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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신 앙 관 련

한국 천주교회의 모태 '명례방'

by 파스칼바이런 2011. 8. 5.

한국 천주교회의 모태 '명례방'

그리고 명동 재개발 시행사 '(주)명례방'

[길 위에서 하늘을 보다-5]

 

2011년 07월 14일 (목) 10:15:57 김인보  .

 

“근대 경성 도시 한복판, 전망이 좋은 고지대에 ‘종이 걸려 있는 언덕’이 있었다. 명동성당 신축은 ‘종이 걸려 있는 언덕’이란 의미를 담은 ‘종현(鐘峴)’으로 정해 졌다. 1887년 높은 지대에 건물을 앉힐 수 있을 정도의 언덕을 깎아 놨다. 당시 뮈텔 주교는 1892년 봄 성당을 지을 터에 최초의 돌을 놓았다. 코스트 부주교는 뮈텔 주교의 명령에 의해 성당건축을 할 수 있었다. 코스트 신부가 선종한 2년 후인 1898년 5월 29일(성령강림대축일) 빅토르 루이 프와넬 신부에 의해 준공됐다. 이광수는 1917년 소설 <무정>에서 ‘종현 천주교당 뾰족탑의 유리창이 석양을 반사하여 불길같이 번쩍 거린다’고 했다.”

 

지난 6월 23일 오후 2시, 사단법인 도코모모코리아(한국근대건축보존회, 회장 김종헌) 주최로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명동성당 개발 계획 ‘관광특구인가, 성지인가’ 특별토론회에서 ‘코스트 신부와 명동성당’을 발제한 김정동 목원대 건축학부 교수가 근대 명동성당의 풍경을 묘사한 내용이다.

 

이 아름다운 풍경의 주인공인 명동성당의 모체가 ‘명례방’(明禮坊)이라는 것을 모르는 가톨릭 신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설령 몰랐다 하더라도 ‘명례방’이라는 이름은 들어 봤을 것이다. ‘명례방’은 조선초기부터 있었던 행정조직으로서, 한성부 남부 11방 가운데 하나다. 현재의 행정구역으로는 남대문로1,2가 을지로2가, 명동1, 2가, 충무로1, 2가, 회현동2, 3가, 장교동, 저동1가 각 일부와 남산동1?2?3 등이 여기에 속한다.

 

신앙 공동체인 명례방의 출발에는 김범우(토마스)의 역할이 매우 컸다. 중인출신으로 역관이었던 김범우는 한국 천주교회 첫 순교자다. 1784년 봄, 이승훈(베드로)이 베이징에서 세례를 받고 돌아와 이벽, 정약전 · 정약용 형제, 권일신 등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원래 이벽(세례자 요한)과 면식이 있어 그의 집에 왕래하던 김범우는 이벽의 권유로 1784년 가을에 세례를 받고 입교한 후, 자신의 집을 신앙 집회의 장소로 제공하였다. 당시 김범우의 집은 명례방 장악원(掌樂院) 앞에 있었는데, 현재 행정구역으로는 명동1가에 해당한다. 장악원은 조선시대 궁중에서 연주되는 음악과 무용에 관한 모든 일을 맡아 보던 관청으로써, 드라마 ‘동이’를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진바 있다.

 

1784년 겨울부터 이 명례방 공동체는 이벽의 주도하에 한국 최초의 정기적인 신앙 집회인 "취회(聚會)"를 개최했다. 이 “취회”를 통해서 양근, 마재, 내포, 호남 등지의 신앙 공동체들과 잦은 교류를 갖게 되었고, 각 공동체가 올바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의견을 교환하였다. 이후 이러한 신앙 집회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한국 최초의 정기집회인 명례방 공동체는 명실 공히 한국 천주교회가 공식적인 출발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교회사적으로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

 

   

▲ 지난 7월 8일 오후 3시 명동성당 들머리에서는 명동재개발구역 세입자대책위원회 발족식이 열렸다. 지난 6월 14일부터 철거에 맞서 명동 3구역 ‘카페 마리’를 중심으로 농성을 이어온 세입자들은 앞으로 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투쟁을 벌일 예정이다.(사진/정현진 기자)

 

그런데, 요즘 명례방이 문제다. 신앙공동체 명례방이 아니라, 명동 재개발 시행사 (주)명례방이 문제다. 총 5개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는 명동 환경정비사업구역에서 이미 재개발이 끝난 1구역과 단일 빌딩으로 구성된 5구역을 제외한 2,3,4구역 가운데, 현재 3구역이 재개발 진행 중이고, 2구역과 4구역도 역시 재개발이 계획되어 있다. 1구역과 3구역, 그리고 5구역의 재개발 시행사는 명동도시환경정비사업(주)이 맡고 있고, 2구역과 4구역은 (주)명례방이 시행사로 선정된 상태이다. 그리고 시공사는 대우건설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http://dart.fss.or.kr)에 공개된 2009년과 2010년 회계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명동도시환경정비사업(주)는 (주)국민은행 49%, (주)대우건설 44%, 중소기업은행 6%, (주)명례방 0.8%, 그리고 엠앤디인베스트먼두(주)가 0.2%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주주로 등재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명동 재개발 시공사인 (주)대우건설, 그리고 시행사인 (주)명례방이 명동도시환경정비사업(주)와 한 몸이라는 뜻이다. 시행사와 시공사의 구별만 있을 뿐, 결국 한 회사가 명동 재개발과 관련된 거대한 이권을 독차지한 셈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대법원 인터넷등기소 (www.iros.go.kr)에 따르면, 명동도시환경정비사업(주)의 주주로 등장한 (주)명례방은 법인 등기부 등본상 소재지가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1가 60번지 개양빌딩 703호>로 명동도시환경정비사업(주)와 동일한 주소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즉, (주)명례방은 명동도시환경정비사업(주)의 유령회사인 셈이다. 이 (주)명례방은 그 어디에서도 회사의 자료를 찾을 수 없었다. 하물며, 정부기관에 공시된 감사보고서 자체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다만 2구역 건물을 사들일때 근저당권을 설정한 저축은행 명단과, 투자사 명단에 3구역에서 땅과 건물을 판 건물주들이 만든 유한회사 등이 포함된 문서만 살펴볼 수 있었다.

 

이 두 회사가 동일한 회사라는 증거는 곳곳에서 드러난다. 앞서 언급한대로 명도 3구역 재개발 시행사는 명동도시환경정비사업(주)이다. 현재 지역 상인들과 이전 및 보상문제로 다툼을 벌이고 있는데, 지난 6월 27일자 <한겨레신문>의 보도에 의하면, “2009년부터 제 3구역 상인들 102세대와 보상문제로 협상을 진행해 합의점을 찾아 해결을 봤고, 아직 협상이 안 돼 남아있는 사람이 총 11명이다”면서 “이들은 보상금액보다는 가게를 요구하고 있는데 이 요구들을 들어주면 앞으로 2, 4구역 재개발을 추진하는데 있어서도 안 좋은 선례가 될 수 있을뿐더러 이미 합의하고 떠난 다른 3구역 상인들과의 형평성에도 어긋난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2, 4구역의 재개발은 자신들과 관계없는 일이 아니던가? 동업자로서 염려인가? 아니면 동종업종의 한 회사로서의 걱정인가?

 

이상한 점은 이 뿐만이 아니다. <한겨레신문>은 6월 28일자에서 “6월 21일 철거민 대표들이 시행사인 (주)명례방 대표를 만나 이주 및 보상 문제 등을 논의했으나 별다른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헤어졌다”고 보도하고 있다. 3구역 재개발 시행사인 명동도시환경정비사업(주)가 아닌 2,4구역 재개발 시행사가 3구역 철거민들과 "논의하고 합의점을 찾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봐도 동업자로서의 모습이 투영될 뿐이다

 

명동 재개발로 인해 많은 서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그것도 명례방의 후신인 명동성당 앞 골목길에서 영세규모로 장사를하는 서민들이다. 그들을 내쫒기 위해 시행사 측의 폭력이 난무하고 있지만, 명동성당은 이런 현실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심지어 명례방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재개발 유령회사가 부리는 횡포에 우리 명례방은 침묵하고 있다. 명동성당 문화관 3층의 한켠에도 명례방이 있지 않던가? '명례방'...서민들을 내쫒고, 재벌의 이익을 위한, 폭력과 억압의 대명사가 되는 것인가? 오늘, 신앙공동체 명례방을 생각하면서 떠오른 명동성당의 자화상과 (주)명례방...이리 가슴이 먹먹해 지는 것은 왜 일까?

 

김인보 (金隣保)/ 천주교 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