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서 시인 / 비밀수첩 2
나비族들이 암술에 꽃가루관을 꽂고 분탕질을 한다
1의 봉오리 쓰러지고 2의 봉오리 쓰러지고 3의 봉오리 쓰러지고
(……)
33의 봉오리 쓰러지고
4의 봉오리 간신히 일어나 퉁퉁 불은 다리에 힘을 준다 통나무처럼 감각이 없다 엉금엉금 기어가 위안소 밖을 내다본다
나비族들 바지춤을 잡고 차례를 기다리는데 일몰을 흔드는 뱃고동소리 섬을 한 바퀴 돌아와 적막을 끌고 가는데 집채만 한 파도가 몰려오고
낭떠러지 저 아래 꽃으로 와 제대로 피지도 못한 시신들 피맺힌 가슴에 박힌 칼날과 총알, 살기를 품고 있다 탈출, 임신, 매독 금기어들 한 뿌리로 연결되어있다
잊혀진 혼백들 바람이 되고 새가 되어 날갯짓을 한다
격월간 『시사사』 2017년 11~12월호 발표
김명서 시인 / 자각몽 2
넝마를 걸친 그림자 못질된 문을 열고 들어가 무릎 꿇고 기도한다 눈앞에 신성한 강이 열린다 때 묻은 발을 들여놓는다 강아지가 잠을 물고 강기슭을 어슬렁거린다 스르르 눈꺼풀이 감긴다 그를 떠나보낸 고향으로 돌아가 마을 어귀에 솟대를 세우고 제물로 바칠 새를 찾아 나선다 사냥꾼들이 꾸려진다 당황한 새들은 죽은 척 페루로 피신한다 새가 떠난 마을은 안개를 증식하고 있다 겹겹이 쌓인 안개를 뜯어내고 마지막 남은 퍼즐 조각을 끼어 넣자 그림이 완성된다 “그대가 오길 오래 전부터 기다렸오” 인자한 목소리가 울린다 종루는 백 년의 침묵을 깨고 환희의 종소리 들어앉힌다 종소리가 안내하는 길 끝에 알록달록 새알들이 있었다
격월간 『시사사』 2017년 11~12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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