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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고주희 시인 / 현기증

by 파스칼바이런 2019. 10. 21.

이소연 시인 /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고양이는 제 울음을 빚어 수염을 자라게 했다

  귓속이 텅 빌까봐 지붕 위에, 창가에, 골목에, 참새를 풀어놓기도 했다

 

  발이 닿지 않는 공중을 두드리는 봄비도

  사실은 고양이의 혼혈아

  한번 쏟아진 것들은 냄새를 피우고 있었다

  고양이 발톱을 꽃잎이라고 부르자

  바구니는 화분이 되었다

 

  고양이 생각에 젖으면 모든 것이 너그러워진다

  무엇이든 용서할 수 있는 기분이 솟구친다

  올 풀리기 시작하는 스웨터의 실로 남은

  봄,

  너무나 가벼워서 믿을 수 없는 봄,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나는 의자 옆을 생각할 수 없겠지

  산책, 이런 건 빼앗기기 좋은 책 같겠지

 

  그러니까 고양이는 나의 감정이고 기후이자 달력이다

  도처에서 바람이 빳빳하게 자란다

  고양이 바람이다

 

  고양이 발자국으로 지붕을 만들고 싶은데

  새와 구별되고 싶어 나는 네 개의 다리로

  공중을 갸우뚱하게 딛는 야생을 거부했다

 

  털이 계속자라니까, 난해한 나의 고양이

  숙면을 위한 입 찢기를 자주하는 버릇이 생겼다

 

* 나가이 아키라의 영화제목

 

계간 『시와 경계』 2017년 여름호 발표

 

 


 

이소연 시인

1983년 경북 포항에서 출생.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同 대학원 졸업(석사). 2014년 《한국경제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어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