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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신 앙 관 련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시복

by 파스칼바이런 2011. 5. 12.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시복

 

"교황이여, 영원하라"

선종 6년만에 경사 … 87개국 300만 명 참가

발행일 : 2011-05-08 [제2745호, 1면]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십시오."

 

전 세계인의 평화와 행복을 기원하고 떠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복자품에 올랐다.

선종한 지 6년1개월(2005년 4월 2일 선종)만이며, 교황으로서 11번째 복자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1일 오전 10시 바티칸 베드로광장에서 87개국 300여만 명의 군중이 함께한 가운데 시복식을 열고, 요한 바오로 2세를 복자로 선포했다.

선포와 함께 성베드로대성당 외벽에 걸린 요한 바오로 2세의 사진 위 휘장이 걷히자, 그의 고향인 폴란드를 비롯한 다양한 나라에서 온 참석자들은 환호하며 '비바, 빠빠(교황이여, 영원하라)'를 외쳤다.

 

군중들은 시복 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약력이 소개될 때도 로마교구장으로 임명되고, 젊은이를 매우 사랑했다는 부분에서 큰 박수와 탄성을 보냈었다.

이어 이번 시복의 근거가 된 기적의 주인공, 마리 시몬 피에르 수녀가 요한 바오로 2세의 혈액을 제대에 봉헌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강론을 통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복자로 시복됐다"고 다시 한 번 강조하며 "1982년부터 신앙교리성 장관을 지내며 그와 함께 일할 수 있었던 것을 진심으로 하느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교황은 시복식 후 성베드로대성당에 놓인 요한 바오로 2세의 관 앞에 무릎을 꿇고 한참동안 기도하며 입을 맞췄다.

 

바티칸은 이날 시복식을 위해 4월 30일부터 시내 차량통제에 돌입했으며, 고대 로마시대 원형경기장 유적인 치르코 마시모에서 전야행사를 열고 축제의 장을 마련했다.

오후 8시부터 로마교구 총대리 아고스티노 발리니 추기경의 주례로 진행된 행사에는 25만 명의 군중들이 참석했으며, 교황의 개인비서였던 스타니슬라프 드지비츠 추기경, 기적을 받은 마리 피에르 수녀 등 인연이 깊은 이들이 출연, 빛의 신비를 봉헌하며 그를 회고했다.

 

스타니슬라프 드지비츠 추기경은 요한 바오로 2세를 '기도하는 교황'이라며 '이제는 성인으로(SANTO SUBITO)'라는 현수막을 보고 '그의 삶 자체가 성인의 삶'이었다고 전했다.

 

복자품에 오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원래 이름은 카롤 보이티와로 1978년 제264대 교황으로 선출됐으며, 104차례 129개국을 순방해 '행동하는 교황' 등 수많은 애칭을 얻었다.

특히 1984년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및 103위 순교자 시성식과 1989년 서울세계성체대회에 참석해 한국 교회에 대한 사랑을 보여준 바 있다.

 

한편 이명박 대통령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시복식을 맞아 교황 베네딕토 16세 앞으로 서한을 보내 "동서 냉전 타파 및 세계 평화정착에 기여한 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을 축하한다"는 뜻을 전했다.

 

 

  ▲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시복식 후 요한 바오로 2세 관 앞에서 기도를 바치고 있다.

 

로마(이탈리아) 오혜민 기자 (oh0311@catimes.kr)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시복] 상보

 

전세계 함께한 '기적의 축제'

발행일 : 2011-05-08 [제2745호, 11면]

 

 

3시간여의 시복식은 매순간이 '기적'이었다.

 

바티칸 성베드로광장에 모인 87개국 300여만 명의 참석자들은 휘장이 올라가며 드러난 요한 바오로 2세의 모습에 함께 환호했고,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강론 후에는 함께 침묵하며 묵상에 잠겼다.

 

전 세계가 '빠빠(교황)'의 복자됨을 축하했다.

2005년 그의 선종 이후 그를 그리워하던 바티칸은 지금 '축제'다.

 

 

▧ 마음의 촛불 하나

 

2005년 5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선종 당시 신자와 비신자의 구분 없이 눈물을 흘리며 묵주기도를 봉헌하던 모습 그대로, 참석자들은 시복식 전날인 4월 30일부터 바티칸을 메웠다. 이날 오후 8시 고대 로마시대 원형경기장 치르코 마시모(Circo massimo)에서 전야미사를 봉헌한 이들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지정한 '빛의 신비'를 묵상하며 그를 회상했다.

 

산타체칠리아 합창단의 연주와 함께 어우러진 묵주기도는 이탈리아어를 비롯한 6개 국어로 진행됐으며, 전 세계를 사목 방문한 교황의 모습을 영상으로 기억했다.

시복의 근거가 된 마리 시몬 피에르(Marie-Simon-Pierre, 가톨릭 모성의 작은 수녀회) 프랑스 수녀의 기적체험도 함께 나눴다.

 

피에르 수녀는 "여기 있는 모든 이들과 청소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여러분들을 바라보고 행복해하실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파킨슨씨병이 진행되면서 자신의 이름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힘들었다"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전구를 청한 후 제 몸의 무엇인가 변화했음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생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강조한 부분도 신자들의 기도로 봉헌됐다.

교황이 사랑했던 전 세계 젊은이들과 각자의 가족, 모든 이들의 복음화, 평화와 희망, 교회를 위해 참석자들은 촛불을 손에 들고 온마음으로 기도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마침기도 영상으로 기도를 마친 그들은 '비바, 빠빠(교황이여, 영원하라)'를 외치며 바티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바티칸에 도착한 신자들은 요한 바오로 2세를 회상하고 노래를 부르며 시복 전날 밤을 지새웠다.

 

▧ 시성을 향해

 

1일 오전 10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식이 거행됐다.

새벽부터 성베드로광장은 물론 바티칸 길목이 각 나라에서 온 신자들로 가득 찼다.

이탈리아와 교황의 고향 폴란드, 그리스, 포르투갈, 레바논, 브라질, 필리핀, 아르헨티나, 캐나다, 미국, 멕시코, 프랑스 등 전 세계에서 모인 이들은 저마다의 국기를 흔들며 '비바, 빠빠'를 연호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을 선언합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시복 선언과 함께 성베드로성당 외벽에 있던 요한 바오로 2세의 사진 위 휘장이 걷히자 참석자들은 모자를 벗어 흔들며 큰 소리로 환호했다.

이어 마리 시몬 피에르 수녀가 요한 바오로 2세의 혈액과 유해를 봉헌했다. 제단에 봉헌된 혈액은 요한 바오로 2세가 생전 자가수혈에 대비해 채혈된 것으로 냉동상태로 보관 중이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이날 미사강론을 통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을 재천명하고 "오늘은 요한 바오로 2세가 시복된 부활 제2주일 자비주일"이며 "이날이 선택된 이유는 하느님의 섭리로 그가 이 축제의 전날 선종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오늘은 5월을 시작하는 성모성월이자 노동자의 성인 요셉을 기억하는 날"이라며 "이러한 모든 요소들이 우리의 순례 여정에 큰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그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함께 일할 수 있었던 것을 하느님께 감사드린다"면서 "1982년부터 23년 동안 신앙교리성 장관을 지내며 그의 곁에서 그를 존경해왔다"고 덧붙였다.

 

교황은 시복식을 마친 후 사제단과 함께 성베드로성당에 놓인 요한 바오로 2세의 관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시복일지

 

▲ 4월 2일 자비주일 전야 : 선종

 

선종 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에 대한 기존 시복 규정(통상적으로 시복조사가 시작되기 전에는 5년 간의 유예기간이 필요하다) 면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을 잘 아는 120여 명을 대상으로 인터뷰 실시

 

▲ 2005년 6월 : 프랑스 출신 마리 시몬 피에르 수녀가 2001년 40세의 나이로 판정받은 불치병 파킨슨씨병 치유(당시 회원들은 한층 심해진 수녀의 병 치유를 위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전구를 기도함)

 

▲ 2007년 4월 : 교황 선종 2주기 맞아 시복 시작 단계의 조사가 마무리 됐음을 발표, 관련 문헌 교황청 시성성에 전달

 

▲ 2008년 11월 : 시성성 조사팀 포시티오(2000쪽 분량의 성덕에 관한 의견서, positio) 검토 시작

 

▲ 2009년 말 : 시복시성의 지속적 추진 투표로 결정

 

▲ 2009년 12월 :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요한 바오로 2세의 영웅적 덕행(Heroic virtues) 선언, 가경자(Venerable, 可敬者)로 선포하는 칙령 발표

 

▲ 2010년 :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전구를 통해 불치병이 치유됐다는 보고에 대한 심사, 과학적이고 의학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이 없다는 결론.

 

▲ 2011년 1월 14일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전구 통한 치유의 기적 승인 칙령 반포(마리 시몬 피에르 수녀의 파킨슨씨병 치유)

 

▲ 2011년 5월 1일 자비주일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시복, 선종 6년 만에 이뤄지는 교회 역사상 가장 빠른 기간의 시복

 

 ▲ 바티칸 성베드로광장에 모인 87개국 300여만 명의 참석자들.

 

로마(이탈리아) 오혜민 기자 (oh0311@catimes.kr)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시복]

인터뷰 / 교황청 사회홍보평의회 의장 폴리 대주교

 

"인간적 소통 보여주신 위대한 분"

요한 바오로 2세는 '커뮤니케이션의 스승'

믿음·희망·사랑 지니도록 늘 동행해 줄 것

매체 종사자, 진리·가치 수호 위해 힘써야

발행일 : 2011-05-08 [제2745호, 15면]

 

 

▲ 존 P. 폴리 대주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 행사를 전 세계에 중계하는 책임을 지고 있는 입장에서 이렇게 많은 취재진들이 참여 의사를 보인 것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만큼 생전 그분의 인격과 가르침이 인류 전체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피부로 체험할 수 있는 것 같아 매우 기쁩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식을 기해 본지와 만남을 가진 교황청 사회홍보평의회 의장 존 P. 폴리 대주교.

 

폴리 대주교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의 인연은 남다른 것으로 알려진다.

폴리 대주교는 1984년 미국 필라델피아대교구 교구신문 편집장으로 있던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사회 홍보평의회 의장에 임명됐으며 주교품을 받았다.

그 후로 27년 동안 폴리 대주교는 교황청 사회홍보평의회의 수장 자리를 계속 맡아오고 있다.  이날 인터뷰는 그런 면에서 가톨릭 매스컴의 역할, 그리고 그와 관련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기억들을 넘나들며 진행됐다.

 

폴리 대주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마지막으로 숙소 창밖에 모습을 보였던 때를 회고하면서 "당시 교황님은 신자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싶어도 목소리가 밖으로 나오지 않는 상태였으나 침묵과 눈길, 얼굴 자체로 의사를 전달하시면서 너무나 풍요롭고 인간적인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고 말했다.

 

"그렇게 그분은 커뮤니케이션의 스승이셨다”고 전한 폴리 대주교는 "복자로 선언되는 사건은 요한 바오로 2세가 사랑을 지니고 앞으로 교회와 계속 동행하시리라는 뜻"이라며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길을 보여주며 함께 동행하고, 또 사람들이 큰 믿음과 희망, 사랑을 지니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동행해 줄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덧붙여 “정말 사람을 보호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그분의 마음을 시복의 순간에 특별히 기억해야 한다"고 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사회 홍보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존중을 우선적으로 마음 안에 가져야함을 강조했다"고 들려준 폴리 대주교는 "그것은 존중 속에서 이뤄진 대화가 매일의 일상 생활 안에서 구체적인 사랑의 증언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신 통신기술들에 둘러싸인 환경 안에서 교회가 어떻게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폴리 대주교는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대해 교회는 기본적으로 긍정적 자세를 취한다"면서 "시복식을 앞두고서 요한 바오로 2세 생애의 기록들이 페이스북을 통해 순간 순간 비춰지고 있는 것이 그러한 사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사회적 가상 공간에서조차 교회가 현존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생애 마지막 메시지를 보면 새로운 홍보 수단에 있어 여러 매체들이 수단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의 문화라는 것이죠."

 

"새로운 매체는 우리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꿔 놓는다"고 덧붙인 폴리 대주교는 “그로 인해 새로운 문명의 근원이 생겨 난다”면서 “이러한 순간들을 교회는 큰 관심으로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폴리 대주교는 “교회 매체들은 나날이 발전해 가는 디지털 문화속에서 진리와 선이라는 가치들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이를 통해 교회 내외의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진리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전했다.

 

"매스컴 종사자들에게 맡겨진 사명은 칭찬해야만 할 사명이고 큰 도전이며 그것은 기꺼이 받아들여서 누릴만한 가치가 있는 도전입니다. 그리고 열정적으로 여러분들이 감당해야할 사명입니다.”

 

가톨릭신문 창간 84주년과 관련 "새로운 홍보 매체들 안에서도 게재된 내용들을 여러 번 읽고 묵상하고 성찰할 수 있는 신문의 장점은 여전하고 그 역할 역시 변함이 없다”고 운을 뗀 폴리 대주교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현대인들에게 친숙한 언어로 우리가 믿는 가치들을 알리는 것”이라며 "웹사이트 개설 등 급변하는 환경 안에서도 끊임없이 신문의 고유한 역할이 무엇일지 찾아 나가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오늘날 홍보 매체에 종사하는 우리들이 갖는 도전은 '삶 속에 지닌 섬세한 가치 진리를 보존하면서, 한편 새로운 테크놀로지 속으로 뛰어 들어가 그 가치를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입니다. 현대 사회 안의 아주 커다란 숙제입니다."

 

■ 폴리 대주교는

 

폴리 대주교는 1935년 펜실베이니아주 다비에서 태어났으며 1962년 5월 필라델피아대교구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사회홍보평의회 의장 재임 기간동안 현대커뮤니케이션 상황과 교회 입장에 대한 중요한 문건들을 다수 발표했으며 교황청이 인터넷을 수용해 적극 활용토록 하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을 받는다.

 

로마(이탈리아)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