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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성인과 성화

아르놀피의 결혼 - 얀 반 에이크

by 파스칼바이런 2015. 10. 13.

 

 

아르놀피의 결혼 - 얀 반 에이크

1434년, 목판에 유채, 818x59.7cm, 내셔널 갤러리

 

 

[말씀이 있는 그림] 둘이 한 몸이 되다

 

젊은 부부가 잘 꾸며진 플랑드르 지방의 한 가정 침실을 배경으로 손을 마주 잡고 혼인서약을 하는 장면이다. 회화 역사상 최초로 전신을 그린 2인 초상화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작품이다. 더욱이 반 에이크(Jan van Eyck, 1395~1441)는 자연주의에 입각한 놀라운 세부 묘사와 빛의 표현 능력을 전체 그림에서 보여주고 있다.

 

남자는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작은 도시 루카 출신으로 브뤼헤에 거주하던 상인 아르놀피 가문의 조반니이고, 여자는 조반니의 아내로 루카의 상인 가문 출신인 조반나 체나미이다. 부부가 입고 있는 화려한 의상으로 보아 상류계급에 속해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체나미의 풍성한 드레스는 간혹 임신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당시 크게 유행했던 드레스를 손으로 잡고 있는 모습이다. 두 사람은 혼인 서약을 위해 서 있다. 조반니는 방의 바깥쪽에 서 있어 남편으로서 전통적으로 ‘바깥세상’을 의미하고, 아내 체나미가 서 있는 안쪽은 ‘가정’을 의미한다. 부부의 마주 잡은 손은 결합과 서약을 의미하고 원 모양의 둥근 형태는 샹들리에의 굽은 형상과 조화를 이룬다.

 

방 여기저기에 정교하게 묘사된 물건들은 이 부부의 관계를 알려주는 그리스도교 상징체계와 결혼으로서의 다산을 의미하는 세속적 이미지를 함축하고 있다. 상징으로 가득한 작품이다. 일곱 갈래 가지 중에서 단 하나의 촛불만 밝힌 샹들리에는 세상의 모든 성사를 주관하는 하느님의 눈을 암시하고, 양초는 다산을 기원하는 결혼을 의미한다. 뒤쪽 거울 양편에 걸린 먼지떨이 솔과 묵주는 당시 가장 인기 있었던 결혼 선물로, ‘ora et labora, 즉 기도하고 일하라.’라는 의미이다. 기도는 서로의 다름을 이겨내는 놀라운 약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침대 틀 위에 용을 밟고 서 있는 인형 조각상은 출산의 수호성인인 성녀 마르가리타이다. 또한 왼쪽 창가 테이블의 오렌지 한 개와 그 아래쪽에 값비싼 외국산 과일들은 주인공이 이탈리아 출신임을 암시하며 동시에 그들의 부를 의미한다. 종교적 측면에서 <아담의 사과>로 의미를 함축하여 원죄 이전의 순수했던 상태를 말한다. 지상 낙원이다. 원죄 이후에 지상에 내려온 인간들이 이른바 하느님의 은총에 의한 성사를 통해 죄 사함을 받아 이전의 순수성으로 돌아갈 가능성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바닥의 두 켤레 신발은 조반니가 방 안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벗어두었던 나막신이다. ‘신발을 벗었다’는 것은 땅과 육체가 직접 만난다는 성스러운 의식의 거행을 뜻한다. 이 둘 사이에 있는 개는 충성을 상징하는 동물로 두 사람 사이에 정절, 육체적 애정, 상대에 대한 애정의 충실성을 의미한다.

 

뒤쪽 벽면의 볼록 거울과 그 위에 새겨진 문구는 이 작품을 푸는 열쇠가 된다. 거울 속에 비친 광경은 뒷모습, 창, 침대, 붉은색과 푸른색 옷을 입은 두 사람, 복도, 복도 끝의 창이다. 그림에 없는 두 사람이 거울 속에 있다. 결혼식의 증인으로서 얀 반 에이크와 그의 조수가 자리한 것이다. 더욱이 볼록 거울에 걸려 있는 위쪽에 얀 반 에이크의 자필 서명이 중세시대 고문서 장식의 고딕체 사인으로 ‘1434년, 얀 반 에이크가 여기에 있었노라’라고 쓰여 있다. 이 그림은 결국 결혼 증명서의 역할을 한다. 화가는 독창적이고 재치 있는 방식으로 그림에 자신의 서명을 집어넣었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 둘이 한 몸이 된다.”(창세 1,27. 2,24)

 

[2015년 10월 4일 윤인복 소화 데레사 교수(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