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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교리 & 영성

최대한 신부의 인물과 영성 이야기 (1) 연재를 시작하며

by 파스칼바이런 2016. 1. 2.

최대한 신부의 인물과 영성 이야기 (1) 연재를 시작하며

삶과 인물에서 영성의 ‘결정적 순간’을 발견한다

발행일 : 가톨릭신문 2016-01-01 [제2976호, 18면]

 

 

영성에 대한 찰나의 포착은

무관심 권태에 빠지지 않고

‘깨어 있는’ 주제 발견하는 힘

 

 

▲ 교회 역사 안에서 뛰어난 영성의 빛을 발한 성인·영성가들. 시대와 문화가 다르다 하더라도 참된 것을 추구하며 살았던 많은 이들이 터뜨렸던 영성의 별빛은 신앙인들에게 자신을 깨어있게 하는 힘을 알려준다.

 

 

▲ 최대환 신부

 

“역사상의 별 같은 순간은 이후 수십 수백 년의 역사를 결정한다.” - 슈테판 츠바이크

“세상에 결정적 순간을 갖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 레츠 추기경

 

 

인물로 영성을 만나는 여정

 

올 한해 인물과 함께하는 영성 이야기를 연재하자는 제안에 응낙한 후에 저의 내면에서 명확하고 구체적인 주제가 형상화되어 나타나기를 주간 내내 기다려 보았습니다. 그러나 ‘인물’과 ‘영성’이라는 각별한 말들이 만나며 빚어내는 풍경은 선명하게 그려보기에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성’중일따름입니다. 다만 이 연재의 여정이 끝나갈 즈음에는, 가능성의 조각에 불과하던 영감들이 장관을 이루는 한 폭의 그림으로 나타나리라는 기대를 가져봅니다.

 

이제 저는 독자분들을 한해 동안 ‘인물을 통해 영성을 만나는 여정’으로 초대합니다. 식견과 내공이 부족한 제가 감히 안내자로 나섭니다만, 사실 저는 이제 비로소 스스로가 영성의 ‘별자리’를 더듬거리며 그리는 일을 시작하였고, 감히 그 미완의 작업현장을 보여주고 나누는 용기를 냈을 따름입니다.

 

우리는 성인전을 읽어가거나 영성사를 공부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처음부터 일체의 흠잡을 곳 없는 영성의 모범답안을 얻어내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인간을 관통하고 간 영성의 빛나는 순간과 그것이 남긴 지울 수 없는 자취를 만나는 것을 다름 아닌 ‘나의 인생’의 ‘각별한 순간’으로 삼고자 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사로잡은 영성의 순간은 결국은 어떤 방식으로든 삶과 인격과 작품을 통해 드러난 한 인물을 만나는 사건이라는 것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한 사람이 성인이었든, 아니면 사목자였든, 신비가였든, 실천가였든, 예술가나 문필가였든, 아니면 세상 속에서 세속의 생업을 가진 사람이었든 상관없습니다. 그가 평화와 온유를 잃지 않았던 이들이든, 아니면 회의와 절망과 분노의 심연을 통과한 사람이든 다를 바 없습니다.

 

한 인물이 자신의 인생과 인격 안에서 영성의 빛나는 순간을 마주했다면 그를 통해 그 빛의 흔적은 우리를 끌어당깁니다. 시대와 문화가 다르다 하더라도 참된 것을 추구하며 살았던 많은 이들이 은은하게 빛낸, 혹은 폭죽처럼 터트렸던 영성의 별빛이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이제 나를 어두운 밤하늘로 놓아둡니다. 그리고 나를 사로잡은, ‘그들이’ 별빛처럼 빛나는 그 순간들로써 나 자신을 밝게 비추어 보려 합니다. 어떤 이들은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내 마음의 밤하늘에 놀라운 빛으로 거듭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가 상극일 것 같은 이들이 우리 앞에서 함께 서로의 광채를 더해주는 광경도 보게 될지 모릅니다. 무엇보다도 서로 고립되어 상관없어 보였던 누군가의 빛나는 순간들이 어느 순간 소실점과도 같은 한 점으로 모여들어가고 있다는 것에 우리는 놀라워하게 될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다름아닌 우리 자신의 영성의 ‘빛나는 순간’이 시작되었다는 전조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별같은 순간과 결정적 순간

 

글의 시작에 소개한 두 개의 인용구들은 ‘인물’과 ‘영성’에 대한 생각의 씨앗이 뿌려진 순간 처음부터 저의 머릿속에 떠올라 영성의 ‘별자리’를 그려보도록 인도한 나침판과도 같은 문장들이었습니다.

 

‘별 같은 순간’이라는 말을 저는 오스트리아의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작품 ‘인간의 별 같은 순간(Sternstunde der Menschheit, 우리말로는 ‘광기와 우연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번역)’의 머리말에서 따왔습니다. ‘별 같은 시간, 혹은 순간’이라는 절묘한 표현을 거의 새로이 창조하고 유명하게 한 사람이 바로 작가 자신입니다. 그는 어떤 예술가도 내내 예술가로 밀도 있게 존재할 수는 없는 일이며 ‘아주 드물고도 짧은 영감의 순간’에 창조는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인류의 역사 역시도 그러하다는 것이지요. 그에 의하면 역사상의, 그리고 아마도 각 개인에 있어서의 별 같은 순간은 각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역사상의 별 같은 순간은 이후 수십 수백 년의 역사를 결정한다. 전 대기권의 전기가 피뢰침 꼭대기로 빨려 들어가듯이,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사건들이 시간의 뾰족한 꼭짓점 하나에 집약되어 실현되는 것이다….

 

앞으로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작용하게 될 중대한 결정이 어느 한 날짜 혹은 어느 한 시각으로 모아지는, 그토록 극적으로 응축된 운명적인 사건이란 개인의 삶에서도 드문 일이고 역사의 흐름에서도 드문 일이다. 여러 시대와 다양한 영역들에서 뽑아낸 몇 개의 별 같은 순간들을 - 이렇게 부르기로 하자. 그러한 순간들이 별처럼 빛나면서 지나가 버린 일들 위에서 변함없이 빛나고 있으니까 말이다. - 나는 여기서 기억해 보고자 한다.”

 

그런데 별들의 시간, 별과 같은 순간이 경이로운 것은 그것이 ‘결정적 순간’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결정적 순간의 포착을 본질로 삼는 것이 사진예술이며, 그러한 사진의 본질을 가장 탁월하게 성취해낸 위대한 사진작가로 꼽히는 사람이 프랑스의 앙리 카르티에 - 브레송입니다. 그는 자신의 사진 에세이 모음인 ‘영혼의 시선’에 실린 ‘결정적 순간’이라는 글에서 “세상에 결정적 순간을 갖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는 렛츠 추기경 말을 제사로 삼고 있습니다. 이 말은 저에게, 한 인물이 분투한 결과인 삶과 인격과 작품 안에서의 빛나는, 또는 작열하는 순간이 얼마나 결정적인 의미를 지니는지를 일깨워줬습니다. 영성이란 그처럼 결정적 순간을 의미하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결정적 순간’을 포착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무관심과 권태에 빠지지 않고 자신을 깨어있게 하는 실존적인 주제를 발견하는 힘을 뜻할 것입니다.

 

카르티에- 브레송은 이렇게 말합니다. “어떻게 주제가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있다. 가장 사적인 세계에 이르기까지 세상만사에는 다 주제가 있는 것이므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민감하고 우리가 느끼는 것에 솔직하기만 하면 충분하다. 요컨대 우리가 감지하는 것과의 관계 위에 자리잡기… 주제는 사실들을 모아 놓는 것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실들 자체는 아무런 흥미도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들 중에서 선택하는 것이다. 진짜 사실들을 그 깊이와 함께 포착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여러 인물들을 관통한 영적인 순간들을 만나려 합니다. 그 만남은 우리에게 스스로의 영성의 결정적 순간이라는 일생일대의 ‘주제’를 발견하고 생생하게 형상화 시키는 여정이 될 것입니다.

 

다음 주에는 첫 번째로 성녀 십자가의 베네딕타 수녀, 곧 에디트 슈타인의 ‘결정적 순간’을 음미해보려 합니다.

 

최대환 신부 (의정부교구 정발산 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