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는 마을 김선미 시인
헬멧을 쓰고 갔어 눈코입이 모인 사람끼리 몰려다니면 유령이 될 거 같지 않았거든 친구끼리 가족끼리 연인끼리 굴리거나 구르기를 좋아하는 것을 쓰고 다니는 건 어쨌든 기분 좋아지는 일이지 머리가 굴러다니는 상상을, 세상 어디든 갈수 있을 것 같아 깨지지 않을 자신감도 들어 입간판이 서 있는 곳까지 갔어 헬멧을 쓰면 계약이 성립되기 쉽잖아 죽을 사람들의 모임 같은 거 어디든 속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 숨구멍이 간지러워 희박한 공기 속에 있는 것처럼 얼굴이 빵빵해져도 전쟁은 우리들의 교양 있는 고유문화 헬멧 하나를 문 앞에 걸어놓거나 벌판에 나란히 늘어놓으며 하나 둘 셋 넷 세어나가면서 마을 사람들 모두 울거나 가장 슬프게 우는 사람을 클로즈업하거나 튀김옷을 입고 하얗게 서 있지 처방전을 들고 산 사람처럼 기웃거리는 거 하루살이가 구름을 키우듯 일출을 보러 2층 테라스에 갔다가 태양이 넘어오는 걸 보다가 문 이 잠기는 걸 몰랐어 일조량이 부족한 곳에서 온 사람들이 문을 두드리고 있어 열어줘야 하는데 우루루 몰려오다보니 안에는 아무도 없어 헬멧을 한데 모아 놓으면 아무도 없는 마을이 되곤 하지
웹진 『시인광장』 2019년 2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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