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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신 앙 관 련

파킨슨씨병 치유기적 증언한 피에르 수녀

by 파스칼바이런 2011. 6. 11.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시복] 인터뷰

파킨슨씨병 치유기적 증언한 피에르 수녀

 

“끊임없이 교황의 전구 청하길”

발행일 : 2011-05-08 [제2745호, 15면]

 

 ▲ 4월 30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시복 전야행사에서 자신이 체험한 기적에 대해 증언한 마리 피에르 수녀.

 

이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에 결정적 근거가 된 프랑스 마리 피에르 수녀는 4월 30일 시복 전야행사에서 자신이 체험한 기적을 참석자들과 나눴다.

그는 우선 이곳에서 자신이 증언을 하게 된 것이 큰 영광이라고 말했다.

 

“저는 제 치유의 은사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식 과정에 도움이 된다는 것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는 병자였지만 치유됐습니다.

2001년부터 파킨슨씨병으로 고통을 받았던 저는 젊었고, 40살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파킨슨씨병이라는 진단을 받은 피에르 수녀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TV에서 보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선종하자 그는 그의 전구를 청하며 기도에 전념했다.

 

“저는 제 기도 가운데 그와 가까워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항상 놀라웠고, 그의 겸손함과 그의 영성, 마음에 감탄했습니다.”

 

2005년 6월 2일 오후 그는 수녀원의 원장인 마리에 토마스 수녀에게 ‘힘을 잃어가고 있다’고 고백한다. 휠체어 앞에 앉아 수녀의 삶이 약해지지 않기를 기도하고 일생을 위한 삶의 봉헌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마음을 다잡았다.

 

“이러한 과정이 저를 두렵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도 ‘두려워말라’고 말씀하셨잖아요. 모든 공동체 식구들이 저를 기억하고 그에게 전구를 청하며 기도했습니다. 저는 병 때문에 더 이상 글씨를 적을 수 없을 때조차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이름을 적기를 바라고 또 바랐습니다.”

 

피에르 수녀는 자신의 이름을 쓰기도 힘든 상황에서 3번의 시도 끝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이름을 적을 수 있었다. 당시 필체는 겨우 읽을 수 있었으며 오랜 시간의 기도와 함께 묵상에 잠겼다. 수녀들은 9일 기도를 봉헌했다.

 

“2005년 6월 2~3일 저녁 제 병이 좋아졌습니다. 새벽에 일어난 저는 기도하기 위해 제 공동체가 기도하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빛의 신비를 바쳤고, 성체성사에도 참여했습니다. 걷는 동안 병 때문에 마비가 된 제 왼쪽 팔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6월 3일 예수성심대축일, 완치됐다. 왼쪽 손은 더 이상 떨리지 않았고 얼굴 표정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다시 글씨를 적을 수 있었으며, 병에 대한 모든 치료도 중단됐다.

5일 동안 약을 먹지 않아도 됐으며, 공동체는 감사기도를 바쳤다.

이후 2년 간 이들은 기적에 대한 침묵을 지켰다.

 

“제 치유는 모든 기도의 이유가 됐고, 신앙의 기적이 됐습니다.

6년 동안 약을 먹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평상의 삶을 다시 찾아 기쁨의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는 새로 태어났습니다. 성체와 묵주기도도 포기하지 않고 있어요.

우리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전구를 계속 청해야 합니다.”

 

로마(이탈리아) 오혜민 기자 (oh0311@catimes.kr)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시복] 이모저모 1

 

전 세계 한마음으로 “이제는 성인” (Santo Subito)

축제 분위기 이끈 폴란드 신자 열기 단연 압권

입장 못한 이들도 대형 스크린 통해 기쁨 나눠

바티칸 거리에 복자 모습 담은 기념품 넘쳐나

발행일 : 2011-05-08 [제2745호, 12면]

 

 

1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은 전 세계인의 축제였다. 시복식이 열린 바티칸과 로마시내는 물론, 교황의 고향 폴란드에서는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야외스크린을 통해 시복식에 함께했으며, 필리핀과 멕시코 등 여러 나라의 신자들도 한마음으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을 지켜봤다. 바티칸은 시복식이 이뤄진 올해 5월부터 1년 동안을 ‘축제의 해’로 지정하고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을 경축하기로 했다.

 

 ▲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전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복자로 선언함과 동시에 성베드로성당 외벽에는 자애로운 미소를 띤 새 복자의 대형 초상화가 드리워졌다.

 

◎… 시복의 축제 열기가 한창인 바티칸 안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사람들은 폴란드 신자들이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고향 폴란드 신자들은 시복식 전부터 최소 100만 명 이상이 바티칸을 찾을 것으로 예상돼 전 세계인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폴란드 신자들은 국기를 손에 흔들며 요한 바오로 2세의 이름을 연호했고, ‘이제는 성인(SANTO SUBITO)’이라는 현수막을 들고 요한 바오로 2세의 시성을 기원했다. 또 민속의상을 입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하는 등 폴란드인 교황의 시복을 온마음으로 축하했다.

 

 ▲ 시복 전야에 열린 철야기도회에서 순례객들이 ‘이제는 성인(SANTO SUBITO)’이라는 현수막을 들고 기도를 바치고 있다.

 

◎… 로마시내 대형본당들은 성베드로광장에 미처 입장하지 못한 신자들을 위해 초대형 스크린을 설치, 시복 전야미사와 시복식을 생중계했다. 특히 4월 30일 시복 전야미사 후 각 성당은 종을 울려 시복에 대한 기쁨을 나타냈으며, 신자들이 함께 모여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을 바라는 철야기도회를 열었다. 시복 전야미사에 참례했던 신자들은 바티칸까지 행진하며 각 성당을 순례했다. 또 2만5000명이 바티칸을 떠나지 않고 시복식이 열리는 다음날까지 성베드로광장과 산타안젤로성 사이에서 잠을 청하며 교황의 시복을 염원했다.

 

 

 ▲ 성베드로광장에서 거행된 시복식에 미처 입장하지 못한 이들은 대형 스크린을 통해 예식을 지켜봤다.

 

◎… 시복 전야행사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생전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개인비서였던 스타니슬라프 드지비츠 추기경은 “어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무덤을 방문했는데 마치 그가 우리 가운데 다시 돌아온 것 같았다”며 “그는 항상 기도하셨고, 12년 동안 그의 비서로 일하며 느낀 것은 그의 인생 자체가 성인의 삶이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 바티칸 거리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모습을 담은 포스터와 깃발, 다양한 기념품들이 넘쳐났다. 교황의 생전 말씀을 적은 시복식 포스터와 함께 교황상본과 엽서, 묵주, 기념주화, 티셔츠, 찻숟가락, 십자가, 달력 등이 줄을 이었으며 순례자들은 기념품을 사기 위해 상점 앞에 줄을 섰다. 교황의 생전 사목방문 모습을 담은 화보집과 DVD도 판매됐다.

화보집에는 104차례, 129개국을 순방한 다양한 교황의 모습과 함께 1984년과 1988년 당시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모습도 수록돼 있다.

 

 

 ▲ 바티칸 거리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모습이 담긴 다양한 기념품들이 넘쳐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