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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103위 성인들

성녀 이 가타리나(李 Catherine)

by 파스칼바이런 2012. 10. 1.

성녀 이 가타리나(李 Catherine)

축일 9월 20일

 

 

 

신      분: 과부, 순교자

활동지역: 한국(Korea)

활동연도: 1783-1839년

같은이름: 까따리나, 이 카타리나, 이가타리나, 이카타리나, 카타리나, 캐서린

 

성녀 이 카타리나(Catharina, 또는 가타리나)는 교리에 별로 밝지 못한 신자 부모에게서 태어나 시골에서 살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그녀는 열네 살 때 외교인 조씨에게 시집가야 했다. 이때부터 그녀는 교리를 더 배울 기회도 없었고, 더욱이 계명을 지키지는 못하였으나 마음속에는 항상 하느님을 향하는 열심이 남아 있었다. 그 결과 그녀는 남편을 권면하여 죽을 때에는 그에게 대세를 주어 선종하게 하였다. 그리고 삼남매를 모두 천주님을 사랑하게 하였다.

 

남편이 죽은 후 시댁 식구들은 천주교 믿는 것을 매우 반대하고, 끝내는 엄금했기 때문에 그녀는 자녀들을 데리고 친정집으로 돌아왔다. 이들 자녀들 중에서 맏딸인 조 막달레나(Magdalena)가 제일 열심하였다. 막달레나는 어머니 곁에서 부지런히 경문을 배우고 교리서를 읽으며 교리 설명을 들었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기도를 드리고 신공을 바쳤다. 그렇게 하기를 하루도 빠진 적이 없을 만큼 대단히 열심하였다고 한다.

 

이 카타리나는 딸이 장성하자 어떤 교우에게 시집보내려 하였으나. 딸은 어머니에게 동정을 지킬 원의가 있음을 말하였다. 이 카타리나는 딸을 이해할 만큼 열심하였으나 외교인들이 그것을 이상히 여기고 의심할 것이 두려워 딸로 하여금 서울의 어느 교우 집 하인으로 들어가 살게 하였다.

 

막달레나는 30세가 넘어 집에 돌아왔으나 박해를 피하기 위해 딸과 온 가족이 서울로 이사하여 남의 집에서 살고 있을 때 다시 큰 박해가 일어나 두 모녀는 체포되어 옥에 갇혔다. 3개월 동안 옥중생활을 하면서도 그녀는 오로지 순교의 월계관을 받아쓰리라 다짐하다가, 모진 고문과 주리를 당하고 또 모진 옥중 고통으로 열병에 걸려 1839년 9월 하순에 옥사하였다. 이때 그녀의 나이는 57세였다. 그녀는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성녀 이 가타리나(Catharina, 탁희성 비오 작)

 

성녀 이 가타리나(1783-1839)

 

시골에서 태어나 어려서 부모와 함께 입교한 이 가타리나는 교리에 밝지 못한 부모 때문에 14세 때 조(趙)씨란 성을 가진 외교인과 결혼하여 3남매를 두었다. 가타리나의 권고로 남편은 대세를 받고 사망하였다. 1838년 말 고향에 사사로운 박해가 일어나자 가타리나는 가산을 버리고 자녀들과 함께 상경하여 조 바르바라의 집에서 같이 살았다. 1839년 6월 주인집 세 모녀, 큰딸 조 막달레나와 함께 체포되었다. 포청에서 딸과 함께 문초를 받고 한 차례의 주뢰질을 당한 후 옥에 갇혔으나 옥이 워낙 비좁고 불결하여 체포된 지 3개월 후인 9월 어느 날 57세의 나이로 염병을 얻어 옥사. 순교했다.

 

- 성녀 조 막달레나는 딸

- 성녀 조 막달레나, 성녀 이영덕(李榮德) 막달레나, 성녀 이인덕(李仁德) 마리아와 함께 체포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