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톨릭 관련>/◆ 전 례 음 악

[이상철 신부의 성가 이야기] <20> 26번 이끌어 주소서<하>

by 파스칼바이런 2016. 6. 18.

[이상철 신부의 성가 이야기] <20> 26번 이끌어 주소서<하>

평화신문 2016. 06. 19발행 [1369호]

 

 

▲ 이스라엘을 인도한 구름 기둥 장면.

 

 

복자 뉴먼(J. H. Newman, 1801 ~1890) 추기경은 1833년에 ‘구름 기둥’(The Pillar of Cloud)이라는 시를 썼다. 이는 이집트 탈출 때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했던 하느님을 상징하는 그 구름 기둥을 말하는 것이다(탈출 13,21).

 

후에 이 시를 가사로 하여 그 첫 구절인 ‘이끄소서, 온유한 빛이여’(Lead, Kindly Light)를 제목으로 하여 성가가 나왔는데, 26번 성가는 이를 번안해서 나온 성가이다. 이 성가는 간디가 즐겨 불렀다고도 한다. 힌두교도였던 그가 이 성가를 좋아했던 이유는 아마도 ‘하느님’이라는 직접적 표현보다는 ‘빛’이라는 객관적인 표현을 사용한 때문이었을 것이라 여겨진다.

 

복자 뉴먼 추기경이 이 시를 쓰게 된 계기는 오늘날에도 전해지고 있다. 그가 젊은 사제였을 때 지중해 연안 여러 나라를 여행했는데 이탈리아를 여행하던 중 병을 얻게 되어 거의 3주 동안 여행이 지체된 일이 있었다. 그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숙소에서 떠나기 전, 나는 침대에 앉아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간호사 역할을 해주던 내 종복이 어디가 아픈지 물어보았는데, 단지 ‘영국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나는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었지만, 배를 구하는 3주 동안 팔레르모에 머물러야만 했다. 거기서 어떤 예절에도 참여하지 않았는데도 성당들을 순례하며 조바심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이후 짙은 안개로 인해 보니파시오 해협에 갇혀 계속 항해하는 것이 불가능해져 나는 어쩔 수 없이 마르세유를 향하던 배에서 내려 일주일 내내 꼼짝할 수 없었다. 잘 알려진 ‘이끌어 주소서’(Lead, Kindly Light)는 이때 썼던 것이다.” 이 시는 여행으로 인해 쇠약해진 심신으로 고향에 돌아가 해야 할 일이 많다는 조바심과 짙은 안갯속에 갇힌 배에서 자신의 간구를 표현한 것이다.

 

 

“온유한 빛이시여, 주위를 둘러싼 어둠 가운데에서 저를 이끌어 주소서”로 시작하는 이 성가는 타이타닉을 비롯한 많은 비극적 사건들 속에서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았던 이들의 이야기와 함께 전해진다. 일명 ‘불구덩이’로 불리는 1909년에 있었던 탄광 사고가 대표적이다. 영국 북동부에 있는 도시 더럼에서 2월 16일 폭발로 탄광 사고가 발생해 168명의 광부가 목숨을 잃었다. 이때 한 막장에 34명의 광부가 고립되어 있었는데, 이들은 신선한 공기층 덕분에 목숨을 유지할 수 있었다.

 

깜깜한 어둠에 갇혀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도 알 수도 없던 가운데 한 명이 이 성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더럼의 광부들은 퍼데이의 선율로 부르던 이 성가를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온유한 빛이시여, 인도해 주소서’라며 다 함께 이 성가를 불렀다고 한다. 이 성가가 끝나기 전에 가디너라는 이는 부상으로 숨을 거두었고 몇 명은 가스에 질식해 목숨을 잃었지만, 14시간이 지난 뒤에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았던 30명의 광부가 구출될 수 있었다. 26번 성가는 이처럼 많은 이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던 대표적 성가 중 하나이다.

 

<가톨릭대 교회음악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