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학과 마리아론
가톨릭 전통은 성모 마리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것은 가톨릭교회의 마리아에 대한 전례와, 마리아 관련 축일, 마리아 칭송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마리아는 교회 안에서 특별히 높이 평가되는 몇 안 되는 여성 중에 한 사람이다. 그러나 마리아의 모습에는 가부장적 교회의 여성에 대한 왜곡된 요구와 편견이 내재되어 있으며 이것은 다시 교회의 많은 여성 신자들에게 투사되어 여성들은 마리아에 나타난 순종적이고 겸손하며 그지없이 우아하며 도저히 어머니라고는 느껴질 수 없을 정도로 성적인 표현이 절제된 그런 처녀의 모습이 가장 이상적인 여인상인 양 믿으면서 거기에 쫓아가야만 했다.
이런 여인상을 강조하면서 가부장적인 교회는 여성들을 더욱더 교리적으로 억압하였다. 따라서 교회의 현실에서 여성 해방적인 투쟁을 하는 여성들은 이런 성 차별적 요소들을 그대로 갖고 있는 마리아론은 교회가 아무리 훌륭한 여성의 모델로 마리아를 칭송하고 기린다 해도 더 이상 아무 의미가 없으며 또한 교회의 억압당하는 많은 여성들에게 전혀 해방적인 모델이 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들은 이제 마리아론을 새로 탄생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들은 마리아론의 전통교리들을 비판적으로 재해석함으로써 마리아론에 담겨진 성 차별적인 요소들을 벗겨 내고 본래의 마리아론이 가진 의미를 발굴하여 마리아를 온전한 인간성의 상징 및, 여성 해방적인 모델로서 재창조하려고 한다.
1. 가톨릭의 기본적인 마리아 교의
1) 하느님의 어머니
이 천주의 모친 즉 하느님의 어머니 란 칭호는 4세기에 등장했으며, A.D.431년 에페소 공의회에서 정식 교리로 인정되었다. 이렇게 교리로 인정하는 근거를 공의회 교부들은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용어에 대해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와 속성의 교류가 인정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를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교회에서 말하는 이 하느님의 어머니 칭호가 갖는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가 지닌 신성과 인성의 두 본성의 일치를 보장해 준다는 것이다. 예로 A.D.428년 네스토리우스가 이 칭호에 문제를 제기했으나 하느님의 아들과 동정녀에게서 난 아들이 구별되는 교리를 주장했다는 이유로 정죄를 받았다. 이 하느님의 어머니 칭호는 교회에서 성모마리아를 공경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다. 왜냐하면 성모님은 인간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낳으신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2) 평생 동정녀
이 교리는 초대 교부들이 주장하여 4세기 이후에 널리 퍼지게 된 교리이다. 동정성 교리는 마리아의 동정성을 3단계로 나누어 구별하였는데 이 구별은 7세기 이후에 분명해졌다. 즉 출산 이전의 동정성 출산중의 동정성 출산후의 동정성이 그것이다. 이 교리는 649년 라떼란 공의회에서 강조되었으며 680년에 열린 콘스탄티노플 제 16차 세계 공의회에서도 이 교리를 공식 교리로 선포하였다.
이 교의의 가장 큰 근거로는 성서의 마태오와 루가 복음서의 예수 유년기 사화를 들고 있다. 그렇지만 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이 동정녀 잉태 교리의 근거는 구약성서의 문헌이나, 비 유대교의 문헌을 통해서도 전혀 찾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렇다면 이 교리가 성립된 배경에는 동정성을 중요시하는 교부들의 특별한 의도가 개입되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3) 무염시태
마리아의 무염시태 교리는 근대 이후에 선포된 교리 가운데 하나이다. 인간에게서 태어난 여인 마리아가 죄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라 할지라도 그녀에게까지 원죄가 없음을 인정하는 이 논리는 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초기에 교부들이 무염시태교리, 동정잉태를 주장했던 까닭은 죄의 유전을 인정하고 특히 그 유전은 인간의 정욕을 통해 대대로 이어진다는 생각에서 예수와 그의 모친 마리아에게 이러한 죄의 유전설을 적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리아의 무죄성을 교의로 확정하는 과정에서 유명한 아우구스띠누수와 펠라기우스주의 사이의 하느님의 은총과 죄와 자유의지에 관련된 논쟁이 나타난다.
이 논쟁은 가톨릭에서 마리아의 무죄성을 인정함으로써 하느님의 은총과 인간의 자유의지가 협력할 수 있다는 방향으로 결론지어졌다. 가톨릭교회가 무염시태 교의를 인정했다는 것은 이 교의를 통해 마리아가 원죄에서 면죄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마리아를 타락하지 않은 인간성의 상징으로 받아들였다는 의미가 있다. 마리아를 원죄의 보편성에서 예외로 만들고 자유롭게 하는 것은 그를 인간과는 다른 초월적인 존재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할 때 지니고 있었던 원래의 인간성의 상징으로써 보고 인류가 도달하기를 원하는 종말적인 새로운 인간성으로 보는 것이다.
4) 성모 몽소 승천교의
Anthonis Sallaert / 성모 승천 Anthonis Sallaert, Assumption of the Virgin 1620, Oil on panel, 82 x 81 cm / Private collection
성모 마리아의 몽소승천교의는 가장 최근에 이루어진 교의로 교황 비오12세가 성경과 성전에 의한 확실한 신앙원리를 근거로 이것이 하느님으로부터 계시되어 전해진 교리이며, 신앙적인 이성과 모순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1950년 11월 1일「지극히 자혜로우신 하느님」헌장을 통해 성모승천 교의를 원죄 없이 잉태되신 하느님의 어머니, 평생 동정녀 마리아는 지상생활을 마친 후 그 영혼과 육신을 지닌 채 하늘의 영광으로 영입되셨다는 것을 선포하여 하느님으로부터 계시된 교의임을 선포하였다.
여성 신학자들은 성모 몽소승천교의가 가진 가부장제적인 사고를 비판하는데 첫 번째는 몽소승천이란 용어 자체이며, 둘째는 이 교리의 사상적 배경이 만들어 낸 정신적 여성상에 관한 비판이다.
줄리오 로마노 / 천상모후의 관을 쓰심 Giulio Romano, Coronation of the Virgin (Madonna of Monteluce) 1505-25, Oil on wood, 354 x 232 cm / Pinacoteca, Vatican
2.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마리아론과 현대 가톨릭 마리아론
제 2차 바티칸 공의회가 소집된 배경은 교회가 현대 사회에 적응하고 대처해 나가기 위한 요구에서라 할 수 있다. 사회는 급속한 변화를 일으키는데 교회가 똑같은 모습을 고집한다면 그 교회는 도태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가 사회에 알맞게 변화한다는 시각에서 교회 헌장을 보면 사회의 구조 변화에 따른 여성의 사회적 역할의 변화와 여성의 의식의 발전에는 그다지 호응하지 못했다. 교회 헌장에 나오는 마리아론은 여전히 여성을 전형적인 틀 안에 넣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 헌장은 신랑인 그리스도에 수동적으로 순종하는 신부 관계를 강조하고 있으며, 게다가 여성을 이브-마리아로 이분하는 도식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여성의 역할로는 보조적인 역할만을 인정하고 있다. 마리아론은 교회의 입장에서 볼 때 언제나 그리스도의 어머니로서 늘 그녀의 모성이 기본적인 원리가 되고 있다. 공식 문헌들은 마리아가 교회의 모델이 된다는 의미를 마리아가 가진 능동적인 역할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예수를 낳은 어머니라는 사실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마리아 이해에 비교적 새로운 해석을 하고 있는 문헌으로는 1974년에 나온 교황 바오로 6세의 사도적 권고 마리아 공경이 있다. 또 현대 가톨릭 신학자 바이너르트는 그의 책 마리아-오늘을 위한 마리아론에서 마리아론이 신학적 인간학의 모형이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진정 마리아가 신학적 인간학의 모형이 되고 인간적이 모습으로 살아나려면 그 인간은 남성, 여성의 성적 구별을 초월한 완전한 인간상을 의미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3. 프로테스탄트 신학의 마리아론
프로테스탄트의 근본적 신학은 하느님(남성)과 그리스도(남성)외에 어떤 피조물에게도 중재자의 위치를 허용할 수 없다는 점에서 가톨릭의 마리아론을 거부했다. 그러나 이것은 하느님을 아주 가부장적인 남성 신으로 고정시켜 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이들의 신학에서는 남성 하느님이 모든 것을 성취하고 심판하시며 그분만이 주인이 된다. 그리고 신자는 하느님의 말씀에 복종해야 한다. 이것은 남성과 여성의 복종 관계로 투사되었다. 또한 프로테스탄트는 마리아를 제거함으로써 하느님의 여성적 요소를 제거하는데도 성공하였다고 프로테스탄트 신학자 틸리히는 말한다. 성서에 근거한 본래의 신앙으로 돌아가자는 종교개혁의 슬로건이 하느님을 가부장적인 가장으로 타락시켜 버리는 오류를 범했다.
4. 여성 신학자들의 새로운 마리아론
1) 마리아의 모성
가톨릭교회는 마리아가 예수를 낳은 어머니일 뿐 그녀가 하느님처럼 흠숭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지만 마리아 공경이 끊임없이 지속되는 이유가 무엇인가에 여성 신학자들은 의문을 가졌다. 그들은 이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가톨릭 신자들은 마리아를 통해서 하느님의 여성적인 모습을 기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기존의 신학들은 하느님을 표현함에 있어서 남성 이미지만을 사용하는 오류를 범했다. 그러나 그런 신관에 대해 항상 견제 역할을 하거나 때로는 비판하도록 한 존재가 마리아였다.
모성적이고 온화한 모습 등의 하느님의 여성 원리와 마리아를 연결시켜 이해한 것은 가부장적으로 굳어진 교회의 신관에 커다란 생명력을 줄 수 있는 요소이긴 하지만 또한 오류를 범할 가능성도 갖고 있다. 이 오류는 하느님의 여성적 측면을 반영하는 마리아 전승이 가부장적인 역사 안에서 형성되었다는 사실에 기인하는 것으로 마리아가 갖고 있는 모성이 하느님의 여성적 측면을 반영한다고 할 때 그 모성은 분명 창조적인 특성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반대로 여성들을 억압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부연하자면 모성 자체는 생명력이며 창조적인 힘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이 가부장 제하에서는 여성의 출산과 직결시켜 여성들에게만 모성을 강요하는 왜곡된 이데올로기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고정된 성역할의 하나로서 여성들의 모성을 강조한 교회를 비판하고 마리아의 모성이 가진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면들을 발전시키고 모성의 의미를 생명을 존중하고 미래를 염려하고 걱정해 주며 동료인 인간을 돌보아 주는 사랑의 의미로 확장시켜서 남성도 이런 모성적인 부분을 공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마리아의 모성을 재해석한다면 마리아를 단순히 어머니 역할에 한정짓지 않고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시는 하느님의 능력을 이해하고 실천한 훌륭한 여인으로 그려낼 수 있다.
피에르 미냐르 / 포도송이의 성모 (Pierre Mignard, The Virgin of the Grapes) 1640s, Oil on canvas, 121 x 94 cm / Musee du Louvre, Paris
2) 마리아의 동정성
여성 신학자들은 동정녀 잉태 교리는 영, 육 이원론에 바탕을 둔 여성 혐오주의와 연결되어 발전하였고 여성들을 억압하는 교리로 작용했다고 비판한다. 루터는 그리스도교가 가진 여성 혐오주의를 비판하면서 이 여성 혐오주의가 만들어 낸 여성상 중의 하나로 동정녀 마리아를 보고 있다. 그는 마리아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남성 금욕주의자들의 정신성에 의해 형성되어 언제나 그 정신성으로 존속해 왔고, 남성의 억압된 성적 본능에 대한 환상적 사랑의 대체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다시 그 성적 본능이 이브의 위험스러운 딸들과 실제로 육체적으로 사랑을 나누지 못하게 할 뿐이다.
그러나 마리아의 동정성을 성적인 순결성이란 측면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인간의 내적인 마음가짐으로 해석한다면 우리는 마리아의 동정성으로부터 독립적이며 자율적인 여성들의 상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동정성을 마리아가 가진 하느님께 대한 신앙과도 결부 시킬 수 있는데 이를 통해 마리아는 자신의 신앙을 통해 새로운 인간과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시려는 하느님의 생명력을 인식하고 거기에 예하고 대답할 수 있는 자율성을 지니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동정성을 마리아의 신앙에 연유한 자율성이며 독립성이라고 볼 때 동정 잉태는 하느님의 창조적 행위를 받아들이는 용기의 결단으로 볼 수 있다.
마리아의 동정 잉태로 인해서 가부장제 교회는 여성들에게 이상화된 순결을 강요했으나 마리아의 동정성을 재해석한다면 우리는 마리아가 가진 놀라운 결단성과 의지를 발견할 수 있다.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사실은 마리아의 동정 잉태는 마리아 자신이 새로운 인간성을 창조하시는 하느님의 생명력에 참여할 능력이 있었음을 말해준다는 것이다. 마리아는 자신이 처녀의 몸으로 임신함으로써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당하게 될 멸시와 고립에 굴복하지 않고 하느님의 행위에 참여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마리아의 자율성과 용기에서 여성해방의 힘을 찾을 수 있다.
헥토르 가리도 / 루르드의 성모 마리아(Maria)
3) 마리아의 무죄성
마리아의 무죄성 교리에서 여성해방에 힘을 줄 근거는 마리아가 하느님의 창조 행위에 참여할 것을 결정하는 그녀의 태도에서 찾는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영에 응답하며 그것을 받아들였다. 이것은 정통 신학에서는 마리아를 수동적이며 복종하는 모습으로 이해하는데 주요한 근거가 되었지만, 여성 신학자들은 이 말을 재해석하면서 마리아의 인간성이 가진 전혀 다른 측면을 밝혀낸다. 즉 마리아가 가진 자유로운 영성을 발견하였다. 마리아는 하느님께서 태초에 창조할 때 불어넣어 주신 하느님의 창조적인 힘이 자신의 인간성 속에 담겨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두려워하거나 거절하지 않고 하느님의 창조적 사업을 역사 속에서 행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여기서 마리아의 능동성과 수용성을 찾을 수 있으며 이것은 마리아라는 한 여성이 가진 올바른 인간성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가톨릭교회는 여성의 인간성에 대해 전통적으로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는데 이로써 마리아의 무죄성은 마리아와 모든 여성들을 분리시켜 마리아라는 한 여성을 최고의 유일한 존재로 신비화 하면서 반대로 다른 여성들은 모두 죄를 범한 이브로 몰고 가 성적인 위계질서를 유지해 왔다는 주장이 있다. 이러한 주장은 무죄성의 교리를 재해석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즉 마리아의 무죄성 교리는 마리아를 신적인 존재로 올려놓고 다른 여성들을 성적인 계급 질서 속에 가두어 놓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가진 창조적인 힘에 여성들이 얼마든지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온전한 인간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증거가 된다고 할 수 있다.
5. 마니피캇(magnificat ,마리아 찬미가; 루카 1,46-55)
마리아의 본모습을 찾는 작업을 하는데 여성신 학자들은 귀중한 보물은 발견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마니피캇이다. 이 노래는 마리아가 가지고 있는 예언자적 성격과 해방적 성격을 가장 잘 표현해 준다.
마니피캇은 현존하는 철저히 가난한 자들, 권리를 박탈당한 자들, 소리 없는 자들, 제한된 자들, 억압받는 자들의 편을 드는 노래로 현존하는 지배적인 인간질서가 무너지고 기존의 가치를 모두 뒤집어 놓는 전혀 새로운 세계를 노래한다. 마리아는 해방되어 열려진 그녀의 인격으로 하느님 구원의 의미를 똑바로 알아듣고 받아들일 수 있었으며, 자신이 사랑하는 동료와 이웃 인간들의 아픔과 희망을 노래할 수 있었다.
하느님의 구원이 자신과 같은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가난하고 착취당하던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구원을 통해 성취되기를 간절히 바라던 희망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마니피캇은 분명히 말해 준다. 여성 해방자들은 이 마니피캇을 통해 전통적 마리아 교리들을 재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보프는 우리의 작업은 마리아의 예언자적인 상, 즉 강하며 단호한 여성으로서, 가난한 사람들을 그들이 고통 받는 역사적 사회적 부정의로부터 메시아적으로 해방하는데 투신했던 여성으로 마리아의 상을 발전시키는 것이 우리의 해야 할 작업이라고 했다.
6. 결론
여성들에게 힘이 되고 진정한 모범으로 삼을 수 있는 인간적인 모델로서 구체적으로 마리아라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내놓을 수 있다. 마리아는 역사 안에서 억압받는 인류의 절반, 여성들이 성취하기를 희망하는 종말론적인 인간의 옷을 입고 태어난 것이다.
이로써 재해석된 마리아론은 가부장적인 교회에 해방의 메시지를 던져 줄 수 있으며 아울러 남성 하느님과 동일한 모습으로 많은 여성들을 억누르고 있는 교회의 지도자들 및 사회의 지배 세력을 그들의 권세에서 내치고 보잘 것 없는 이들, 침묵을 강요받은 이들을 높이는 힘을 줄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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