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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교회미술산책

[현대 그리스도교 미술 산책] (15) 돔 로베르트와 ‘노트르담 드 프랑스의 태피스트리’

by 파스칼바이런 2014. 9. 23.

[현대 그리스도교 미술 산책] (15) 돔 로베르트와

‘노트르담 드 프랑스의 태피스트리’

따뜻한 직물의 짜임으로 묘사된 하느님 지혜

발행일 : 2014-09-21 가톨릭신문 [[제2911호, 14면]

 

예술가이자 사제로 하느님 갈망한 작가

성숙과 쇄신 노력 통해 ‘천국 모습’ 완성

주변 동식물 표현 즐긴 ‘자연 위한 찬미가’

 

 

 

한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 로베르트(Dom Robert, 1907~1997, 본명 Guy de Chaunac-Lanzac) 신부는 프랑스 비엔느(Vienne)에서 태어나 푸와티에(Poitier)의 예수회 학교를 다녔고 어린 시절 드로잉에 몰두했다. 이후 파리 국립장식미술학교에서 공부했으며 1930년 작가이자 영화감독이었던 장 콕토(Jean Cocteau, 1889~1963)를 통해 가톨릭 신학자 자크 마리탱(Jacques Maritain, 1882~1973)과 오르가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막심 제이콥(Maxime Jacob, 1906~1977) 신부를 알게 되었다. 이들에게 신학적으로 영향을 받은 이후 그는 베네딕도 수도회에 입회했다. 1937년 사제품을 받았고 오랜 시간 프랑스 남서부 타른(Tarn)주, 두르뉴(Dourgne)에 소재한 엉 칼카(En-Calcat) 베네딕도 수도원에서 수도사제의 길과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았다. 수도원 주변에서 순수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태피스트리의 밑 작업과 데생, 수채화를 통해 작품을 제작했다.

 

또한 프랑스의 대표적인 현대 태피스트리 작가이자 도예가, 화가였던 장 르뤼사(Jean Lurçat, 1892~1966)와 직접 교류하면서 예술적 영향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사인을 ‘Brother Robert’라고 쓰다가 1968년 노트르담 드 프랑스의 태피스트리에서부터 ‘Dom Robert Chaunac(1968년 이후 ‘Dom Robert’)’으로 변경했다.

 

 

▲ 돔 로베르트, <노트르담 드 프랑스의 태피스트리>,

1954, 5.40x4.0m, 런던의 노트르담 드 프랑스 성당.

 

벽걸이·가리개·휘장·실내장식품 등으로 쓰이는 태피스트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특별히 오늘날 현대적인 성당에서 십자고상 대신 태피스트리를 중앙 제대 위에 걸어 두는 것은 드문 경우이다. 런던의 프랑스 대사관이 주문하여 성당에 설치한 이 작품은 로베르트 신부가 도안을 그리고 프랑스 오뷔송(Aubusson) 공방에서 1955년 직조해 완성한 것이다. 작품이 제작되었던 시기에 로베르트 신부는 작가로서의 명성이 부담되어 프랑스를 떠나 영국 벅파스트(Buckfast)의 수도원에 체류(1948년~1957)하면서 영적인 성숙을 도모했다.

 

작품은 직물이 주는 따뜻함과 애띤 소녀의 모습 때문에 보는 이로 하여금 굳었던 마음에 조용한 온기를 느끼게 해준다. 지상의 천국에 속한 이 소녀는 몇 가지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우선 교회의 전통적인 해석에 따라 결혼식 복장의 소녀는 신랑인 그리스도를 갈망해온 신부로서 지상의 교회를 의미하기도 하고 교회가 ‘새로운 신부’로 명명한 마리아를 뜻하기도 한다. 또한 구약에서 ‘하느님이 사랑한 여인, 처녀 이스라엘’로서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보여주는 인물로 볼 수도 있다. 한편으로 태피스트리의 하단에 있는 라틴어(잠언과 지혜서의 말씀)를 통해 볼 때, 이 소녀는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곁에 있었던 성스러운 ‘지혜’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작품은 영국에서 체류하는 동안 로베르트가 예술가이자 사제로서 성숙과 쇄신을 통해 완성한 천국의 모습으로 볼 수 있다.

 

 

▲ 런던의 노트르담 드 프랑스 성당 내부 전경

 

이 태피스트리는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영국 시골과 홀랜드 파크(Holland Park)같은 곳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동물들과 식물들을 보여준다. 흔히들 로베르트 신부의 작품을 ‘자연을 위한 찬미가’라고 평하듯이 자연은 하느님의 손으로부터 나온 영원불멸의 창조물이자 별들의 세계만큼이나 무궁무진하게 표현될 수 있는 그 무엇이었다. 로베르트 신부에게 자연을 표현할 수 있는 두 가지 소명, 즉 예술적이고 종교적인 소명은 우리에게 중세 수도승들의 수고스러움을 연상시킨다. 채색필사본에 삽화를 그리고 필사할 때, 그들이 지닌 섬세한 손 기술이 완전함을 지향하듯 하느님께로 향한 그들의 마음은 천국을 열망했을 것이다.

 

‘만약 태초부터 인간이 하느님 곁에 있었던 지혜만큼이나 지혜로웠다면…’ 때때로 후회를 되풀이 하는 일상에서 우리는 하느님께 끊임없이 지혜를 구한다. 하느님의 지혜가 부재한 이 시대 이 땅에, 태피스트리는 지혜가 충만한 천국을 보여주는 듯하다.

 

※ 태피스트리 : ‘tapestry’는 ‘타피스트리’라고도 하며 다채롭게 염색된 색실로 짜서 제작한 회화 또는 실내장식물을 의미한다.

 

최정선씨는 숙명여자대학교에서 서양미술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숙명여대에 출강 중이며, 부천 소명여자고등학교 역사교사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