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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124위 순교성지

복자 124위 순교지를 가다 (17) 부산 수영장대 순교성지

by 파스칼바이런 2014. 10. 29.

복자 124위 순교지를 가다 (17) 부산 수영장대 순교성지

차디찬 장대돌에 손 얹으면 뜨거운 순교신심 밀려오는 곳

 

 

▲ 입구에 서면 수영장대 순교성지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부산시 수영구는 조선 시대 바다를 지키던 수군과 연관이 깊은 곳이다. 조선 시대에는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경상도와 전라도, 충청도에 해군 기지를 설치했는데 그 중 경상좌수영이 현재 수영구에 자리에 있었다.

수영구 주변에는 지금도 수영성, 수영강, 좌수영교 등 수군이 주둔하던 곳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지명이 많다. 수영구 광안동 일대에도 ‘장대골’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장대가 있던 동네라는 뜻이다.

 

장대는 보통 돌로 높이 쌓아 올린 건물로 장수들이 군사 훈련을 지휘하기 위해 쓰던 건물이었지만 이따금 중죄인의 사형을 집행하는 처형 터로도 사용됐다.

 

수영 장대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은 특히 병인박해 때 이정식(요한)ㆍ아들 이월주(프란치스코)ㆍ며느리 박조이(마리아)ㆍ조카 이관복(베드로) 등 일가족과 양재현(마르티노)ㆍ옥소사(발바라)ㆍ이삼근(야고보)ㆍ차창득(프란치스코) 등 8명이 군문효수형으로 치명한 장소다. 이중 이정식과 양재현 두 순교자가 지난 8월 시복됐다.  

 

59세에 세례받은 이정식은 첩을 내보내고 가족 모두를 입교시킬 정도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후에 회장으로 임명된 그는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바로 체포됐다. 갖은 모진 형벌에도 배교하지 않았던 그는 삼종기도를 바친 후 칼을 받고 순교했다. 1868년 여름, 그의 나이 73세였다. 이정식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한 양재현 또한 병인박해 때 체포돼 모진 형벌을 받았다. 하지만 “천지의 큰 부모이신 천주를 배반할 수 없다”며 신앙을 지켰다. 대부 대자 사이인 이들은 같은 날, 같은 칼 아래 순교의 영광을 안았다.

 

죽음 직전까지 서로를 격려했던 두 순교 복자의 신심을 이해하고 새기기 위해 수영장대 순교성지후원회 전상해(토마스) 회장, 이헌구(바오로) 부회장과 함께 성지를 찾았다.

 

 

▲ 부산교구 수영장대 순교성지에는 발굴된 실제 장대돌 5개가 순교자 위패와 함께

모셔져 있다.

 

 

부산시 수영구 광안4동. 이곳은 한때 많은 수군이 머물며 훈련하던 장소였지만 이제는 주택이 늘어선 평범한 동네가 됐다. 그리고 그 평범한 주택 사이에 ‘수영장대 순교성지’ 가 있었다.

 

 

“성지가 아담하네요.”

 

성지에 도착해 전 회장과 이 부회장에게 건넨 첫 마디였다. 입구 앞에 서면 성지 전체가 한눈에 들어올 정도였다. 성지는 535.53㎡(162평) 크기로, 가장자리에는 담벼락 같은 동백나무가 심어져 있다. 커다란 고목 두 그루를 품고 있는 성지는 마치 도심 속 작은 공원을 연상시켰다. 사실 이곳은 밭이 있던 자리였다. 1977년 당시 광안본당 주임 안달원 신부와 전문가들이 이곳에서 장대돌과 기왓조각, 엽전 등을 발굴했고, 이후 1988년 교구가 부지를 매입, 성지로 조성했다.

 

“저 기림비 안에 동그란 모양 8개가 보이죠. 무엇인지 아시겠어요?”

 

전 회장이 ‘수영장대 여덟 순교자 기림비’를 가리키며 물었다. 정답은 ‘혓바닥’이었다. 잔인한 고문과 치욕적인 문초를 받으면서 절대 배교의 뜻을 내뱉지 않았던 수영장대 순교자 8명의 혀를 형상화한 것이었다. 기림비는 크기가 4m쯤 돼 성지에서 가장 눈에 띄었다. 기림비 뒷면에는 수영장대 순교자들이 처형 전 함께 불렀다고 전해지는 노랫말이 조각돼 있었다. 노랫말의 시작은 이러했다. ‘가세 가세 천당으로 가세….’

 

“아마 이 돌들이 복자들의 피가 묻은 돌일지 모릅니다.”

 

이 부회장이 순교자 위패 앞쪽에 놓인 장대돌을 지긋이 바라보며 말했다. 이 돌들은 1977년 당시 8개가 발굴됐지만 5개만 성지에 놓이고 나머지는 오륜대순교자성지로 옮겨졌다. 실제로 돌에는 혈흔이 없었지만 200여 년 전 장대를 떠받치고 있던 돌임은 확실했다. 말 없는 장대돌이 왠지 두 복자가 참수형을 당하던 그 날을 기억하고 있을 것 같았다.

 

“장하다 순교자, 주님의 용사여~”

 

▲ 성지를 찾은 순례객들이 기림비 앞에서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고 있다.  

 

성지에 성가 ‘순교자 찬가’가 울려 퍼졌다. 많은 순례객이 기도를 바치고 있었다. 성지를 찾아와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는 순례객들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았다. 한 순례객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 발등에 손을 얹고 기도했다. 그가 떠나자 유난히 반짝이는 예수님 발등이 보였다. 얼마나 많은 순례객이 찾아와 기도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 부회장은 화분을 가리키면서 “모두 순례자들이 봉헌한 것”이라며 “신자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사랑으로 성지가 꾸며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 회장은 “성지가 크지 않지만 많은 분이 기도하기 참 좋다고 이야기한다”면서 “순례자들이 기도하기 더 좋은 곳으로 조성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ㆍ사진=백슬기 기자 jdarc@pbc.co.kr

 

 

<찾아가는 길>

 

수영장대 순교성지(부산광역시 수영구 광안동 546-4)는 시내 근처에 있어 대중교통을 이용해 찾아가기 쉬운 편이다.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은 부산 지하철 2호선 광안역이다. 2번 출구로 나와 장대로를 따라 약 700m 걸어가면 성지에 도착한다. 또 성지 근처에 있는 수영중학교를 거치는 버스가 많아 오가기 좋다. 성지 관리는 광안본당(주임 박재구 신부)이 하고 있다. 순례 오기 전 본당으로 문의하면 성지후원회의 친절한 성지 해설을 함께 들을 수 있다. 문의: 051-756-33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