의 자세가 그의 열심한 가정적인 분위기에서 비롯된 것을 알고 있었다. 티모테오의 가정은 신앙적으로 열심한 가정이었다. 로이스와 유니게, 그리고 티모테오에 이르는 삼대에 걸친 믿음의 고리는 이들을 육신적으로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서로를 일치시키고 있었다. 혈통이 이어지는 곳에 신앙도 함께 했던 것이다.
티모테오의 경우에서처럼 신앙의 인연 역시 한 사람의 영혼에서 다음 세대의 영혼으로 전수되는 경우가 많다. 하느님이 주신 신앙을 대대로 꽃 피워 가는 티모테오의 가정은 신앙인의 가정의 모델이라 할 수 있다.
로이스와 유니게는 다른 열심한 유다인 가정처럼 티모테오를 어린 시절부터 철저하게 교육시켰을 것이다. 티모테오는 일찍부터 히브리 성서와 기도생활에 몰두했다. 어린 시절의 학습과 배움이 일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지침이 되는지는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다. 유니게와 로이스 모녀는 어린 티모테오에게 주님께 헌신하는 삶을 미리 준비시킨 셈이었다.
훗날 이들의 참된 교육은 티모테오를 통하여 큰 결실을 맺었다. 그러나 로이스와 유니게는 티모테오의 결실을 자신들의 공로로 돌리지 않고 티모테오 뒤에서 돕는 것으로 기뻐했다. 이들은 겸손하고 참된 성품을 가진 신앙인이었다. 오늘날에도 훌륭한 사목자 뒤에는 훌륭한 부모님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분들은 결코 자신을 드러내지 않지만 뒤에서 기도와 희생으로 사목자의 큰 용기와 힘이 되어준다.
유니게와 로이스가 티모테오에게 사랑의 마음을 심어주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가르친 사도 바오로의 가르침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있었다. 이처럼 기초가 있는 교육이 중요하다.
티모테오에게도 사랑의 체험이 훗날 사람을 사랑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실제로 어린 시절 부모의 사랑을 잘 체험하지 못하면 이웃 사랑과 하느님의 사랑의 올바른 개념을 갖기 어렵다고 한다.
사도행전에서 보면 티모테오와 사도 바오로가 겪은 복음 전도의 고난과 육체적 고생은 그 중요한 동기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비롯됨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자녀교육 문제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오늘날 부모가 자녀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가정 안에서 사랑을 체험하게 하는 것이다. 자녀들의 잘못을 응석으로 받아주는 부모의 태도는 그들을 약화시키고 결국 자녀의 삶에 해를 끼치게 된다.
진실한 사랑은 그 사랑하는 자를 성숙시키며 자녀가 바르게 성장하도록 자유를 베푸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때로는 부모 자신이 아픔과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정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또한 모든 신자의 가정은 믿음을 계승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
순수한 믿음은 부모가 자녀에게 남겨주는 가장 위대한 유산이다. 왜냐하면 험난한 세상 안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믿음은 부모가 자녀에게 강요한다고 해서 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믿음은 부모 자식의 관계일지라도 인간적인 힘으로만 전해질 수가 없다.
그러므로 가정이 믿음으로 하나가 되고 한 가족이 믿음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은 하느님의 은총이다. 부모는 하느님께서 자녀들을 자신에게 맡겨주셨다는 사명감을 지녀야 한다. 그러나 자녀들의 성장을 가능케 하시는 분은 분명히 하느님이심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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