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톨릭 관련>/◆ 축일 & 성인

축일 6월 11일 성녀 마리아 로사 몰라스이바베 / 1815-1876년

by 파스칼바이런 2012. 9. 11.

축일 6월 11일 성녀 마리아 로사 몰라스이바베

(Mary Rose Molas y Vallve)

Maria Rosa Molas y Vallvé (1815-1876)

religiosa, delle Suore di Nostra Signora della Consolazione

Basilica Vaticana, 11 dicembre 1988

신분: 설립자, 수녀

활동연도: 1815-1876년

같은이름: 돌로리부스, 로싸, 로즈, 메리, 미리암

 

 

성녀 마리아 로사 몰라스이바베(Mary Rose Molas y Vallve)

 

성녀 마리아 로사 몰라스이바베(Maria Rosa Molas y Vallve)는 1815년 3월 24일 에스파냐 북동부의 타라고나(Tarragona) 근처 레우스(Reus) 시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레우스 시에서 작은 상점을 운영하는 매우 경건한 부모 밑에서 성장했다. 그녀가 17살이 되었을 때 어머니가 그 지방에 퍼진 콜레라에 걸려 돌아가셨다. 그녀는 오랫동안 종교적인 성소를 갈망했지만 아버지는 그녀가 집을 떠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아버지 곁에 머물며 가사를 돕다가 26살 때 비로소 병원을 운영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공동체에 입회하였다. 그녀는 종교적인 덕행뿐만 아니라 병들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실질적이고 효율적으로 돌보는 데 있어서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그녀가 에스파냐 토르토나(Tortona)에서 애덕의 집 책임자로 있을 때 정신적인 병을 앓고 있는 이들이 쓰레기처럼 방치되고 있는 현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요양기관에 입원한 300여명의 환자들은 의학적으로 적절하고 적합한 처치를 받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는 위생체계와 환자들을 돌보는 방법을 현대적으로 개선해 나갔고,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요양기관의 질서체계를 확립해 나갔다. 그녀는 질병에 취약한 유아들을 격리 수용하고 의료체계의 표준화와 개선된 간호방식을 만들어 나갔다.

 

성녀 마리아 로사가 책임자로 있는 8년 동안 이 요양기관은 그 시대의 의학적인 요청들을 하나하나씩 개선해 나갔다. 그러던 중 그녀는 자신이 입회한 공동체가 적법한 방식으로 설립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와 12명의 동료 수녀들은 관할권을 지닌 지역 주교의 뜻에 자신들을 맡겼고, 지역 주교는 그녀의 헌신과 탁월한 행정능력 그리고 개인적인 성덕을 보고 1857년 위로의 성모 수녀회(Sisters of Our Lady of Consolation)의 설립을 허락하였다. 이 수녀회의 수녀들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지만, 특별히 가난한 지역을 찾아 성녀 마리아 로사의 자비의 사도직을 실천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다.

 

성녀 마리아 로사는 자신의 일을 환자들을 돌보는 것에만 제한하지 않았다. 그녀는 분쟁 중에 있는 이들의 중재자로도 활약했다. 1843년 레우스 시를 둘러싸고 양측 군대가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을 때 협상을 위해 전선 한가운데를 지나가며 휴전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녀는 1876년 6월 11일 토르토나에서 선종하였다.

 

그녀는 1977년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8년 12월 11일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자비의 사도’로 불리는 그녀는 자신의 직무를 실용적이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수행한 사도로서 평가받고 있다. 그녀는 마리아 로사 돌로리부스 몰라스이바베(Maria Rosa Doloribus Molas y Vallve)로도 불린다.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위로의 성모수녀회 (상)

예수님을 사랑하고 흠숭하며 이웃에게 위로와 공경 실천

  

 

『이 세상 어디라는 것, 또 무엇을 한다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든지, 필요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하느님의 위로를 전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1857년 스페인에서 설립된 「위로의 성모 수녀회」는 창설자 성녀 마리아 로사 몰라스 수녀의 이 정신처럼, 또 그 이름에서 느껴져 나오는 이미지처럼 하느님의 위로가 필요한 곳이라면 어느 곳이라도 달려가 복음을 전하고 사랑을 체험케 한다는 모토를 지니고 있다.

 

이같은 수녀회 영성은 고린토 후서 1장 3~4절 말씀에 근거하고 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찬양받으시옵소서. 그분은 자비로우신 아버지시요 온갖 위로의 하느님으로서 우리의 갖은 환난 가운데서도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그리하여 우리 자신도 하느님으로부터 위로받는 그 위로로, 온 환난을 당하는 이들을 위로할 수 있게 하십니다』.

 

즉 삼위일체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면서 실의에 찬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 성부께로부터 파견되신 예수님을 모든 자비와 위로의 근원이 되는 표양으로 삼고 위로자이신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신비를 계시하여 주시고 그분과 일치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심을 믿으며 주님의 사업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설립 회칙에서도 위로의 성모 수녀회 자매들을 부르시고 모이게 하신 목적이 완성과 위로, 또한 온갖 사랑의 원천이시고 본보기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흠숭하며, 사람들에게 알리고, 사람들이 하느님을 공경하며 사랑하기 위해서임을 천명하고 있다. (설립회칙 1장 1조)

 

창립자 마리아 로사 몰라스 수녀는 1815년 스페인 레우스에서 태어나 16세때 수도회에 입회할 뜻을 표명했으나 아버지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1841년 26세 되던해 그 뜻을 이루어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에서 떨어져나온 한 공동체에 입회했다.

 

이후 토르토사 지역의 고아들과 노인들 그리고 정신 장애인들의 수용 시설이었던 「자비의 집」을 운영하게 된 마리아 로사는 탁월한 운영 능력을 발휘하여 당시「비참의 집」이라 불리웠던 그 시설을 이름 그대로 「자비의 집」으로 만들었다. 이에 시당국은 마리아 로사에게 학교와 시립병원의 책임을 맡게 하였다.

 

위로의 성모 수녀회는 이같은 과정에서 태동했다. 마리아 로사는 자신이 입회한 공동체가 이미 입회 시기전부터 교회와 연결을 맺고 있지 않은 상황임을 깨닫고 교회에 대한 사랑으로 교구 소속 수도회로 새롭게 출발하고자 하였다.

 

1857년 토르토사 교구 참사회 대리 마네로 신부는 이 수녀회의 활동은 이웃에게 위로를 주고 있다는 점에서 「위로의 수녀회」로 이름 붙였고 이후 현재의 「위로의 성모 수녀회」 명칭으로 정착됐다.

 

수녀회는 1888년 교황 레오 13세에 의해 교황청 설립수녀회로 승격됐으며 1901년 최종적으로 회헌을 인준받았다. 마리아 로사는 1977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시복됐고 1988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됐다.

 

[가톨릭신문, 2004년 2월 8일, 이주연 기자]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위로의 성모수녀회 (하)

소외된 이웃에게 사랑 실천 위해 어르신, 가출소년 쉼자리 등 운영

 

 

성녀 마리아 로사 몰라스의 위로의 성모 수녀회 창설은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희의 위로자가 되리라』(이사 51,7.12)하신 주님 약속에 전적으로 의탁,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위로하여라』 (이사 40,1)는 외침에 구체적으로 응답한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통해 신비적 관상과 가장 불우한 사람들을 위한 헌신을 일치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인류의 스승, 사랑의 새로운 문명의 창설자, 그 어느 때보다도 오늘날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위로의 카리스마를 소유한 인물』이라고 칭송을 아끼지 않은 교황 바오로 6세는 그녀를 복자품에 올리면서 『수도회 회원들 뿐 아니라 그리스도와 복음에 충실하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모델로 소개한다』고 밝힌바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시성식을 통해 『성녀는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사람들을 위로하였고, 위로하면서 온갖 위로의 원천이신 그리스도를 전하였다. 이 여인의 삶 자체가 하느님의 자비와 위로를 선포하는 예언자적인 표시』라고 언급했다.

 

창설자의 영성은 수도회 회원들 안에서 또 수녀들의 봉사를 받은 이들 가운데 또 다른 성덕가를 만들어내는 결실을 맺고 있다. 현재 시복 단계에 있는 마리아 데레사 곤살레스 후스토 수녀가 대표적 사례. 그는 창설자를 본받아 깊은 사랑과 겸손, 기도의 모범으로 표양을 남기고 있다.

 

수녀회 한국 진출은 1986년 5월 14일 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 초청으로 이뤄졌다. 이때 마틸다 세기 수녀와 카르멘 로스 수녀가 입국했고 마리아니스트 수녀회 본원에 임시로 거주하며 한국 교회와 인연을 맺었다.

 

1988년 스페인으로부터 두명의 수녀가 더 입국하면서 현 본원 소재지인 서울 성북구 성북1동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이를 계기로 보다 본격적인 활동이 시도되었다. 이후 1999년에는 경기도 화성군 봉담읍 왕림리에 수련소를 마련했다.

 

이들 사도직은 카리스마와 영성을 바탕으로 갖가지 불행과 궁핍을 겪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위로를 전하고 이를 세상에 현존시키는 것에 기본을 둔다. 그런면에서 시대와 지역이 필요로 하는 것이면 그 어떤 것이라도 수도회가 해야 할 일로 받아들인다는 입장이다.

 

위로의 성모 수녀회는 현재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 15개국에서 활동중인데 한국 경우 진출 초기부터 자체 양성 작업과 함께 빈민식당 공부방 등에서 봉사하며 가난한 이들과의 만남을 시작했다. 또 성북동 본원에서는 기도 모임을 열고 특별히 젊은이들이 하느님과의 만남의 장을 갖도록 배려했다.

 

현재 세 공동체에서 각각 다른 사도직을 펼치며 위로의 카리스마를 보이고 있는 수녀회는 1999년 성북동 본원에 가출 소녀들을 위한 일시보호시설인 『우리들 쉼자리』를 개소, 가출 소녀들의 보금자리를 마련했으며 2002년에는 서울교구 김병도 몬시뇰 요청으로 쌍문동에 어르신들을 위한 공동체 「위로의 성모의 집」을 열었다. 또 수원 교구 왕림에 위치한 수련소는 피정의 집 운영을 통해 수도회 카리스마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영혼들이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로 역할을 다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04년 2월 15일, 이주연 기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함께 읽는 성인전]

성녀 마리아 로사 돌로리부스 몰라스이바베

- 정신적인 질환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돌보는 분야를 개척한 여인

번역 송영웅(바오로) · 봉명학원 재단이사

 

 

 

성녀 마리아 로사 돌로리부스 몰라스이바베(Maria Rosa Doloribus Molas y Vallve, 1815-1876)는 1815년 3월 24일 스페인의 타라고나(Tarragona) 근처에 있는 레우스(Reus) 시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는 그곳에서 작은 상점을 운영하면서 자녀들을 매우 경건한 신앙심으로 양육하였다. 마리아 로사는 오랫동안 수도원에 들어가는 것을 꿈꾸어 왔다. 그러나 17살이 되었을 때 그 지방에 콜레라가 퍼지면서 어머니가 그 병으로 돌아가시자 아버지는 여러 해 동안 딸이 집을 떠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마리아 로사는 집에서 가사를 돕다가 26살 때 마침내 병원과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애덕의 집을 운영하는 공동체에 입회하였다. 마리아 로사는 수도자로서 탁월한 덕행으로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병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일에서도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그리고 질서를 지키면서 그런 일을 해나갈 수 있는지에 대하여 놀라운 재능을 보였다. 마리아 로사는 스페인의 토르토나(Tortona)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병자들을 돌보는 ‘자비의 집’의 최고 책임자가 되었을 때 정신적인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쓰레기 하치장 같은 곳에 방치되어 있는 것을 보고 크게 충격을 받았다. 요양기관에 입원한 약 300명의 환자들은 각기 자기 병세에 맞는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어떤 경우에는 오히려 하지 말아야 할 치료를 하여 환자들에게 더 큰 어려움을 주기도 하였다. 그런 환자들을 만나면서 그녀는 일생 중 가장 큰 시련기에 직면하였다. 이에 이러한 상황을 쇄신하기 위하여 병원 전체의 위생과 환자들을 돌보는 방법을 현대적이고 혁신적인 방식으로 개선하였고 진료과정의 합리적인 방안과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질서체계를 요양기관 내에 확립해 나갔다. 그리고 취약한 영아들을 따로 격리 수용하고 진료방식의 표준화와 환자들을 돌보는 방안의 개선책을 꾸준히 강구하였다.

 

마리아 로사가 토르토사에 있는 요양기관을 책임 맡고 있던 8년 동안 이 요양기관은 그 시대에 앞선 의료시설을 갖추고 정성을 다하여 환자들을 돌보는 기관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그러나 마리아 로사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이 입회한 공동체가 입회 시기 전부터 교회와의 관계가 끊어져 있는 상황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깊이 고민하고 많은 사람들과 상의한 끝에 마리아 로사와 그녀를 따르는 12명의 수녀들은 자신들의 생각과 앞으로 하려고 하는 행동방식이 하느님 뜻에 맞는 것인지를 그 지역 주교님 판단에 맡겨드리기로 하였다. 주교는 마리아 로사의 진실한 신앙심과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극진한 사랑, 탁월한 행정능력과 뛰어난 성덕에 대한 충분한 자료를 검토하고 1857년 위로의 성모 수녀회(Sisters of Our Lady of Consolation)를 인준하였다.

 

이 수도회 수녀들은 전 세계 어느 곳이든 환자가 있는 곳에 파견되지만 특별히 그들은 매우 빈곤한 지역에 파견되어 환자들과 노약자들을 돌보는 일에 투신하면서 창립자 마리아 로사의 자비의 사업을 통한 사도직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마리아 로사는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는 일에도 충실하였지만 전투가 치열한 곳을 찾아가 양측의 화해를 주선하는 평화의 사도로서도 크게 활약하였다. 한번은 1843년에 레우스 시를 둘러싸고 양측 군대가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을 때 마리아 로사는 양측 군대의 휴전을 끌어내기 위하여 전선 한 가운데를 지나가면서 총성을 멎게 하였다.

 

1977년 바오로 6세가 마리아 로사를 시복하였고 1988년 12월 11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녀를 성인으로 선포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사랑에 온통 마음을 빼앗겨 이웃을 위해 자신을 전적으로 헌신한 이 영성의 일생은 하느님께서 얼마나 자비로우신지 그리고 그분의 위로가 얼마나 큰지를 온 세상에 선포하는 예언자적인 삶이었습니다. …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물론이요 지금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마리아 로사가 일생을 바쳐 추구한 선한 삶은 그 자체가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였습니다. … 마리아 로사 총장 수녀야말로 하느님의 자비를 세상에 선포하도록 그분께서 친히 선택하신 특별한 분들 가운데 한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을 화해시키기 위하여 그리고 세상이 영성적인 면에서나 물질적인 면에서 발전되어 가도록 하기 위해 그분은 이 수녀님을 도구로 쓰셨습니다.”

 

마리아 로사 돌로리부스 몰라스이바베 성녀의 축일은 6월 11일이다.

 

[교회와역사, 2011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