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톨릭 관련>/◆ 묵상글 모음

용서만이 우리가 살길

by 파스칼바이런 2011. 12. 4.
용서만이 우리가 살길

용서만이 우리가 살길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마태오 18장 21-35절

 

용서에 대해 강론 중이시던 신부님께서 신자들을 대상으로 질문을 한 가지 던졌습니다.

“지금 이 순간 미워하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으신 분 한번 손 들어보세요!”

적어도 두세 명은 손들겠지, 했었는데, 단 한명도 손드는 신자가 없었습니다.

“옆 사람 눈치 보지 마시고 소신껏 손들어보세요.” 그래도 감감무소식이었습니다.

 

적막감이 흐르던 순간 아주 연로하신 할아버님 한분이 손을 드셨습니다.

너무나 기뻤던 신부님께서 할아버님을 앞으로 모셨습니다.

어르신, 정말 훌륭하십니다. 얼마나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셨으면, 또 얼마나 열심히 용서의 삶을 실천하셨으면 단 한명도 미워하는 사람이 없으십니까?

우리 신자들을 위해서 비결을 좀 말씀해주십시오.”

 

그 순간 할아버님은 역사에 길이 남을 ‘명언’ 한 마디를 던지셨습니다.

“신부님, 훌륭할 것도 없습니다. 보시다시피 제가 세상을 오래 살았습니다.

올해 제 나이가 90입니다. 원래 저도 미운 사람들 엄청 많았는데, 오래 살다보니 그 사람들 다 죽었습니다. 용서를 하려해도 용서할 사람이 있어야지요.”

 

오늘 복음의 주제는 용서입니다. 정말 중요한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정말 어려운 일이 바로 용서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용서가 우리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잘 파악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한번 두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당부하십니다.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말씀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용서만이 살길이니 밥 먹듯이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용서하고, 말고 따질 것이 아니라 무조건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용서할까 말까 고민할 것이 아니라 늘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할 때 우리의 신심은 즉시 피폐해지고 시달리기 시작합니다.

용서하지 못할 때 즉시 다가오는 것이 스트레스입니다.

몸에 해로운 독소가 분출되면서 소화기능에 문제가 생깁니다.

숙면도 취하기 어렵습니다. 상습피로에 시달립니다.

하루가 피곤합니다. 결국 갖은 질병에 시달리고 그 끝은 결국 죽음입니다.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할 때, 그 순간부터 특별한 한 가지 현상이 우리의 신심을 뒤흔듭니다. 누군가가 내 안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내 삶 안에 끼어들어와 내 삶을 좌지우지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늘 삶이 부자연스럽습니다. 삶이 부담스럽고 피곤합니다.

 

그런 상태에서 제대로 된 신앙생활도 기대하기 힘듭니다.

하느님 체험도 불가능합니다. 결국 용서만이 우리가 살길입니다.

용서만이 참 신앙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비결입니다.

이런 이유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