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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교리 & 영성

최대환 신부의 인물과 영성 이야기 (5) 알프레드 델프 신부 (중)

by 파스칼바이런 2016. 2. 27.

최대환 신부의 인물과 영성 이야기 (5) 알프레드 델프 신부 (중)

처형 앞두고 광야 체험… 희망과 자유 깨달아

발행일 : 가톨릭신문 2016-01-31 [제2980호, 16면]

 

 

감옥에서 극적으로 최종 서원

동방박사 경배·봉헌 의미 묵상

 

 

▲ 독일 헤센주 람페르트하임에 있는 알프레드 델프 기념성당 현판.

 

 

옥중에서의 최종 서원

 

1944년 7월 28일 체포된 후 알프레드 델프 신부를 고통스럽게 한 것은, 게슈타포에 의한 여러 차례의 잔인한 구타를 동반한 가혹한 취조나, 재판이 진행되고 판결을 기다리는 동안 베를린 테겔 형무소에서 체험한 극심한 고립감, 대부분의 시간을 손이 묶인 채로 있어야 했던 고초만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아주 오랫동안 기다리고 준비했고, 마침내 8월 15일로 결정된 최종서원을 하지 못하게 되리라는 염려가 그를 초조하게 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 서원을 원하지 않으시는 것 같은 상황들이 그의 마음을 매우 어둡게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내적 고뇌를 힘겹게 견디며 그는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의 대축일을 맞이하는 9일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이 기도를 통해 그는 성모님의 전구로 주님께서 위로와 자비의 징표를 보내주시기를 간절히 청하였습니다. 그리고 대축일 전날, 선의의 협조자들이 세탁물에 숨겨 전해준 편지를 통해, 최종서원을 감옥의 면회실에서 비밀리에 예외적으로 실행키로 장상들이 허락했습니다. 그 날짜는 여러 가지 상황이 맞물려 공교롭게도 12월 8일이 되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12월 8일, 마침내 일반 면회로 주어진 시간에 감옥의 면회실에서 극적으로 소망하던 최종서원을 발하게 됩니다. 그때 그의 모습을 그 자리에 함께했던 타텐바흐 신부는 몇 년이 지난 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델프 신부가 8일 아침에 너무나 감격한 결과, 서원을 발하는 동안 거의 자기의 몸을 가누지 못한 것이 놀랄 일이겠는가? 그것은 또한 실로 진기한 의식이었다! 책상에 감독하는 관리가 앉아있고, 그 우측에 델프 신부가 수갑을 푼 상태로 회색빛 민간인 복을 입고 서 있고, 책상의 좁은 측면에 내가 있었다. 대화는 제삼자가 배석해 있었기 때문에 매우 방해를 받았는데, 먼저 가족들과 예수회원들의 동정에 대해 얘기가 오갔다. 이 모든 소식들이 이미 델프 신부를 깊이 감동시켰다. 그리하고 나서 변호사 선임에 관한 사무적인 이야기를 마쳤다. 대화가 서원 문서에 서명하는 일에 이르자 델프 신부는 완전히 입을 다물더니 자기 의자에 주저앉았다. 정말로 서명할 의향이 있는지를 묻자 비로소 그는 그렇다고 대답하고는 서원문장을 혼자 읽은 다음 펜을 쥐고는 빠르고 힘있게, 또렷하고 강한 필체로 서명했다. 델프 신부는 남의 눈에 띌 정도로 애를 써 자신의 감정을 자제해 가면서 원문을 큰소리로 겨우 낭독할 수 있었다.(마리안네하피히 편저, 알프레드델프, 김용해 옮김, 시와 진실, 2011)”

 

이렇게 그날의 절절한 광경을 증언하면서 타텐바흐 신부는 또한 델프 신부가 그날 자신의 감회를 직접 적어놓은 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꺼번에 너무나도 많은 일이 일어났다… 8일이 되기 전 여러 날을 나는 계속해서 자비의 소식을 달라고 기도했다. 그 결과 나의 소원이 이뤄진 것이다… 나는 최종적으로 나의 생명을 바치겠노라 약속했다. 이제 모든 외적인 사슬들은 나에겐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 주님이 나를 사랑의 사슬로 영광스럽게 하셨기에.”

 

주님공현대축일 묵상

 

최종서원 이후 델프 신부가 감옥에서 보낸 대림과 성탄, 공현을 지나 마침내 그가 처형당하는 주님 봉헌 축일(2월 2일)에 이르는 전례적 시간은 그에게는 고통 속에 죽음을 시시각각 대면하고 준비해야 하면서도 깊은 신앙의 희망을 발견하는 진정한 의미의, ‘광야’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이 시련과 정화의 시간에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 체험한 자유와 하느님과의 만남을 네 번의 대림절 주일 묵상과 성탄 밤의 묵상,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이제 함께 음미하고자 하는 주님공현대축일 묵상에 남겨놓았습니다. 그는 자신에 대한 사형 판결이 예상되는 재판을 이틀 앞두고 맞이한 공현대축일에 오직 주님 외에는 의지할 곳도 믿을 곳도 없다는 것을 고백하며 이렇게 마음의 다짐을 적고 있습니다. “주님이신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밝히실 것이며 나에게 나 자신으로부터 나와 당신께로의, ‘절대적 도약’을 요구하신다. 나에게도 건너야 할 광야가 나타난 것이며, 한 가공할 폭군이 손에 칼을 들고 위협하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절박한 상황에서 무엇보다도 자신의 삶과 인격과 신앙을 하나로 모아들이는 진실되고 열정 어린 내면에서 오는, ‘말’을 간절하게 소망하고 추구하고 기도합니다. 그는 오직 그러한 말로서 자기 자신을 위로하고 벗들에게 증언하고 주님께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이러한 내적 열망이, ‘자유의 법’에 대한 갈망임을 직감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일련의 사건들이 이어진 이번 주간을 보내며 나는 만일 한 인간이 자신 내면의 큰 공간과 내면의 자유를 지닐 능력이 없다면, 자신을 둘러싼 상황과 관계와 폭력의 법칙에 굴복하게 되는 일이 거듭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만일 불가침적이고 건드려질 수 없는 자유의 공기를 자기 것으로 할 수 없다면, 그는 모든 안녕과 주권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을 잃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그는 더 이상 참된 의미의 인간이 아니라, 그저 처분 가능한 대상, 숫자, 통계치에 불과하다.”

 

그는 광야의 시련과 시험을 이겨낸 동방에서 온 세 사람을 기억하는 축제가 전하는 복음이 바로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자유의 법’이라는 것을 묵상합니다. 그리고 또한 이러한, 인간 자유가 탄생하는 ‘순간’은 다름 아니라, 하느님과의 ‘만남’ 순간이라는 것을 고백합니다. 그는 자신의 깨달음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주님이신 하느님과의 자유롭고 조건 없는 만남을 통해 인간은 비로소 자기 자신의 고유한 공간을 얻게 된다. 모든 다른 것들은 보잘것없는 진흙 위에 세워진 오두막에 불과하고 어느 날 무너져 폐허가 돼버린다. 왕좌를 보며 두려워하지 말고 구유에 경배하라.”

 

이제 그는 자유를 묵상하며 비로소 절대적인 의미를 지닌 두 가지 근원어, ‘경배하나이다’(adoro)와 ‘받으옵소서’(suscipe)에 도달합니다. 그는 이 두 개의 말이야말로 인간 자유의 두 가지 근원어라는 것을, 동방박사들이 경배하기 위해 무릎을 꿇는 행위와 선물을 봉헌하고 빈손을 내어놓는 행위는 자유로운 인간의 근원적 행위라는 것을 깊이 묵상합니다. 이제 그는, 자유의 법이라는 약속은 은총의 법을 통해 자신을 온전히 절대자에게 내어놓은, 반드시 인간에게 성취되리라는 확신을 얻게 된 것입니다. “광야는 결코 인간의 최종적 운명이 아니다. 광야는 이 위대한 자유를 위한 단련의 시간이다. 우리는 반드시 광야를 건너게 될 것이다. 나는 안다. 나는 홀로가 아님을. 은총의 법이 작용하고 있음을… 나는 안다. 별이 광야 위에 뜰 것임을.”

 

최대환 신부 (의정부교구 정발산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