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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교회음악산책

[음악 속의 하느님] 기~쁨~이 넘쳐 뛸~때

by 파스칼바이런 2011. 10. 23.

[음악 속의 하느님] 기~쁨~이 넘쳐 뛸~때

 

 글: 김건정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성가

 

“가톨릭 성가”에 수록된 수백 곡의 성가 중에서 누구나 애창하는 곡이 따로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329번은 유명한 슈베르트(Franz Schubert, 1797-1828년)의 독일 미사곡 중 첫 곡인데 현 성가집에는 “미사곡 여섯” 중 입당성가(미사 시작)로 분류되어 있는 성가이다.

 

서양에서 미사곡이라고 하면 통상 라틴어로 작곡되고 자비송 - 대영광송으로 이어지는데, 이 미사곡은 ‘자비송(Kyrie)’ 가사 대신에 독일어 창작 가사가 들어간 입당송이다. 슈베르트는 31세로 요절했지만 어려서부터 음악을 배우고 국립신학교에 다닐 만큼 신앙심도 돈독한 환경에서 자라면서 자신의 믿음을 녹여낸 곡이기도 하다.

 

가사는 당시 작사자로 인기가 있던 노이만(Johann. P. Neumann, 1774-1848, 물리학 교수)의 작품인데 “정선 가톨릭 성가”에는 작사자 표기 없이 김수명(국문학자, 1919-1983년) 역시로만 나와 있고 현 “가톨릭 성가”에서는 대폭 개사했는데도 개사자 표시가 없는 아쉬움이 있다.

 

 

정선 가톨릭 성가 1번

 

성가대 지휘자 초보 시절에 음악적 특성도 모르면서 이 곡을 참 많이도 불렀다.

부를수록 맛이 나고 나는 점점 슈베르트의 팬이 되어갔다.

 

현 “가톨릭 성가”가 나오기 전에는 고 이문근 신부님이 편집한 “정선 가톨릭 성가”를 주로 활용했는데, 수록된 곡이 258곡으로 현 성가집 528곡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데다가 이 곡이 맨 앞에 수록되어 있어서 자연히 눈길이 많이 가게 되기도 했다.

 

마치 백화점에 가보면 제일 잘 팔리는 고급 화장품이 1층 요지에 자리 잡고 있어서 눈길이 많이 가게 되듯이….

 

“정선 가톨릭 성가”에는 이 곡이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미사 시작   김수명 역시 Fr. Shubert

 

1. 설움이 북받칠 때 뉘게 하소연하리/ 기쁨이 넘쳐 떨 땐 뉘게 가슴 풀으리

주여 너는 우리게 기쁨의 꽃 뿌리사/ 설은 눈물 씻으니 네게 가리이다.

 

2. 당신이 안 계시면 천지도 캄캄하고/ 세상은 귀양살이 운명에 매일 이 몸

주여 너는 내 길에 빛을 던져주시니/ 명랑한 하늘 아래 웃음 피어나리.

 

위 가사는 이미 50여 년 전 작품이고 원어를 직역한데다 구어체에 애조를 띤 내용이라서 한 많은 한국인 심성에 잘 맞아떨어졌다.

6·25 전쟁으로 가족을 잃고 가난에 지친 백성들이 미사 참례하러 와서 이 성가를 부르며 카타르시스를 느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 가사는 1절에서 설움이 북받칠 때 주님밖에 하소연할 데가 없고, 기뻐도 주님 안에서 푼다는 신앙심이 녹아있다.

2절 역시 주님이 안 계신 곳은 캄캄한 암흑이요, 주님 안에서 빛을 찾고 웃음꽃 피어난다는 신앙심이다.

주님을 부르는 호칭이 지금 문법에는 안 맞고 맞춤법도 안 맞고 표현이 어눌한 듯 하지만 옛 천주가사를 연상하게 하는 작품이다.

 

곡조를 보면 성가에 많이 쓰이는 ‘내림 마장조’로 편곡되어 있고 4성부가 고루 맛을 내도록 쓰인 합창곡이다. 오르간으로 쳐보면 그리 어렵지도 쉽지도 않지만 연주하는 맛이 나는 재미있는 곡이다.

 

그런데 1986년에 새 성가집이 나오면서 가사 구조를 바꾸고 문장도 많이 다듬었다.

 

1. 기쁨이 넘쳐 뛸 때 뉘와 함께 나누리/ 슬픔이 가득할 때 뉘게 하소연하리

영광의 주 우리게 기쁨을 주시오니/ 서러운 눈물 씻고 주님께 나가리.

 

2. 당신이 아니시면 그 누가 빛을 주리/ 인생은 어둠 속에 길 잃고 방황하리

희망의 주 내 삶의 길 인도하시오니/ 나 언제나 주 안에 평화를 누리리.

 

새 가사는 문맥상 깔끔하다. 전체적으로 내용은 같으면서도 옛 가사에 비하여 현대식이다. 옛 가사는 미사 시작(입당) 성가로 허구한 날 설움이 북받치는 미사로 시작하는가 하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대축일 시기나 혼인미사 같은 때 이 성가를 부르려면 어딘가 안 맞는 기분이 들었다.

 

희로애락의 중심에 계신 주님

 

오래 전에 안양 ‘성라자로마을’에 성가대가 봉사하러 갔었다.

나환우들이 사는 마을 작은 성당인데 입당성가로 이 곡을 뽑았다.

그랬더니 어떤 신자가 “이곳 신자들은 안 그래도 맨날 설움에 북받쳐 사는데…

오늘 미사에서도 또 그 성가냐?”고 한다.

귀가 번쩍 띄었다. 그래서 곧바로 입당성가를 바꾼 경험도 있다.

이런 저런 상황을 고려했을까?

 

새 성가집에서는 첫 단어를 ‘설움’에서 ‘기쁨’으로 문장 도치를 했다.

우리 일상생활의 희로애락을 주님 중심으로 꾸려 나아가는 모습을 본다.

 

그럼에도 새 가사는 어딘가 향기가 덜 나는 듯한 느낌이다.

사람의 뇌는 이상해서 무심코 흥얼거리면 옛 가사를 읊조린다. 마치 고향 세 칸 초가집에서 마당에 김장독 묻고 한겨울에 동치미 꺼내 먹던 생활에서, 대도시 아파트로 이사 와 김치냉장고에서 겨울 내내 똑같은 맛의 김치를 먹고 사는 것 같아 때로는 입에 익은 옛 가사가 그리워진다.

 

“설움이 북받칠 때 뉘게 하소연하리/ 기쁨이 넘쳐 떨 땐 뉘게 가슴 풀으리.”

 

김건정 파트리치오 /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성음악분과 위원. 음악 칼럼니스트.

 

[경향잡지, 2011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