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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교회미술산책

[현대 그리스도교미술 산책] (16) 조르주 루오와 ‘교외의 그리스도’

by 파스칼바이런 2014. 10. 9.

[현대 그리스도교미술 산책] (16) 조르주 루오와 ‘교외의 그리스도’

가난한 사람들 곁, 빛으로 함께하시는 하느님

 

 

인간사회 비참함 근본적 인간애로 승화

미술 쇄신에 지대한 공헌, 교황 훈장 받아

 

발행일 : 2014-10-05 [제2913호, 14면]

 

 

▲ 조르주 루오

 

20세기 미술사에서 조르주 루오(Georges Rouault, 1871~1958)는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입체주의(Cubism)와 표현주의(expressionism), 야수주의(Fauvism), 그리고 추상주의(Abstractionism)가 활발히 전개되던 시기를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루오는 어느 유파에도 참여하지 않은 채 파격적인 자신만의 방식을 발전시켜 나갔다. 그는 거칠고 단순화된 형태와 소박하면서도 강렬한 색채, 그리고 형태를 둘러싼 굵고 투박한 테두리를 즐겨 사용했는데, 이는 그의 작품에 강한 인상을 부여하며 거룩함과 신비적 종교성을 담게 한다.

 

매우 신심 깊은 가톨릭 신자였던 조르주 루오는 다양한 주제의 종교화를 많이 남겼다. 로트렉이나 드가처럼 루오 역시 사회의 차가운 단면을 그림에 담았고, 곡예사나 창부와 같은 당시 사회의 아웃사이더들, 그리고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작품에 등장시켰지만, 루오의 독특한 점은 그들을 사랑의 눈으로 대했다는 것이며, 인간사회의 비참함이나 슬픔을 근본적인 인간애로 승화시켰다는 것이다.

 

 

▲ 교외의 그리스도(Le Christ dans la banlieue), 1920~1924, 도쿄 브릿지스톤 미술관.

 

그의 작품에서 보이는 본능적 움직임–거친 형태와 색채는, 모더니즘을 추종하려는 단순한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종교적 성찰을 통한 내면의 깊은 필요성에 의해서 거의 본능적으로 생겨난 것이다. 따라서 루오에게 있어서 회화란 가슴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열렬한 신앙고백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당시 프랑스 교회는 그의 작품에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그 역시 수줍은 성격으로 평생 자신을 내세울 줄도 몰랐지만, 여든의 나이에 접어들었을 때, 그리스도교 미술 쇄신에 있어서 루오의 지대한 공헌을 높이 평가한 교황 비오 12세께서는 교황이 평신도에게 수여하는 최고 훈장인 그레고리오 대교황 기사 훈장을 수여했다.

 

‘교외의 그리스도’(Le Christ dans la banlieue)는 루오가 오랜 시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작품으로, 1920년에 그리기 시작해 1924년에 완성했다. 적막감이 감도는 거리에는 몇 채의 우중충한 집이 늘어서 있는데, 창문에는 모두 불이 꺼져 있어 사람이 아무도 살지 않는 것만 같은 을씨년스런 분위기를 풍긴다. 어두운 밤하늘에 둥그렇게 떠있는 달은 멀리서부터 뻗어 내려온 길을 비추며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화면의 아랫부분에는 따뜻하고 안락한 집에 있어야 할 아이들이 밤거리를 걷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루오가 보여주는 거리 풍경에는 휘황찬란한 빛도 북적대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개발과 부의 축적에서 밀려난 사람들, 그리고 세속적 허영과 헛된 즐거움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 사는 외곽지대의 모습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게 다가간 그리스도의 모습이다. 그리스도는 어둠 한가운데의 빛으로서 사람들 곁을 따라가고 있다.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찾아 사회의 구석진 곳, 변두리로 용기 있게 나가라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을 어쩌면 루오는 이미 한 세기 전에 그림으로 실천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루오는 1930년대 후반부터 많은 풍경화를 그렸다. 스스로 “나는 신비가입니다”라고 고백한 그는, 인상주의의 표피적 아름다움을 벗어난 심오한 종교적 감성을 풍경화에 담았다. 1936년에 제작한 ‘그리스도와 가난한 여인’(Christ et pauvresse)은 ‘교외의 그리스도’에 비해 전체적으로 밝은 색조를 사용하였고, 자유로운 필치와 굵은 선, 충만한 구성 등 새로운 차원의 종교화를 제시한다.

 

왈터 닉이 “루오의 풍경화가 상징하는 진리는 인간이 쾌락과 사치와 행복이 없이는 살 수 있어도, 신비 없이는 결코 살 수 없다는 것이다”라고 올바르게 지적하였듯, 이제 그의 작품에서는 인간 내면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주제가 되며, 보이지 않는 것에 근거하는 영원의 세계가 표출된다.

 

 

조수정씨는 프랑스 파리1대학에서 미술사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