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일 6월 11일 성녀 바울라 프라시네티 (Paula Frassinetti) 신분: 설립자 활동연도: 1809-1882년 같은이름: 빠올라, 빠울라, 파올라, 파울라, 프라씨네티
성녀 바울라 프라시네티(Paula Frassinetti)
성녀 바울라 프라시네티는 이탈리아 제노바(Genova)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신심 깊은 가정에서 자라났다. 아홉 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슬픔 중에서도 가사를 돌보며 아버지와 사제가 된 네 오빠들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스무 살이 되었을 때 기관지 관련 병이 심해져 오빠가 주임사제로 있던 시골 마을 귄토(Quinto) 본당으로 갔다. 여기서 건강을 회복하고 식복사로 일하던 그녀는 가난한 어린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연이어 수도성소를 강하게 느끼게 되었다. 그녀 주위에는 뜻을 같이 하는 자매들이 많이 모였으므로 공동체를 세우려고 하였으나 너무나 많은 장애물들이 나타났다. 그녀는 기도로써 밤을 지새울 때가 많았는데 결국은 성공하였다.
1834년 성녀 바울라 프라시네티는 제노바에서 가난한 아동들의 교육에 헌신하는 '성 도로테아 수녀회'(Congregation St. Dorothea)를 설립하였다. 이 수녀회는 곧 이탈리아 전역뿐만 아니라 포르투갈과 브라질까지 진출하여 활동 영역을 넓혀갔다. 1863년에 성좌로부터 승인을 받은 이 수녀회는 그리스도교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수도단체이다. 특히 설립자인 성녀 바울라 프라시네티는 사람들의 내면을 읽고 이해하는 탁월한 능력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는 몇 차례의 뇌출혈로 인해 고생하다가 1882년 6월 11일 로마(Roma)에서 선종하였고, 시신은 로마의 성 도로테아 수녀회 모원에 있는 성 오노프리오(Onofrio) 성당에 안치되었다. 그녀는 1930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984년 3월 11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파올라 프라시네티(Paola Frassinetti)로도 불리는 성녀 바울라 프라시네티는 병든 이들의 수호성녀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함께 읽는 성인전] 성녀 바울라 프라시네티 - 성 도로테아 수녀회 설립자 번역 송영웅(바오로) · 봉명학원 재단이사
바울라 프라시네티(Paula Frassinetti, 1809-1882)는 1809년 3월 3일 이탈리아의 제노바에서 요한(Giovanni) 프라시네티와 안젤라(Angela) 프라시네티 사이에서 다섯 남매 중 외동딸로 태어났다(바울라의 남자 형제 네 명은 모두 사제가 되었다). 바울라는 신앙심이 깊은 가정에서 행복하게 자라났다. 그러나 그녀가 아홉 살이 되었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는 깊은 슬픔 속에서 고통스러운 나날을 지내며 참된 위로를 찾았는데 복되신 어머니로부터 진정한 위안을 받게 되었고 마침내 성모 마리아께 자신을 봉헌하였다.
한 친척 아주머니가 와서 바울라와 그의 형제들을 키워 주었지만 그 아주머니도 온 지 3년이 채 안 되어 돌아가셨다. 그때부터 그가 집안일을 전담하였으며 집에서 아버지와 오빠들로부터 성실한 가르침을 받았다. 바울라는 스무 살이 되었을 때 기관지 관련 병을 앓게 되었는데 증상이 점점 심해지자 그의 오빠가 신부로 사목하던 시골 마을 퀸토(Quinto)로 내려갔다. 제노바 근처 서해안에 위치한 그곳에서 바울라는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고 그 후 그 본당에서 식복사로 일하였다.
식복사로 일하면서 바울라는 자주 그리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었다. 그는 본당 관할 구역 안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 특별히 어린아이들에게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리하여 바울라는 퀸토에 가난한 소녀들을 위한 학교를 설립하고 오빠의 도움을 받아 그들이 장차 세상에 나가 자기 삶을 꾸려나갈 수 있도록 가르쳤는데 특히 영성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교육하였다.
1834년 바울라는 제노바에서 가난한 아동들의 교육에 헌신하는 성 도로테아 수녀회(Congregation St. Dorothea)를 창설하였다. 바울라의 뛰어난 영성생활로 그가 설립한 수녀회에는 많은 지원자들이 모여들었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자선기금 역시 풍부하게 들어왔다. 도로테아 수녀회의 수녀들은 이탈리아를 벗어나 포르투갈로 그리고 브라질로 선교 영역을 넓혀 갔다. 1835년 이탈리아 북부 지역에 콜레라가 창궐하여 많은 환자들이 발생하자 바울라와 수녀회 수녀들은 모든 환자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여 의료 봉사활동을 하였다. 바울라는 1876년 뇌출혈을 일으켜 반신불수가 되기 전까지 열심히 일하였다. 그러다가 1879년에 그리고 1882년에 다시 뇌출혈을 일으켜 큰 고통을 받았다.
1882년 마지막 뇌출혈로 고생하고 있을 때 바울라는 살레시오 수도회 창설자인 돈 보스코(후일 그는 청소년들의 아버지요 스승이라는 칭호를 받은 성인이 된다)의 병문안을 받았다. 돈 보스코는 바울라의 높은 성덕과 그의 선종이 임박하였음을 사람들에게 알렸다.
바울라는 폐렴에 감염되면서 건강이 급속하게 악화되어 1882년 6월 11일 로마에서 선종하였는데 그의 시신은 영원한 도시 로마에 있는 성 도로테아 수녀회의 모원인 성 오노프리오(St. onofrio) 성당에 안치되었다. 1906년 그의 시신이 조금도 부패되지 않은 상태에 있음을 발견하고 사람들은 그의 시신을 은과 수정으로 만든 관(棺)에 다시 모셨다. 그런데 그 아름다운 관은 신앙심 깊은 어느 브라질 사람이 보내준 것이었다.
1930년 교황 비오 11세는 그를 복자품에 올렸고 1984년 3월 11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를 성인품에 올렸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바울라의 시성식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성 바울라 프라시네티는 … 교회 안에서 언제나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구세주 예수님의 구속사업의 결실입니다. 만일 어떤 사업이 참으로 그리스도교적인 것인지를 판별하려 한다면 그 사업이 세상을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십자가 인(印)이 찍혀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고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말해 왔습니다. 그런데 바울라는 누구든지 완덕의 길을 가고자 한다면 주님의 십자가, 금욕과 절제된 생활, 자기를 낮추는 생활 그리고 고통을 회피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덕목들이 바로 신자들을 십자가 위에서 못 박혀 돌아가신 거룩하신 분을 닮게 하여 준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바울라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감동의 대상이었습니다. 십자가는 그에게 강력한 힘을 주는 원천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남에게 알려지지 않은 비밀의 보고(寶庫)인 이 원천(源泉)에서 지칠 주 모르는 활력과 불굴의 용기를 길어 올렸습니다.” 성녀 바울라 프라시네티의 축일은 6월 11일이다.
[교회와역사, 2010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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