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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조혜영 시인 / 모던한 욕조2

by 파스칼바이런 2019. 10. 21.

조혜영 시인 / 모던한 욕조2

 

 

말린 식물 냄새가 나는 사람이 앞에 섰다 알지 못하는 비린내도 났지만 누구나 다 그런 것이 있을테니 하고 조금 웃는다 내 육체는 아직 개조되지 않았어요 옆자리에 앉은 소녀는 자신의 오래된 팔을 들어 올리며 근심스러운 눈동자를 내렸다 나는 눈꺼풀이 없어서 내일이 없다 돌봐주는 것은 못하겠어 머리 위에서 얼룩무늬 사자가 덕지덕지 코끝을 간지럽힌다 그 손은 달콤해서 씹어 먹어도 좋은데 발 아래에서 기다란 소년이 흥얼거렸다 나는 감추지 않았다 나눌 수 없어서 서운해요 초록색 리본이 마른 혀를 갸웃거렸다

 

나는 해를 따라 구부러지는 작은 식물들을 건드리다가 툭 부러뜨리는 악행이다 해질 무렵 떠오르고 싶어요 머리카락은 가벼운 제스처로 내 신경을 긁고 모서리에서 서서 쿵쿵거리는 개들은 깊고 어두운 극장이다 사람의 입술은 불규칙한 추위를 가지고 있다 안개를 뿌려주세요 앞에서 나는 소리다 뒤를 향해 자연스럽게 눈을 내밀면 시간이 흐를까

 

유혹하고 싶니?

 

거짓말 하지 마

 

웹진 『시인광장』 2018년 3월호 발표

 

 


 


조혜영 시인

2017년 월간《시인동네》 하반기 신인상을 통래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