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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124위 순교성지

복자 124위 순교지를 가다 (16) 충남 청양군 정산

by 파스칼바이런 2014. 10. 19.

복자 124위 순교지를 가다 (16) 충남 청양군 정산

 

 

“여보, 당분간 몸을 피하는 것이 낫지 않겠어요?”

 

근처에 사는 김씨가 관아에 천주쟁이들을 고발하겠노라 으름장을 놓고 간 뒤로 아내는 심히 불안해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것은 주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었다. 또 내가 피한다면 나로 인해 입교한 이들 또한 딴생각을 품을 것이 분명했다.

 

며칠 후 아내는 내 뜻에 따라 다른 곳으로 몸을 숨겼고, 머지않아 집으로 포졸들이 들이닥쳐 나를 관아로 끌고 갔다. 그들은 어떻게든 내 입을 통해 다른 교우 이름 알려고 했다. 좀처럼 입을 열지 않자 관원들은 약이 단단히 올랐다. 결국 그들은 쇄장이를 불러 나의 목에 칼을 씌우고 발목에 쇠고랑을 채웠다. 또 두들겨 패고 희롱하며 천주교를 임금의 명을 거스른 사악한 종교라 모욕했다.

 

“천주가 계신 후 만물이 있고 만물이 있음 후 부부가 있고 부부가 있은 후에 군신이 있습니다. 이처럼 천주님은 효와 충신의 근원이십니다. 십계명 중 제4계명 ‘부모에게 효도하라’가 있는데 어찌 불효라 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때는 장터로 끌려나갔다. 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쉴 새 없이 손가락질해댔다. 그 사이로 지나가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들이 쏟아지기도 했다.

 

겨울의 옥살이는 더 혹독했다. 먹은 것 없이 매 맞고 피만 흘려 온몸이 냉랭해졌다. 힘들수록, 고통스러울수록 천주님만 생각했다. 그때였다.

 

“주님께서 당신과 함께 계십니다.”

 

천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가슴이 뜨겁게 벅차올랐다. 내가 피를 흘릴 때, 예수님도 나와 함께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리고 계셨다. 신앙의 기쁨으로 충만한 순간이었다. 관장이 주겠다는 벼슬도 탐나지 않았다.

 

체포된 지 1년 후인 1798년 6월 10일, 포졸들이 사형 집행일이라며 찾아왔다. 천주님이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생각에 기뻤다. 관아 연못에 핀 연꽃이 더없이 아름답게 보였다.

 

얼마나 두들겨 맞았을까. 정신은 점점 혼미해졌지만 마음은 편안했다. 숨이 끊기기 전, 마지막 힘을 다해 그분의 이름을 외쳤다.

 

“하느님 아버지!”

 

▲ 정산일기

 

 

 

「정산일기(定山日記)」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